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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Sep 29. 2024

저녁상만 다섯 번 차린다2

그럼 아침상은 어떻게 하느냐고요?

우리 집은 유초중고 네 자녀가 있는 6인 가구다.


아침이면 그 넷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동서남북으로 흩어진다.

아직 수험생이 없으니 이렇다 할 긴장감도 없고, 깨방정5살 막내 덕에 쫑알거리는 하루가 시작될 것 같지만, 사실 아침시간이 썩 활기찬 분위기는 아니다.

아마도 아침식사가 빠져서 그런게 아닐까 한다.



아침식사의 일원화

누구는 아침엔 국이 좋대고,

누구는 아침에 뭘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다느니 하여간에 말도 탈도 많다.

나는 상대에 맞춰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고치고싶다..) 먹기 싫다는 인간에겐 그냥 안 줬다. 애써봐야 싫단 소리만 해댈 텐데 뭐더러.. 주라고 하면 주고, 싫다고 하면 안주면 되는거겠지.


그러던 중 아침식사를 안하는 문제로 남편에게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나름대로 맞춤형으로 챙겨주고 있는데 왜 나한테 뭐라고 하냐는 억울함이 있었다. 


"줘도 싫대잖아!"

"싫어해서 안준다 치면 그게 너도 만족스러워?"


음, 이에 대해 며칠이나 생각을 했다. 나한테나 맞춤형이었지 그들 개개인에게는 정처 없는 스타일이었던 것 같았다. 아예 안챙기는 거를 맞춤형으로 챙겼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이는, 바라는 거 없다면서 사실은 알아주길 바라는 진짜 속내를 스스로에게 들킨 거나 다름없었다. 공을 들였다 할만한 식사가 아니었지 않은가. 애초에 식사랄 것도 없었지. 그저 출근과 등교 준비에 식구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정신없었을 뿐이었다.

모두가 아침식사의 중요성 특히 청소년기 아침식사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는데, 나는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아이 넷을 챙기는 엄마'라는 이미지로만 고단함을 풍겨댈 심상이었던 것이다.

'번아웃이라 그래'

위안 삼아 변명했지만 나는 생각을 고쳐먹어야 했다. 아침을 챙겨야겠네,라는 생각에 자연스레 뒤따라온 '귀찮아'에 적잖이 놀랐다. 왜 귀찮은거지? 


오랜만에 chatGPT를 열고 생각나는 대로 고민을 정렬해 봤다.

내가 어떤 생각을 고쳐야 하는지, 어떤 방식이 가장 만족스러울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제안서를 받았다. 스케줄이 다른 네 아이들을 통합한 주간일정표를 만들고, 그 안에서 내가 아무리 다채롭고 변화무쌍하더라도 지켜질 수 있는 블록형 계획표를 짰다. 첫걸음부터 완벽하지 않겠지만 살다 보면 개선될 것이라는 응원도 받았다. 무섭네ㅎ


아무튼 인공지능의 힘을 빌려 아침식사를 개시하기로 했다.

저녁식사에 대해서는 민주적으로 결정했지만(저녁상만 다섯 번 차린다1) 아침식사는 물리적인 한계가 없어서 합의가 필요 없었다. 대신 모든 식구들의 편의를 위해 간편히 집어먹을 수 있는 핑거푸드로 식단을 구성해 시작해 보았다.



통보도 없이 실시한 첫 아침식사는 계란김밥. 나의 맞춤형 고집은 배달이라는 방식으로 순화되었다. 

싱크대에 접시 다섯 개를 늘어놓고 다소 적은 양으로 플레이팅 했다. 그리고 한 접시씩 배달을 했다. 누구는 방에서 옷을 입다가 접시를 받았고 누구는 시리얼을 꺼내던 중에, 누구는 씻고 나오는 길에 접시를 받았다. 소감이 궁금했으나 꾹 참고 기다려봤다. 별말 없이 빈 접시가 속속 수거되는 걸로 보아 대체적으로 만족하지 않았나 싶다. 


그 이후로도 불고기밥버거, 어묵말이밥꼬치, 스팸주먹밥, 참치마요삼각밥 등 최대한 먹기 쉽고 맛만 생각한 메뉴로 아침배달업을 이어갔다. 가끔 싫어하는 식재료라며 거부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조금이라도 먹으라고 설득하며 꾸준히 루틴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적수는 먹기 싫다는 아이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모든 걸 수용하려는 나의 자세라는 것을 알게 됐다. 싫어도 조금만 먹어보라는 말을 하는게 그렇게 힘들었거든...

지금은 뭐, 그냥 주는대로 먹는 편이다. 싫은 음식이면 조금만 먹는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다. 




예전에 주간식단표를 몇 달 운영(?)했던 적이 있다. 수기로 쓴 식단표 아래 원하는 음식을 적는 란을 만들어두었는데 인기가 아주 좋았었다. 새 식단표가 걸리면 아이들은 식단표 아랫부분에 계란찜, 우렁쌈밥, 잔치국수, 진라면(?) 등 다양한 메뉴를 적어놓았다. 민트초코바나나찜 옆에는 얘뭐래 라고 적혀있었다. 아이들끼리의 티키타카가 재밌었고 나에게도 유용한 플랫폼이 되어주었는데, 다시 내게 필요해진 것 같다. 


귀찮았던 일이 의무로 다가오니 귀해진다. 아침식사시간이 단순히 배 채워주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시간으로 변했음을 느낀다. 가능한 양질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욕심은 더 맛있는 메뉴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 소박하게나마 이뤄진 아침식사를 통해 아이들이 보다 든든한 하루를 선물받았길 바란다. 그리고 나역시 잊지 말아야겠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씩이라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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