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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든쌤 Jul 06. 2024

오늘도 미룬 사람 여기 붙어라

프롤로그 : 만성적인 프로 미룸러, 상담심리사가 되다

먼저 이 프로젝트는 효율적으로 일하거나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미루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밝혀둡니다. 이 글은 매번 ‘해야 하는데’를 외치면서 할 일을 미루는 사람, 계속 딴짓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 그런 자신을 게으르고 한심하다고 자책하는 사람, 미루기가 일상생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서 변화가 절실한 사람, 만성적으로 미루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빠져나갈 방법을 모르겠다는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저 역시 만성적인 프로 미룸러였기 때문입니다. 하기 싫은 일이 있으면 최대한 미뤘고 가까스로 시작한다 해도 마무리 짓기가 힘들었습니다. 할 일이 많다 싶으면 금세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럴수록 체계적인 계획과 시간 관리가 필요했지만 매번 닥치는 대로 처리했죠. 그러다 보니 할 일을 잊어버려서 기한을 넘길 때가 많았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연체되기 일쑤였고 관리비, 공과금 등을 제때 못 낼 때가 많았죠. 도시가스 요금 내는 것을 깜빡해 독촉장을 받고도 또 미루다가 가스공급 중지 예고서를 받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가슴이 철렁하더니 그때뿐이고 시간이 지나자 같은 패턴을 반복하더라고요.


정리 정돈이 귀찮았고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도 힘든 일이었어요. 충동적으로 시작했다가 끝맺음이 제대로 안 된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한없는 게으름의 결과로 일상은 점점 ‘대충하거나 포기하거나’로 가득 찼습니다. 결정을 미루다가 경력이나 재테크 등에서 좋은 기회를 날리기도 했죠. 후회와 자기 비하를 하다가 다시 또 미루는 악순환의 반복이었어요. 제 삶은 마침표를 하나도 찍지 않고 쓰다가 만 문장을 잔뜩 나열해 놓은 글과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점은 그런 내 모습을 가장 많이 지켜보면서 모델링 한 사람이 바로 아들이라는 거예요. 아이가 커가면서 미루는 모습을 볼 때마다 거울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고 평생 동안 시달려온 ‘게으름 - 자기 비하 - 낮은 자존감‘ 패턴을 자녀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기보다 이제야말로 나 스스로가 미루기로 점철된 삶을 한 번쯤은 되돌아봐야 할 때였습니다. 






그렇게 엉킨 실타래를 풀 듯 마음의 습관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쌓아온 습관인 만큼 그 과정은 만만치 않았어요. 미루기는 눅진한 기름때처럼 삶에 오랫동안 들러붙어 떼어내기 쉽지 않았죠. 다행히도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반복해 온 부정적 패턴 대신 차츰차츰 미루지 않는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여유가 생기면 해야지’라고 결심만 했던 심리 상담 공부도 마음먹은 지 20년 만에 시작했고 대학원에서 가족 상담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죠. 지금은 상담 센터에서 아동, 청소년, 성인 내담자를 상담하는 상담심리사로 일하는 중입니다.





미루기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심리학자 피어스 스틸은 습관적으로 미루는 사람 중 약 95%의 사람들이 자신이 늦장 부리는 것을 인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변화를 원하는 사람 중 상당수가 시도하다가 안 되면 금세 포기한다는 사실이죠. 제 경우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스스로를 의지박약이라고 자책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그보다는 마음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용기를 내어 미루기로 점철된 삶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죠.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자기 친절입니다. 자신을 이해하고 나만의 속도로 변화를 돕겠다는 너그러운 마음이죠. 생각해 보면 나에게 가장 모진 말들을 쏟아부으며 비난하고 상처 주는 것은 나 자신인지도 모릅니다. 만날 때마다 판사나 감독관처럼 판단하고 비판하는 친구가 있다면 거리를 두거나 만나지 않으면 됩니다. 하지만 그 판사나 감독관 같은 친구가 바로 나 자신이라서 24시간 내내 같이 살아야 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한없이 위축되고 자기혐오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자기 친절은 매번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며 피상적인 위로를 하거나 합리화를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마음을 안정시킨 다음 자신의 문제를 마주하고 현실적으로 객관화 하여 반성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만성적인 미루기 병이 쉽사리 나아지지 않고 반복될 때 한꺼번에 개선하려는 무모함을 내려놓고 자신의 상태를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미루는 역사가 오래된 만큼 “변화가 쉽지 않을 테니 나만의 속도로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나가자”라는 마음가짐을 갖는 거죠. 



[전자책] 미루지 않고 지금 당장 시작하는 마인드 PT - 예스24 (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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