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이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부진한 성적으로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어느 정도여야지 6학년 짜리가 4학년 수학문제도 못푸는 것이었다.
이를 어쩌나..
학원은 비용도 부담이지만 투자한 만큼의 실적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본업을 남에게 의지하다보면 어른이 돼서도 스스로 계발해내지 못할 부작용이 걱정되기도 했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만큼은 자기주도학습을 하자고 강조해왔는데 그 결과가 이랬다. 실상 나는 강조만 했지 동기부여나 흥미를 붙일 수 있게 도와주진 못했다. 공부에 묶여 지냈던 내 어릴 적 생채기로 아이들한테는 절대 공부 소리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 결국 방임이 되어 일갈한 것이다. 옛날부터 거슬러왔던 나의 치기어린 반항은 아이의 삶에 간섭해선 안된다는 무관심의 형태로 이어지고 있었다.
"엄마가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고 했지!"
처참한 점수 앞에서 화풀이하며 미안함을 상쇄시켰다.
공부의 이유와 장점을 배우지 못한 아이에게 스스로 공부하라니, 가뜩이나 티를 안내는 딸에겐 오히려 공부하란 강요보다 더 가슴 옥죄는 말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어려도 하나의 인격체로서 독립성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 이 보기 좋은 허울은 부모의 컨트롤이 꼭 필요하다는 쪽과 충돌하고 있었다. 내가 언제까지 초보엄마일텐가. 친구 같은 부모가 되라는 트렌드를 타고 왔기에 마땅한 부모권위가 무엇인지 소신을 쌓아오진 못했다. 하지만 느닷없이 엄마 말이 진리라 할 수는 없으니, 이제 나는 너와 한몸이 되어 똑같이 힘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선 함께 책을 펼쳤다.
그렇게 아이의 수학공부를 '각잡고' 봐주기 시작한 지 몇 달 후, 졸업을 앞두고 드디어 수준을 따라잡은 아이에게 마지막 채점을 끝내며 무심한 듯 한마디 소감을 던졌다.
"거봐, 할 수 있잖아"
이 별것도 아닌 말이 불러온 나비효과는 정말이지 대단했다.
중학교 첫 시험에서 바닥을 찍은 영어점수를 보고 아이는 좌절 대신 보완을 택했다. 나는 흔쾌히 학원을 허락해 주었고 아이는 불과 한 학기 만에 놀랍도록 성장한 점수를 가지고 왔다. "거봐, 나 할 수 있다고 했잖아"라는 말과 함께.
성취감이라는 것이 이리도 중요하다. 무언가를 이뤄낸 것이 근본은 아니다. 이루기 위해 치렀을 극복과 감내에 기인하는 것이다.
안도의 한숨으로 갈무리했던 수학의 성취감으로 아이는 학교생활에 자신감이 생겼고 수업시간에 고개를 들 수 있게 됐다. 다른 과목의 성적을 올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되었다. 쭈뼛했던 성격이 점점 활기차게 바뀌었고 친구가 많아졌다. 더불어 나에게도 교육자로서의 권위가 생겼다. 보호자, 동반자, 인생선배, 조언자 등 수많은 권위가 기다리고 있음을 암시하는 시점이었다. 아이의 정서에 좋다던지 자존감을 지켜줘야 한다던지 하는 공신력 있는 뇌피셜을 끊고 나만의 양육관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늦었지만, 늦었어도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세 아이도 줄줄이 따라오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아이를 키우는 최종 목적은 자립에 있다. 엄청 튼튼하지 않아도 되니 건강을 잃지는 말길, 바보처럼 착하지 않아도 되니 나쁘게 살지는 말길,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되니 게으르지만은 않길, 부자가 아니어도 되니 제 살길은 찾길 바라는 것이다. 최소한의 사람다움을 갖추게 하는 것, 쉬워 보이지만 막상은 온갖 감정적 휘둘림에 주저앉고 마는 고된 역할이다. 그럼에도 종점까지 어르고 달래고 혼내며 함께 가야 한다. 사람 하나 만드는 게 이렇게나 힘들다. 하지만 이따금씩 양육의 고됨이 무장해제되는 순간이 있다. '최소한의 사람다움' 이상의 것을 건축해 올 때. 가령 친절상을 받아왔다거나, 독서왕으로 뽑혔다거나, 미라클모닝을 시작했다거나. 나의 도량에 무한한 칭찬이 샘솟는 때이다.
성취감 혹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남이 선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바로 칭찬일 것이다. 찬사의 모양으로, 때로는 인정의 모양으로 주는 부모의 칭찬은 아이 스스로 이끄는 삶에 대한 자신감과 자립심의 씨앗이 된다. 그 씨앗은 아이의 내면에서 단단히 뿌리내려 수많은 도전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강직한 마음으로 자랄 것이다.
‘거봐, 할 수 있잖아’
딸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 이 한마디가 앞으로도 스스로를 격려하며 일으킬 수 있는 동력이 되길 바란다.
또한 나 역시 트라우마를 버리고 부모로서 성장할 수 있게 해준 딸에게 남몰래(?) 고마움을 느끼며 오늘도 칭찬거리를 가져오길 기대해본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