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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구름 Feb 23. 2024

비록 당장은 돈이 되지 않는 꿈일지라도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어 가는 방법

큰 아이의 아토피와 비염 증세가 심해져서 피부과 간호사로 일하셨던 형님께 전화로 자문을 구했습니다. 바로 그다음 주에 집으로 직접 오셔서 아이 상태도 봐주시고 평소 건강 관리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하루 세끼도 중요하지만 면역이 떨어지고 자주 앓는 큰 아이는 보조 식품으로 영양제를 먹이는 게 좋다는 게 결론이었어요. 



아이에게 영양제를 이것저것 먹이려고 알아보았습니다. 아이가 영양제를 잘 먹을까도 문제였지만, 또 다른 문제는 돈이었어요. 유산균에 멀티 비타민까지 매달 구입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더라고요. 



게다가 큰 아이만 먹일 수 없으니 둘째까지 함께 먹이려면, 한 달 식비의 절반 가까운 비용이 영양제 값으로 나갈지도 모른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제가 검색해 본 영양제 값이 유독 비싼 탓일지도 모르겠지만요. 



한 달 정해진 예산에 맞춰 조금은 빠듯하게 생활하고 있던 터라 새로운 지출을 더 하는 게 조금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속마음뿐 아니라 겉으로도 대번에 드러났나 봐요. 그러자 형님께서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을 해서 돈을 더 벌어'라고요. 농담인 줄 알면서도 전업주부로 10년이 넘어가니 이런 말에 같이 웃어 넘기기가 어렵더라고요. 



당장의 돈벌이보다 지금은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습니다. 글을 쓰고 있다는 말을 포함해서 작가가 꿈이라는 말 또한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지요. 그 말을 하는 순간 남편(형님의 남동생)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편안하게 지내겠다는 말처럼 들릴까 봐요. 아이의 건강을 챙기는 것보다 엄마 자신의 꿈이 더 소중하다고 말하는 매정한 엄마로 여겨질까 봐서요.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책'이라는 결과물이 있어야 그나마도 꺼내 보일 증거라도 생길 텐데 현재로선 그런 증거물은 없습니다. 게다가 애매한 재능으로 책을 낼 만큼의 글을 쓸 수 있을지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부족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면 아이들 영영제를 걱정 없이 사서 먹이고, 사달라는 거 보내달라는 학원도 돈 걱정 없이 보낼 수 있는 돈을 지금 당장 벌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이어지는 거죠. 



이런저런 생각으로 생각이 꼬리를 무는 어느 날에는,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민을 해 보기도 합니다. 꿈과 밥벌이가 연결될 수만 있다면 다 좋은 게 아닐까 싶어서요. 



하지만 이 질문을 할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지요. 꿈과 밥벌이가 온전히 일치하기란 어렵고, 그걸 이루기까지의 시간을 견디기엔 나라는 사람의 그릇이 작디작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다고 꿈을 포기하고서는 일상을 행복하게 살 자신이 없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꿈도 포기 못하겠고, 꿈을 이루어 그게 돈이 될 때까지 의구심 섞인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도 당당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선은 꿈을 수정해 보기로 합니다. 



비록 당장은 돈이 되지 않는 꿈일지라도 포기는 하지 말자. 대신 출간 작가라는 꿈을 작게 쪼개서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나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을 꿈으로 삼아보자고요.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나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요? 바로 어제도 오늘도 계속해서 쓰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오랜 시간 블로그를 운영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힘들다고 징징대는 일기를 적기도 했고, 18평 작은 집 안 가구를 이리저리 옮기며 테트리스를 했던 날의 기록도 있었고, 우연히 응모했던 공모전에서 작은 상을 탔던 날의 감격스러움도 고스란히 남겨져 있더라고요. 



꾸준하게 기록한 것들이 글을 쓰면서 계속 살아왔다는 나름의 자부심이 되어 주었습니다. 잘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꾸준하게 쓰는 사람으로서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이 쓴 사람은 되었으니까요. 



그렇게 한 글자 한 글자 계속해서 쓰는 사람이 되었더니, 어느 날은 글을 잘 쓴다면서 칭찬해 주시는 분의 귀한 댓글을 만나기도 했어요. 내가 쓴 글이 처음부터 끝까지 공감되어서 울컥했다는 댓글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나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 가는 거 맞지 않을까요? 



꿈이 소박해진 게 아니랍니다. 꿈으로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조금 쪼개어 꿈보다 나의 그릇을 키워 보기로 한 거랍니다. 내 그릇이 커져야 거기에 담길 나의 꿈도 자라게 될 테니까요. 



그런 결심 끝에 얻은 가장 큰 수확은 그렇게 작은 것들을 실행해 나아가는 동안 당장 돈을 벌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매일 조금씩 나아가자는 결정은 작은 씨앗이 되어 저라는 사람을 행동하게 했고, 일상에서도 유의미한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전업주부로 다달이 벌어 오는 돈이 없다는 불명예를 끌어안고 끙끙댔던 시절도 있었지만, 더 버는 것뿐 아니라 잘 쓰고 잘 모으는 것도 참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주부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도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주부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자 해야 할 일들도 보였으니까요.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행동하고 성장하는 나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아무도 모르게 새고 있던 고정비들을 1000원 2000원 정리하고, 생활비 예산을 조금 더 줄여 집밥을 열심히 해 먹었더니 조금씩 돈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올해 겨울, 큰 아이 한약을 지어 먹일 수 있었습니다. 너무 심했던 비염과 아토피 증상들도 많이 개선되었고, 엄마보다 발이 10cm나 더 커졌습니다. 



신기합니다. 엄마가 꿈을 위해 조금씩 노력하자 일상의 변화도 함께 찾아왔고, 결국 가족들에게도 좋은 영향이 미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나 자신이 이렇게나 기특하다니요. 주부라는 사실이 주부의 일을 열심히 했다는 것이 나의 자존감을 높여줄 줄 누가 알았을까요?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내가 되는 방법은 결국 하나, 나의 꿈을 조금씩 쪼개어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조금씩 하다 보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도 함께 변하고 성장하니까요. 



꿈을 이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과정이라고 말하던 어느 사람의 말을 이제야 진정으로 믿을 수 있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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