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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구름 Feb 21. 2024

엄마가 아닌 내가 주어인 모임

주부 독서 모임을 운영하다.

어릴 때 특별히 독서를 즐기던 편은 아니었습니다. 어린이책 방문 판매를 하던 외숙모 도와준다고 엄마가 구입해 줬던 20권짜리 만화 백과가 집에 있는 책의 전부였거든요. 책이 많다고 꼭 책을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그래도 그 스무 권의 책은 고등학교 때까지 숙제를 할 때마다 많은 도움을 주었네요. 많은 종류의 책을 다양하게 접하고 자라지는 못했지만, 그때 책의 가치는 어렴풋하게 알았던 것 같습니다.



어린 나이에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참 많이 힘들었는데, 그때 저를 견디게 해 주었던 건 매월 월급이 들어오는 날마다 들렀던 서점 덕분이었습니다. 서점에 들러서 끌리는 대로 1-2권의 책을 구입해 출근할 때마다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녔거든요.



비록 하루종일 바빠서 한 번도 밖으로 탈출하지 못한 채 가방 동굴 속에 있는 신세였지만, 그 책은 저에게 희망이자 기댈 곳이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 고된 육아에 부딪힐 때마다 책을 펼쳤습니다. 도와줄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육아를 하며 느꼈던 외로움과 막막함을 달래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책은 제 인생이 힘들 때마다 곁을 내주었습니다.



두 아이 엄마가 되어 고군분투하던 어느 날도 새로운 책과의 만남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은 이전에 읽었던 책들과는 전혀 다른 책이었습니다.




따스한 글귀와 위트로 가득한 에세이를 주로 읽거나 뒷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흥미진진한 추리 소설을 즐겨 보는 편이었던 제가 그날은 경제분야에서 책을 고를 줄 누가 알았을까요?



그 책은 아이 엄마가 부동산 공부를 해서 내 집마련에 성공하고, 그뿐 아니라 부동산 전문가가 되어 강의도 하면서 자신의 커리어까지 만들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였죠.



그 당시 저는 아이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고 상심하던 때였고, 내 집 마련을 간절히 원하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던 때였거든요.



그 책을 읽으면서 이런 것들을 느꼈습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이 사람은 이런 마인드로 극복해 나갔구나. 세상엔 정말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담긴 책들이 많고,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정말 우물 안 개구리처럼 인생을 살아왔었다는 걸 느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 책을 시작으로 그동안 읽었던 육아서, 에세이, 소설 분야 외 다른 분야의 책으로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제가 가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를 들어 가 듯, 이전과는 다른 도서관 코너에서 탐험을 시작했습니다.




엄마로서 지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냐고 물으면, 그 베스트 3에 2020년 한 해는 꼭 속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뿐만이 아니겠죠? 그때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얼음 상태로 만들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저도 너무 힘들었지만 그 시간을 그나마도 견디게 해 준 것이 있다면, 그 역시 책이 있었습니다. 그때 운명처럼 김미경의 리부트라는 책을 만났습니다.



김미경 선생님은 코로나 19로 자신을 비롯해 삶을 비관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서둘러 그 책을 집필하셨다고 합니다. 지금의 시기도 반드시 지나갈 것이니 비관속에 자신을 가두지 말고, 좀 더 멀리 쳐다볼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코로나 19의 시기를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도록 즉시공부할 것을 권유했고, 그 공부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라고 말씀하셨죠.



네 맞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때마침 그 책을 읽을 즈음 저 역시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거든요. 앞서 언급했듯이 이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분야의 책들을 읽으며 조금씩 변해갔기 때문에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19가 정점일 때 두 아이 독박 육아와 질병에 대한 공포에 지쳐 무기력과 우울증에 시달릴 때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책을 가까이했었어요. 그 덕분인지 이렇게 누워만 있어선 해결되는 게 없다는 생각이 갑자기 밀려오더라고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그제야 보이더라고요. 아이들은 그 시간 속에서도 웃고, 키도 자라고 배우고 있었고,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희망을 갖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요.



비록 주부의 작은 날갯짓이지만, 저도 펄럭여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지 못하는 사회적인 상황에 매몰되기보다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자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간 열심히 글을 썼더니, 작성했던 글 중 몇 편이 포털 메인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거의 혼자서 일기장 쓰는 수준이었는데 덕분에 이웃도 많이 늘어났고, 올리는 글마다 이전보다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다 싶더라고요. 지금이라면 나와 함께 앞으로의 시간들을 위해 성장할 수 있는 공부를 함께 할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라인에서 말이죠.



온라인이라면 이런 시국에 위험을 무릅쓰고 대면하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들에겐 시간과 공간에 제약이 생기는데 그 걱정 또한 사라지게 되니까요.



그렇게 처음으로 엄마들과의 온라인 모임을 기획하고, 모집을 하게 되었답니다. 엄마가 아닌 내가 주어가 되는 모임을 만들어 함께 힘듦을 나누고 서로 의지하면서 조금 더 나은 일상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엄마들과 함께 온라인에서 만나 글도 쓰고 책도 읽었습니다. 그때는 책만 읽고 글만 썼는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우리는 울고 웃고 서로 다독이며 인생의 한 고비를 함께 극복했던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도 받지 못하고, 집안에 실질적인 경제적 도움도 주지 못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고 싶어도 경단녀라는 꼬리표 때문에 시작하기 전부터 의기소침해진다고 우울해했던 내가 이렇게나 변할 수 있었다는 게 스스로도 놀라웠습니다.



게다가 엄마들과의 모임을 열어 운영했을 당시엔 코로나 19는 나날이 심각해지면서 현재 진행 중이었으며, 아이들 개학은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던 상황이었는데도 말이죠.



무엇이 저를 그렇게 변하게 만들었을까요?



책을 읽고, 읽은 내용을 실천에 옮기고, 느낀 점을 글로 쓰면서 나타난 생각변화 덕분이랍니다.



코로나 19와 그로 인해 학교가 문을 닫아 아이를 등교시킬 수 없기에 오롯이 엄마가 책임져야 하는 돌봄과 학습은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죠. 아무리 걱정하고 한숨 쉰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통제 불가 영역인 거예요.



내가 집중해야 하는 건, '통제할 수 있는 상황과 장소' 바로 '우리 집안 상태'와 '육아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코로나 19가 지나가고 난 뒤의 내 모습'이라는 걸 깨닫게 된 것입니다.



쓸고 닦는 주부의 일에서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 쓸고 닦는 일이라는 작은 일이 다른 분야의 책을 읽고 글을 쓰게 했고, 나중에는 엄마들과 힘듦을 나누고, 코로나 19가 지나가고 난 뒤의 미래를 위해 성장하고 공부하자는 마음까지 품게 했던 것입니다.



이전에는 나비 효과라는 말을 잘 믿지 못했습니다. 그 또한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일 거라고 삐딱하게 받아들였지요.



살면서 일으켰던 작은 날갯짓은 수없이 많았는데, 왜 나의 날갯짓은 나비 효과를 불어오지 못했나 싶어서요.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요? 지금은 그 말을 분명하게 믿습니다.



제 생각이 달라지고, 그 생각이 달라진 것에 따라 생각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바꿔 실천하기 시작하자 정말로 작은 날갯짓이었던 작은 것들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느꼈거든요.



혹시 NASA에서 일하던 청소부 이야기를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당신은 무슨 일을 하시나요?"라고 물었더니, "저는 사람을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지요. 같은 일을 하더라도 사람의 태도와 생각은 이렇게나 엄청난 차이가 드러 내게 됩니다.



저는 여전히 엄마입니다. 제 직업은 주부이고요. 예전에 저에게 청소부에게 던졌던 질문처럼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다면, 집에서 아이 키우고 집안일하는 주부라고 대답했을 거예요. "그냥 집에서 놀지 뭐" 하고 우스갯소리로 어색함을 지우려고 했을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대답할 것입니다. 매일 책도 읽고요, 글도 쓰고요, 엄마들과 모임도 하고, 공부도 하고 있다고요.



누군가는 그게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 쓸데없는 시간 낭비 말고, 아르바이트나 해서 애들 학원비 벌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지만, 타격감이 예전만큼 크진 않을 것 같네요.



그 대답을 하는 저 역시, 사람을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다는 NASA 청소부의 마인드와 다르지 않게 되었다는 걸 저 자신은 알거든요. 그건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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