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유초중고 네 자녀가 있는 6인 가구다.
아침이면 그 넷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동서남북으로 흩어진다.
올해는 수험생이 없어서 긴장감은 덜하지만, 아침을 시작하는 분위기가 썩 활기차지는 않았다.
아마도 아침이라는 짧은 시간에 식사가 빠져 있어서일 것이다.
아침식사의 일원화
누구는 아침엔 국이 좋대고,
누구는 아침에 뭘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다느니 하여간에 말도 탈도 많다.
나는 상대에 맞춰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고치고싶다..) 먹기 싫다는 인간에겐 그냥 안 줬다. 애써봐야 싫단 소리만 해댈 텐데 뭐더러..
그러던 중 아침식사 문제로 남편에게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나름대로 맞춤형으로 챙겨주고 있는데 왜 나한테 뭐라고 하냐는 억울함이 있었다. 바라는 거 없다면서 사실은 알아주길 바라는 나의 진짜 속내를 스스로에게 들킨 거나 다름없었다. 어찌나 부끄럽던지.. 공을 들였다 할만한 식사가 아니었지 않은가. 애초에 식사랄 것도 없었지. 그저 출근과 등교 준비에 식구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정신없었을 뿐이었다.
모두가 아침식사의 중요성 특히 청소년기 아침식사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는데, 나는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아이 넷을 챙기는 엄마'라는 이미지로만 고단함을 풍겨댈 심상이었던 것이다.
'번아웃이라 그래'
위안 삼아 변명했지만 나는 생각을 고쳐먹어야 했다.
챗GPT를 통해 구체적인 상담을 받아봤다.
팩트만을 딱딱 짚어 내가 어떤 생각을 고쳐야 하는지, 어떤 방식이 가장 만족스러울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제안해 주었다. 요일별 스케줄이 다른 네 아이들을 통합한 주간일정표를 만들고, 그 안에서 나의 일일생활계획을 블록으로 나누어주었다. 완벽하지 않겠지만 살다 보면 개선될 것이라는 응원도 받았다. 무서운 GPT... 네가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할 줄이야.. 남편보다 낫다.
아무튼 인공지능의 힘을 빌려 아침식사를 개시하기로 했다.
저녁식사에 대해서는 민주적으로 결정했지만(저녁상만 다섯 번 차린다1) 아침식사는 물리적인 한계가 없어서 합의가 필요 없었다. 다만 모든 식구들의 편의를 위해, 간편히 집어먹을 수 있는 핑거푸드로 식단을 구성해 시작해 보았다.
통보도 없이 실시한 첫 아침식사는 나의 '맞춤형' 고집이 들어간 배달 서비스로 이루어졌다. 계란 김밥이었던가.. 싱크대에 접시 다섯 개를 늘어놓고 다소 적은 양으로 플레이팅 했다. 그리고 한 접시씩 배달을 했다. 누구는 방에서 옷을 입다가 접시를 받았고 누구는 시리얼을 꺼내던 중에, 누구는 씻고 나오는 길에 접시를 받았다. 소감이 궁금했으나 꾹 참고 기다려봤다. 별말 없이 빈 접시가 속속 수거되는 걸로 보아 대체적으로 만족하지 않았나 싶다. 아침 먹기 싫다던 것들은 젓가락 잡는 게 귀찮아서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그 이후로도 불고기밥버거, 어묵말이밥꼬치, 스팸주먹밥, 참치마요삼각밥 등 최대한 먹기 쉽고 맛만 생각한 메뉴로 아침배달업을 이어갔다. 실은 이렇게 각자의 패턴에 맞추다가, 결국엔 모두 함께 아침을 먹는 문화를 만드는 목표로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모여서 아침식사를 하는 날이 과연 올까?
아이들은 계속 커갈 테고 머잖아 각자의 고유한 환경 속에 처할 것이 분명한데 규칙이란 게 소용이 있을까?
소실점 네 개의 환경 속에 사는 아이들에게 그때마다 규칙의 변화를 받들어 각자의 주도로를 공사하라 할 수 있는가. 내가 규칙을 내세워 그들의 패턴을 침범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자유는 방임이라 하지 않는가.
나의 맞춤형 서비스를 수정해야 할 때인 것 같았다.
그저 각자가 좋아하는 대로, 최소 싫어하지 않을 정도로 맞춰주던 나의 행동은 그들이 스스로 올바른 습관과 루틴을 만들어내는 데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될뿐더러, 나의 일상에도 지장을 초래하게 한 것이다. 늦었지만 원칙을 세워야 했다.
원칙으로 균형을 맞춰라
가정 안에서 배워나가는 신념과 가치관. 그것이 옳은 것임을 배우고 키워나가게 해주는 자잘한 집안 문화들을 새로 정립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밀어붙일 수 있는 깡이 있어야 했는데 난 그게 참 어려웠고 사실 지금도 어렵다. 단호함과 일관성 앞에는 원칙이 있어야 하는 건데, 이 원칙이라는 것이 수많은 변수 앞에서 무너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원칙을 피치 못하게 지키지 못할 때를 대비한 부원칙을 계속해서 또 만들어내야만 했던 것이 혼란의 이유였다. 말하자면 예외조항이 너무 많이 생긴 것.
원칙: 귀가시간은 9시까지
예외: 예상치 못한 커튼콜 때문에 연극이 9시에 끝나서 오늘만 봐주기로 함, 방과후수업을 시작해서 최소 6주간 금요일은 예외, 친구엄마가 치킨 먹여 보내겠다고 전화옴 등
양육에 있어서 원칙이란 무엇일까.
불량하지 않는 정도의 행동양식까지 선을 그어놓고 그 바운더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 원칙일까?
원래가 한 사안에 여러 규칙들이 모여 하나의 원칙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하나의 원칙을 세우고 그 아래로 하위규칙이 생성되는 것일까?
나는 수일간의 깊은 고민으로 가이드를 그릴 수 있었다.
1. 원칙은 자녀가 성장하며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 준다.
2. 원칙은 가정 내 예측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 주어 홈그라운드로서의 안정감을 준다.
3. 원칙에 따른 책임감은 사회에 나가서도 역할을 다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3. 원칙은 필요하다. 아무리 늦었더라도.
4. 원칙은 명확한 경계 안에서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5. 따라서 원칙은 대상자의 의견을 존중한 상태에서 합치에 따라 생성돼야 하며, 책임이 따른다.
6. 원칙은 신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자녀의 개별적인 성격과 요구를 고려해야 한다.
7. 원칙은 기본적인 틀이며, 사전 협의를 통해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다.
굉장히 원론적으로 썼지만 별거 없다. 변수가 많더라도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외가 아닌, 때에 따른 원칙의 변형으로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요약
각자가 달랐던 아침식사를 하나로 통일하기 위해 개별맞춤형 아침식사를 시작해 봤음 >> 여기서 더 나아가 다 함께 하는 아침식사 문화를 만들고자 했으나 >> 각자의 생활패턴을 내가 침범하는 것 같은 미안함이 생김 >> 옳은 일에 왜 미안함이 생기는가, 그들에게 맞춰주는 게 과연 그들에게 좋은 것인가 하는 의문 >> 집에 원칙이 없었음을 깨달음
아침은 먹는다. 주는 대로 먹는다.
이것이 새로 생긴 우리 집 원칙이다.
그리고 아침을 먹기 위해 조금 더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세부원칙을 도입할 예정이다.
아침식사를 "잘"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존중할 수 있는 원칙들을 세우고 그것으로 점점 더 질 높은 하루가 되도록 만들어보고자 한다. 이 작은 변화들이 우리 가족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서로의 하루를 더 잘 이해하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작은 규칙을 통해 만들어지는 안정감이 우리 가족의 일상을 더 평온하게, 그리고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