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에서
여름이 물러나고 가을이 왔다고 작년에 왔던 비염은 죽지도 않고 또 찾아왔습니다. 재채기를 달고 달리는 요즘입니다. 엊그제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근무하는 곳도 모두 다르고, 직위도 달라졌지만 10년이 넘게 이어지는 모임인데 엇비슷한 모양새로 살던 구성원들이 이제 나이가 들어가며 각자 다른 사연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모임의 공통점은 모두 다 배려심 넘치는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모임 5~6년 차까지는 만날 때마다 별 특별한 것이 없어도 너무 즐겁고 또 다음 모임을 기다릴 정도로 즐거웠는데 이제 제 감정이 그때만큼은 아닙니다만 여전히 제가 삶을 의지하는 몇 안 되는 모임입니다.
모임 단톡방에 과감히 선언했습니다. "나 거기까지 뛰어갈 거야"라고. 출근하며 옷과 헤어밴드 신발, 워치를 챙겨 나오기는 했는데 막상 출발하려니 점심때부터 흩뿌리던 비가 제법 내리더라고요. 그냥 대중교통으로 갈까 하다가 내뱉은 말인데 싶어서 옷을 갈아입고 러닝화 끈을 매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가는 중에 비가 세차게 내리면 '버스 타고 가면 되지 뭐' 하는 마음도 반쯤 품고서 말이죠. 점점 더 강해지는 빗줄기 아래로 횡단보도마다 우산을 들고 빗속의 퇴근길을 서두르는 사람들을 지나쳐 뛰었습니다. 금세 신발도 젖고 옷도 젖고. 가로수가 있는 도시의 거리를 벗어나자 막히는 금요일 퇴근 시간 빗길에서 차만 가득히 밀려 가다서다 할 뿐 길 위의 사람은 저 혼자였습니다. 기분은 오히려 좋더라고요. 저 꽉 막힌 길 위, 차 안의 사람들보다 제가 더 빨랐거든요. 빗줄기는 세차게 내렸다 가늘어졌다 오락가락하며 내렸고, 버스를 타고 가겠다는 마음이 비와 함께 녹아 사라졌습니다. 도착점까지 울퉁불퉁한 보도블록, 끊어진 보행로, 풀이 뒤덮은 길, 강제로 쉴 수밖에 없었던 보행신호등까지. 평평한 길을 달리는 일상의 달리기와 달랐기에 더 새로운 도전의 기분이었죠. 가을의 시작에 내리는 비는 더운 땀을 식히기에도 충분했습니다. 래미 님이 비가 와도, 비를 맞으며 달리는 이유가 이거였을까 싶었습니다.
가야 할 목적지까지는 아주 긴 거리도 아니고 달리기 힘든 거리는 아니지만 멈출까 말까를 고민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세 번의 꽤 긴 오르막길이 있었거든요. 달려서 가겠다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중간에 걷지도 않겠다는 마음으로 오르막에서는 7분 30초의 페이스로 천천히 달렸습니다. 그렇게 느린 달리기였지만 오르막이 끝나면 또 시원한 바람과 비를 맞으며 신나게 달려지는, 멈춰 선 버스를 앞질러 달릴 수 있는 내리막 구간이 어김없이 나타나 주더라고요.
그렇게 세 번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끝내니 목적지가 나타났습니다. 뿌듯하군요. 그런데 저는 왜 거기까지 뛰어간다고 했을까요? 뛰어가면서 든 여러 잡생각이 멈춘 지점이었습니다. 달려서 가겠다는 스스로의 말을 지킨 것도 좋았고, 꽉 막힌 도로의 차 안에서 답답한 사람들의 시선도 뛰어가는 저를 부러워했을 것만 같고, 다들 농담으로 알았는지 흠뻑 젖어 뛰어온 저를 보며 모임 사람들이 박수를 쳐 주는 기쁨에도 우쭐해지더라고요. 그리고 먹고 마시는 회식이니 뛰어서 가면 몸에도 덜 미안한 행위를 했다는 자기 위안도 몇 퍼센트쯤은 있었을 겁니다.
비 오는 금요일 밤이 그렇게 즐거웠음에도 다음 날 토요일 오후, 갑자기 덮친 우울함은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빨강 신호등에 멈추는 순간 온몸이 그물로 꽉 죄이는 듯 급습당한 우울과 답답함에 막 짜증이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더라고요. 자동차 핸들을 세게 내리치고 아무도 들을 수 없는데도 내 분노를 들어보란 듯 소리를 질렀습니다. 왜 이런 기분이 찾아오는 것인지, 왜 이런 감정에 휘둘려야 하는지에 분노가 일었습니다. 더 화가 난 것은 그 우울과 답답의 원인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조울증을 앓고 있는 것일까요? 근래에 들어 이 빈도가 잦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물에 빠졌다면 물을 헤치고 나와야 할 것이고, 구름을 걷는 중이라면 안전지대를 찾아 낙하 시도라도 해 볼 텐데 이유를 모른 채, 원인과 이름을 모르는 질병처럼 찾아오는 우울감에 우쭐했던 금요일 따위는 가볍기가 먼지 같았습니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원래 없었던 듯한 먼지 한 톨.
얼마 전 읽었던 <조국의 공부>에서 수인이 된 조국은 글쓰기에 관해 이렇게 적고 있었습니다. "삶의 어려움을 글쓰기만으로 극복할 수 있겠는가. (중략) 그렇지만 글쓰기로 자기 고통의 근원, 욕구의 뿌리 그리고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놓칠 수 없는 것들을 정리한다면 삶의 어려움을 대면하고 극복하는 마음가짐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조국의 말처럼 글로 그 순간의 우울과 분노를 다시 회상하며 천천히 감정을 해부해 봅니다. 채워지지 않은 어떤 성취와 소비 욕망, 더 잘 해내지 못한 과거의 시간에 대한 후회와 미련, 더 많이 갖고 싶은 탐욕 등이 한데 뒤섞여 빚어진 저의 빛깔이었지 않았나 하고 진단하고 정리해 봅니다. '괜찮다. 괜찮다...'라고 맥주 한 잔 내어주는 다정한 마음의 손길로 스스로를 다독여봅니다.
"코드 블루, 코드 블루" 드라마에서만 들은 것이 아닙니다. 대형 병원의 복도에 있던 어느 날 실제로 다급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드라마에서처럼 의사들이 막 뛰어가는 장면은 없었지만 그 환자의 심박 파동은 한 줄로 띠-였을 겁니다. 더 이상 그 생명의 심박은 파동을 그리지 않았을 겁니다. '코드 블루'를 알리는 병원 방송 목소리가 절체절명의 죽음을 예고로 바뀌어서 들리더군요. 오늘 문득 몇 년 전 그 소리가 떠올랐고 '아 오르락내리락해야 살아있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에 닿았습니다.
온 지구가 평평하다면 생명이 살 수 있을까요. 바람이 일지도, 물이 흐르지도 않을 테니까요. 파도 물결이 일렁이어야 물도 순환을 합니다. 평평한 땅이 있어야 살기에 좋겠지만 솟고 꺼진 높낮음이 있는 지형이어야 바람이 돌고 물이 흐르고 대기도 흐름을 타고 순환할 것입니다. 주식 지수가 늘 일정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생명이 나고 자라고 늙음과 죽음이 없이 늘 일정하다면요? 삶의 굴곡과 희로애락이 없이 늘 일정한 감정과 일정한 일만 일어나는 세상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요? 우스갯소리 하나를 적어보겠습니다. 청소년 시절에 유행한 오락실 오락 중에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게임이 있었습니다. 그 오락 캐릭터 중에 두 명은 장풍을 쏩니다. '아도겐' 하면서 양손을 모아 앞으로 내밀면 작은 태풍 같은 것이 발사되어 상대를 타격하는데 찾아보니 우리말로는 '파동권'이라고 하네요. 이 파동권을 쏘는 방법이 양손을 정말 정말 일정한 속도로 앞으로 쫙 뻗으면 발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신뢰도가 높진 않지만 고등학교 때 물리 선생님이 해 준 이야기입니다.) 현실에서 그 장풍이 발사되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없습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늘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그려지는 청소부 주인공 히라야마의 말은 그런 세상이 있을 수 없음을 다음과 같은 대사로 담아냅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양자역학 물리학에서 존재 개념은 특정한 위치에 점처럼 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퍼져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파동을 가지는 것이죠. 파동의 모양은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수학과 물리 시간에 배운 그 모양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결국 우리 존재 자체가 "오르락내리락"인 것입니다. 그러니 기분도, 감정도, 관계도, 인연도, 재산도, 건강도, 하늘의 새도 늘 오르락 내리락입니다.
윤석중 문학가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우리가 어릴 적 그렇게 불렀던 깊은 산속 옹달샘, 퐁당퐁당, 아가야 나오너라 등을 지은 분이죠. 한국 동요의 아버지라고도 불리고 피천득과 함께 새싹회를 조직해 어린이 문학에 평생을 힘쓴 분이라고 합니다. 윤석중 선생님이 지은 '종달새의 하루' 동요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오르락내리락 오르락내리락하다 하루 해가 집니다." 우리 인생도 이런 것일 겁니다. 오르락내리락하다 삶이 끝날 것입니다. 다만 올라갈 때 조금 덜 힘들게, 내려올 때 두려움을 줄이고 조금 더 편안하고 지혜롭게 내려오는 구간을 견디며 달릴 수 있는 삶이 되길 바라야 합니다. 앞으로 이 '오르막 내리막'을 몇 번이나 더 지나야 할지 모르니까요.
천연 발효종 르방을 넣어 구운 빵이 꼭꼭 씹어 먹으면 더 고소하고 구수함을 느낄 수 있고 속까지 편안하다니 래미 님의 빵에서는 어떤 맛이 날지, 콜로라도의 아침 빵 냄새는 무슨 냄새일지 궁금합니다. 여행 기억에 남은 좋았던 빵 냄새가 있습니다. 어두운 새벽 베네치아의 어느 골목길, 해가 막 나던 이른 아침 뮌헨역에서 맡은 그 구수했던 빵 냄새와 닮았길 바랍니다. 올겨울에는 항아리를 하나 사서 삼양주를 담가볼 요량입니다. 언젠가 딱 한 번 맛본 적이 있는 삼양주 맛이 기가 막힌 술맛이었습니다. 누룩이 잘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세 번, 네 번을 거치는 밑술과 덧술의 과정을 몇 번, 몇 주의 시간을 들여야 만들 수 있다는 데 어떤 맛이 나는 술이 만들어질지 저도 궁금합니다. 시큼한 맛이 난다면 다 버려야 한다는데 저 같은 생초보가 과연 할 수 있을지요.
겨울에 돌아오시면 잘 익은 삼양주 한 잔 드리겠습니다.(성공한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