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고 부푸는

덴버에서

by 래미

가끔 식재료가 일시에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누군가 저를 지켜보고 있다가 더 이상 나태한 걸 못 봐주겠다며 채찍을 날리는 것 같아요. 이틀 전에도 그랬습니다. 과일, 당근, 양파, 감자, 견과류, 달걀, 우유가 동시에 떨어졌거든요. 매일 먹는 재료가 떨어지면 마트에 가지 않을 수가 없죠. 마트 가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일까요. 그런데 어렵더라고요. 원래도 마트 가는 걸 싫어하지만, 요즘엔 마트 가는 게 힘들다고 느껴질 때가 많답니다.

이른 아침 달리고 두 아이를 챙겨 보내는 저의 오전은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생기가 넘칩니다. 하지만 오후의 저는 달라요. 오후 4시만 되면 기분이 몸을 끌고 지하로 들어가는 마법에 걸리거든요. 꼬박꼬박 지치지도 않고 찾아오는 우울이라니. 루틴을 만들어 반복하는 것이 제가 가장 신뢰하는 방식이라서일까요. 우울도 같은 방식으로 찾아오더라고요. 이런 건 좀 예외여도 좋을 텐데 말이죠. 식재료가 떨어진 그날도 오후 4시의 마법은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무력감에 갇혀 바닥에 대자로 뻗어있던 상태였지만 이성은 남아서 당장 다음 날 아침부터 먹거리가 없단 생각을 할 수는 있었어요. 머리부터 굴려 일어나면서 효과음으로 기분을 애써 떨쳐보았습니다. “우이씨!”

집에서 가장 가까운 코스트코에 가면 만나는 할아버지가 있어요. 할아버지는 가끔 입구에서 회원증을 체크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출구에 계신답니다. 거기서 장을 보고 나오는 사람들의 영수증과 카트에 담긴 물건의 개수가 같은지를 체크하세요. 할아버지 표정은 한결같아요. 미국인 특유의 이가 드러나는 환한 미소 - 저는 이 모습이 지나친 과장으로 느껴집니다. 완벽한 메이크업을 한 사람 앞에 민낯으로 있는 것처럼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 도 아니고, 노동자의 찌든 표정도 아니에요. 미국 직원들은 저를 앞에 두고 자기들끼리 스몰 토크에 빠질 때가 종종 있거든요. 이럴 땐 가끔 내가 안 보이나? 싶다가 무시당하는 기분까지 드는데 – 실제로 아시안 여성을 이렇게 무시하는 일도 많다고 해요 – 할아버지는 그런 적도 없어요. 할아버지는 이를 드러내지 않는 미소를 가지셨어요. 그리고 항상 눈을 맞춰주신답니다. 할아버지 눈빛에선 이런 게 읽혀요. ‘장 볼 거 다 봤어요? 빠뜨린 건 없고요?’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건 작년, 콜로라도에 온 지 며칠 안 되었을 때였어요. 그날도 할아버지는 출구에 계셨습니다. 당시만 해도 저는 이곳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어요. 저에게 말을 걸까 봐, 그 말을 못 알아들을까 봐서요. 할아버지께 영수증을 건네고 얼른 끝나라 하는 심정으로 서 있는데, 할아버지에게서 아무런 미동도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뭐지, 이 사람? 뒤에 사람들이 얼마나 기다리는데. 하긴 미국인들, 원래 이렇지. 느려터졌지.’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들고 할아버지를 쳐다봤습니다. ‘얼른 끝내라고요’하는 사나운 눈빛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 눈을 조금 더 크게 뜨더니 입술과 팔자주름만으로 연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림 그려줄까요?”


‘그림이라니. 지금, 여기서요? 뒤에 줄 서 있는 사람들 안 보여요?’하는 마음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저도 모르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예스." 할아버지는 영수증 뒷면에 들고 있던 파란색 네임펜으로 그림을 그려주셨어요. 스스슥. 단 3초 만에요. 선 몇 개만으로도 다정한 표정이 완성되었습니다. 가끔 어떤 그림을 보면, 점 하나로 그려진 눈에서 감정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건 아마도 오랫동안 그림을 그린 사람들의 내공인 것 같다고 생각해 왔는데요. 할아버지가 영수증 뒷면에 그려준 표정이 딱 그랬답니다.

다 늦은 저녁, 겨우 기분을 떨쳐내고 코스트코에 간 그날도 할아버지는 출구에 계셨어요. 내적 친밀감이 들어 장 본 카트를 끌고 할아버지 쪽으로 갔습니다. 앞에 도착해서는 최대한 크게 웃는 표정도 지어 보였어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저를 영 모르는 표정이더라고요. ‘안 서운하다, 안 서운하다, 안 서운해해야지’. 마감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할아버지는 여전히 찌든 표정이 아니었어요. 과장된 표정 역시 아니었고요. 그 적당함이 저는 왜 이리 좋을까요. 영수증을 체크하시길래 또 그림을 그려주실까 내심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안 그려주시더라고요. ‘안 서운하다, 안 서운하다, 할아버지도 얼른 퇴근하셔야지!’

"Happy Hump Day Night!" 할아버지는 영수증을 돌려주며 이렇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Hump Day는 일주일 중 낙타의 등을 지나는 수요일을 의미한다고 댈러스 ESL 시간에 배운 적이 있어요. 오래전 배운 말을 알아들으니, 신이 좀 나더라고요. ‘역시 할아버지는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니까!’. 신나는 마음을 담아 미국인에겐 잘 하지 않는 큰 목소리로 저도 "굿나잇"을 외쳤답니다. 할아버지의 얼굴엔 미소가 여전했습니다. 그런데, “땡큐” 하시는 목소리가 영 기운 없이 들리더라고요. 저의 우울한 기분이 투영된 탓이었을까요. 장 본 것들을 트렁크에 싣고 돌아오는데, 할아버지가 ‘땡큐’라고 말하던 순간이 잔상에 남았어요. '무슨 일 있으신가. 원래 그런 분이 아닌데…….'

제 목소리가 조금만 가라앉아도 그런 말을 듣곤 했습니다. 무슨 일 있냐고. 넌 원래 안 그렇다고. 난 원래 어떤 사람인데?라고 반문할 생각까진 없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더 지치곤 했어요. 답답하기도 하고, 상태가 더 안 좋을 때는 억울하기도 했어요. 누구에게나 저의 오전과 오후 같은 버전이 있을 텐데, 사람들은 왜 오전만 보려고 할까요. “땡큐”하던 할아버지의 모습도 어쩌면 저의 오후 같은 모습인 건 아니었을까요. 언어는 무의식을 반영한다고 하죠. 할아버지의 인사가 생각났습니다. Happy와 Night 사이에 있던 'Hump Day'. ‘할아버지가 오늘 낙타의 등을 넘으셨구나’. 할아버지를 향해 그런 생각을 한 것뿐인데, 이상하게 눈물이 났습니다. ‘나도 매일 오후 4시에 낙타의 등을 넘고 있었구나.’

저는 울 수 있는 제가 좋습니다. 그 순간에 제가 저를 가장 잘 이해하는 기분이 들어요. 무엇보다 울고 나면, 기운이 난답니다. 땀을 뚝뚝 흘리며 달린 뒤 올라오는 상승감과 닮았달까요. 뭐든 버려야 그 자리에 기운을 채울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눈물이든, 땀이든, 기분이든 말이죠. 기운이 난 증거 중 하나는, 새로운 걸 시작하는 것인데요. 그날도 눈물을 닦다 말고 뜬금없이 '르방을 키워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르방은 빵을 만들 때, 반죽을 발효하도록 돕는 ‘천연 발효종’인데요. 인스턴트 드라이이스트 대신 넣으면 빵의 풍미가 훨씬 더 좋고, 쫄깃한 식감을 낼 수 있다고 해요. 몇 번 르방 키우기를 시도하다가 2020년에 마지막 실패를 하고 더는 도전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어쩐지 잘될 것 같은 거예요. 순간적인 기분 탓일 확률이 무척 높지만 그래도! 하는 마음이 시작을 만드는 것 아니겠어요.

장 본 걸 정리하자마자 유리그릇 하나를 꺼내 열탕 소독을 하고 말려두었습니다. 그리고 통밀가루 20g과 물 20ml를 섞고 파란 고무줄로 높이를 표시해 두었어요. 두 배로 부풀면 반을 덜어내고 덜어낸 만큼의 밀가루와 물을 다시 넣으면 되는데, 이 과정을 '밥을 준다'라고 해요. 일주일 정도 이 과정을 반복하면 르방이 활성화되고 그때부턴 빵을 구울 때 사용할 수 있게 된답니다. 유리그릇을 잘 보이는 곳에 두고 두 배로 부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만 하루가 지나도 제가 표시한 파란 선을 넘지 않더라고요. 역시, 기분 탓이었을까요. 이번에도 실패일까요. 그렇게 36시간쯤 지났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오늘 아침에 커피를 내리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르방이 두 배 넘게 부풀어 있는 게 아니었어요. ‘우와! 진짜 부풀잖아?’


지금껏 르방을 키우면서 제일 어려웠던 게 뭔지 아세요? 이미 부푼 르방의 반을 덜어내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버려야 그만큼의 신선한 밥을 줄 수 있고 밥을 먹어야 르방이 다시 부풀어 활성화되는데, 이미 부푼(성공한) 걸 버리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또 하나가 더 있는데, 그건 ‘기다리기’였습니다. 르방은 도무지 부풀지 않는 것 같다가 느닷없이 부풀어요. 절대 제가 보는 사이에 부풀지 않아요. 그러다 어느 순간엔 죽었나 싶을 만큼 가라앉는답니다. 가라앉은 르방을 보면 더 이상 가망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르방을 키워보신 분들 말로는, 밥을 주고 기다리면 언젠간 다시 살아난다고 해요. 가라앉았다 부풀기를 반복하면서 활성화된다고요.


커피를 내리다 말고 르방의 반을 덜어내어 과감히 버렸습니다. 그리고 백밀가루와 물 20g을 섞어 밥을 주었어요. 밥을 주고 보니 앗, 10g씩 해야 했나 싶었는데 음, 밥 많이 먹으면 더 쑥쑥 자라지 않을까요? 파란색 고무줄로 높이를 표시하고, 르방이 부풀기를 다시 기다리기 시이작! 했습니다. 이번엔 제가 잘 버리고, 잘 기다릴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요.


그리고 지금은, 오후 4시의 저에게도 르방과 같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는 기특한 생각을 시작해 보고 있습니다. 가진 걸 덜어내고, 천천히 기다리면 푹 가라앉은 우울의 자리에서 무언가 봉긋 솟아 부풀 것도 같아요. 그렇게 가라앉고 부푸는 반복이 저를 어디로 이끌지는 그때가 되어봐야 알겠죠. 르방도 빵을 구워봐야 그 맛을 제대로 안다고 하니까요. 그러려면 저에게도 신선한 밥이 필요하겠어요. 그건 역시, 이른 아침의 달리기일까요? 땀을 한바탕 쏟아낸 다음에야 채워지는 생기. 아직은 저에게 그만한 밥이 없거든요. 이것 역시 기분 탓일 확률이 높겠지만, 그래도! 저는 계속 달려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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