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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 Jan 18. 2021

요즘 호떡 하나에 얼만지 아세요?

눈과 호떡, 그리고 당신에 관한 이야기

엄마, 밖에 눈이 와요.

눈송이가 위로 아래로 옆으로 음악에 맞춰 사뿐사뿐 춤사위를 선보이는 무용수같이 바람에 몸을 내맡기고 춤을 추고 있어요.

이렇게 눈이 오는 날이면 구수한 기름에 튀겨지는 동그란 호떡 한 입이 생각나요.

이런 날에는 호떡집에 듬성듬성 줄을 서서, 적당히 내 차례를 가늠하고 순서를 기다리며 호떡 굽는걸 구경했죠.

어쩌다 조금 큰 호떡이 불판에서 지글지글 구워지거나, 주인아주머니가 반죽 위에 설탕을 반스푼 더 넣는 걸 보게되면, 저 호떡이 내 차례에 맞춰 나왔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다른 사람 봉투에 담기면 못내 아쉬움을 달래며 괜히 코만 훌쩍거렸죠.

이내 내 호떡을 받아들게 되면 입에 데일까 걱정하면서도,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뜨거울 때 호호 불어 먹어야 더 맛있다는걸 아니, 잘못하면 입천장이 홀랑 벗어질 지도 모를 달콤한 설탕물을 옷에 흘리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호떡에만 집중하게 되죠.

  

오늘, 눈이 오는데, 여기는 호떡이나 붕어빵을 파는 노점이 별로 없어요. 오랜만에 노점의 호떡이 먹고 싶어 호떡 가게를 일부러 찾어요.

우와~ 아무리 오랜만에 간거라지만

요즘 호떡이 하나에 얼만지 아세요?

2000원이래요~

호떡 2,000원, 3개 5,000원.

새삼 호떡 가격에 한 번 놀라고, 물가 상승에 또 한 번 놀라고.


호떡 가격을 보니 생각나는 일이 있는데, 엄마는 기억하려나..



어느 해 겨울, 중요한 시험을 치르고 발표까지 한 달여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요.

열심히 준비한 시험이었기에 후회도 미련도 없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그렇게 내 목을 옥죄었는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표정도 짓지 않으며 어둠 속에서 흘려보낸 시간속에 있었어요.

새벽까지 작은 방에 틀어박혀 해리포터 시리즈를 죽어라 읽어대고, 낮동안은 잠만 자며 엄마의 애를 태웠더랬죠.

몇날며칠을 동굴 속에 갇혀 웅크리고 있으니, 엄마도 안되겠다 싶었는지, 백화점에 뭐 살게 있다며 나를 데리고 갔어요. 가기 싫었지만 할 수 없이 따라나섰는데, 볼일을 보고 집에 오는 동안 말도 몇 마디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해가 일찍 져 어둑어둑해진 이른 저녁,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들어가는 길,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마침 호떡가게 앞을 지나게 됐요.

사실 그날 말은 안했지만, 평소 밝고 말도 많았던 내가 내내 말없이 돌아다닌게 엄마한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아무렇지 않은 척 그냥 던진 말이었어요.

"호떡 사갈까?"

호떡이 딱히 먹고싶었던 건 아니에요. 눈이 와서도 아니었어요.

주머니에 마침 천원이 있었고, 뭔가 아무거라도 말을 해야겠다 싶어서 그랬어요.

"호떡 두 개 주세요." 하고 천원을 내밀었는데,

"하나 700원이에요. 400원 더 주셔야겠네요."

잔돈이 더 없어 호떡을 하나만 사갖고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엉엉 울었더랬죠.

"호떡이 왜 700원인거야. 갑자기 눈은 왜 내리는거야. 왜이렇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거야."

두 개 사서 하나씩 먹으며 어색함을 풀고 싶었고, 딸 괜찮다고 엄마한테 보여줄 참이었어요. 그냥 미안해서.

그런데. 눈이 하늘 위로 솟아 올라가던 그날, 호떡은 하나밖에 살 수 없었고, 모든 일에 실패한것마냥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신발도 벗지 않은 채 현관에서 펑펑 울며 호떡값 타령을 하던 나를,

엄마는 꼭 안아주셨요.

"괜찮아. 뭐 어때. 호떡이 700원이면 어떻고 시험이 잘 안되면 어때. 넌 충분히 잘 해왔고, 그걸로 된거야. 안되면 다른거 하면 되지."

엄마의 마음이 하얀 함박눈처럼 내 마음에 소복이 내려앉았어요.


호떡이 문제가 아니었다는거, 내 마음에 잠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을 뿐이라는 거, 기대가 컸기에 고통도 컸을 뿐이라는 거. 나도 알지만 그땐 그 호떡이 너무 원망스러웠지요.

근데 요즘 호떡이 2000원이래요.

주머니에 천원 있으면 이제 하나도 사먹을 수가 없네요.

참 우습.


벌써 10년도 넘은 일이네요.

그날, 내 마음처럼 바람에 흩어지는 눈이 오는 풍경 속에서  저만치 떨어져 덩그러니 서있던 호떡집과 엄마의 품이 내겐 한 장의 사진처럼 남아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그래서, 눈 오는 겨울이 춥게 느껴지지 않아요. 따스한 엄마의 눈길과 손길이 온 세상에 흩날리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포근해져요.


엄마, 고마워요, 사랑해요.

아직 있을지 모르지만 어느 겨울 그때 그 집에 호떡먹으러 가요.

이제 하나에 2000원이어도 울지 않고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눈 오는 겨울밤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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