2005년 이후 지난 14년 동안 내게 있어 "가방=투미"였다. 여행용 트렁크를 크기별로 4개를 구매했었고(아내가 구매한 투미 여행용 트렁크를 제외하고도), 지난 10년 동안 주말 빼고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투미 백팩을 매고 일해왔다. 이 밖에도 보스턴백 1, 서류가방 2개, 쇼울더백 2개... 그 동안 산 각종 가방만 10개가 넘어설 정도로 투미를 좋아했다. 2010년에는 블로그에 "Tumi가 좋은 이유"(아래 링크 참조)라는 글을 쓰기도 했었다.
투미 여행가방을 쓰기 전 다른 브랜드의 여행가방을 갖고 해외 출장을 갔다가 손잡이 부분이 제대로 펼쳐지지 않아 고생을 한 경험이 있다. 물론 투미를 쓰고 나서 그런 고생을 한 적은 없다. 더 감동적이었던 것은 지난 13년 동안 받았던 두 번의 서비스 경험이었다. 여행가방 내부의 플라스틱이 깨져 서울시내 백화점 매장에 수리를 요청했을 때 그들은 내가 가방을 한국에서 샀는지 외국에서 샀는지 묻지도 않고 무료로 친절하게 수리 해주었다. 투미에서 산 우산의 살이 하나 문제가 있어 가져갔을 때에는 부품이 없다면서 신형 우산으로 바꾸어 주기도 했다.
그런데 몇 주 전 내가 10년 가까이 매고 다닌 투미 가방의 어깨끈이 좀 헤져서 수선을 위해 그동안 두 번의 감동적인 수선을 받았던 백화점 매장을 찾아갔다. 결론적으로... 애인에게 차인 것 같은 느낌을 받고 돌아서야 했다. 10년 전 가방 산 영수증을 가져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10년 전 영수증을 챙겨서 갖고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최근 투미가 다른 기업에 인수된 것을 알기에, 그리고 일부 서비스 내용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기에 무료 수선은 당연히 생각하지 않았다. 유료로 수선을 받고 싶다고 했더니, 유료 수선도 10년 전 영수증이 없으면 안된다고 한다. 단지 '그냥 가방'이 아니라 내 사업을 시작한 이후 지난 10년 간 모든 비즈니스를 함께 한 가장 든든한 '동료'이기에 애착이 커서 잘 수선해서 계속 들고 싶다 보니 순간적으로 전화기를 만지작했다가 곧 포기했다. 개인적으로 아는 회사분에게 전화를 해서 도움을 요청할까 아주 잠깐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난 13년 동안 투미를 사랑해온 것은 그 회사의 누구를 알아서가 아니라 평범한 소비자로서 너무나 감동적인 서비스를 받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런 비용마저도 제품 가격에 반영이 되어 있겠지만, 그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회사와 브랜드 입장에서는 수선 등 서비스 정책의 변화에 당연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세세한 점을 알 수 없는 평범한 소비자들에게는 투미의 상징처럼 보이던 서비스의 변화가 서운하고 섭섭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투미를 오랫동안 써온 소비자에게 적절한 설명을 해서 앞으로도 계속 사용하도록 소통하는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 수리와 수선 등 애프터 서비스를 받기 위해 10여 년 전 구매 영수증을 챙겨 보관하라고 하지 말고 구매 회원으로 등록을 받아 회사에서 관리해줄 수는 없는 것일까. 사서 사용하다 문제가 생기면 어떤 과정을 통해 수리와 수선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를 해주고 함께 해결책을 상의해 주었다면 상실감이 덜했을 것 같다.
결국 이번 경험으로 13년 만에 고민이 생겼다. '가방=투미'라는 당연하던 공식에 의문이 생겼고 '다음 가방=?' 이라는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투미라는 가방은 좋아하지만, 투미라는 브랜드에 예전과 같은 충성심을 보이기는 힘들어지고 말았다. 좋아하지만 아쉽게도 다른 대안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은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