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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구름 Feb 19. 2024

애 키우면서 언제 저렇게 꾸밀 시간이 있는 거지?

내가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도록

유치원 버스에서 내린 큰아이를 데리고, 작은 아이는 유모차에 태워서 밀면서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어요.



얼마 전 우리 앞 집으로 이사 온 엄마를 만났습니다. 그  엄마가 다가오며 인사를 건넸어요. 단지 내에 있는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이라고 했어요.



방금 샤워를 했는지 긴 생머리에는 물기가 남아 있었죠. 인사를 나누며 나는 집으로, 그 엄마는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라 스치듯 잠깐 보았음에도 공들여 화장했을 법한 얼굴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큰 아이 유치원 버스 도착 시간과 그 엄마 아이 하원 시간이 비슷해 자주 마주치고 있는데, 마주칠 때마다 단 한 번도 같은 옷을 입은 것을 본 적이 없었어요.



아슬아슬하게 발등을 감싸고 있는 가죽 끈이 달려 있는 굽이 높은 슬리퍼도 신고 있었죠. 그 엄마의 발걸음은 삼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는 나의 무거운 발거음과 달리 경쾌하고 가볍게 느껴졌어요.



뭐가 저렇게 매번 신날까? 딸 하나만 키워서 그런가?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들어가면 치를 전쟁으로 골치가 아픈데 말이에요.



이틀 전에 감고 나서 쭉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 목이 느슨해진 티셔츠, 통이 넓은 트레이닝 바지, 맨발에 삼선 슬리퍼, 둘째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있는 발치를 한 번 내려다보다가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어요.



'애 키우면서 화장실 갈 시간도 부족한데 언제 저렇게 화장하고 꾸밀 시간이 있는 거지? 분명 애를 같이 봐주는 사람이 있겠지...'



한 번은 그 엄마 집으로 초대받아서 가게 되었어요.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그 엄마가 말했어요.



"저희 집은 저녁을 먹고 나면 주로 밖에 나갔다가 밤에 들어오곤 해요. 언제 한 번 같이 가실래요?"


"아 정말요? 저희는 남편이 밤늦게 집에 오기도 하고, 애들 재우는 게 힘들어서 밤에 외출은 꿈도 못 꿔요, 그렇게 나갔다 오면 피곤하지 않으세요?"


"아니요. 저는 그게 힐링이에요. 그 시간에 드라이브도 하고, 카페를 가기도 하는데, 사람도 별로 없어서 조용하고 편해요. 아이도 좋아하고요."



그 엄마는 아이와 저녁을 먹고 외출을 하기 위해서 낮 시간에 미리 집안일을 끝내고, 저녁 준비까지 마쳐 놓는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씻고, 화장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입고 아이를 데리러 가는 것이었어요.  



그 집 아이는 어릴 때부터 잠을 늦게 자는 편이었대요. 아이를 재우기 전까지 아이를 보면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힘들었던 어느 날, 남편이 일찍 퇴근할 테니 아이 저녁을 먹이고 밖에 나가자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처음엔 아이 데리고 나가는데 번거로워서 망설였는데 한 번 나갔다오니 아이가 늦게 자도 화가 안 나더래요. 그때부터 자주 밖에 나가게 되었다고 해요.



솔직히 그땐 그 엄마와의 시간이 어색하고 불편했어요. 육아 스타일이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에요.  아이가 하나라서 그런가 집도 깔끔하고, 자신도 잘 꾸미고, 아이를 재워야 할 시간에 카페까지 간다니, 저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답니다. 그 엄마는 자신이 육아를 하면서 어떤 점이 힘든지를 잘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좋은 에너지가 저녁 먹고 하는 밤 외출로 채워진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니, 괜한 질투를 느꼈던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어요.



그맘때 저는 엄마라면 당연하게 아이들을 위해서 뭐든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민한 아이 피부에 해로울까 봐 아이 로션 하나만 발랐고요. 아이 얼굴에 묻을까 봐 색조 화장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요. 철마다 쑥쑥 크는 아이 옷은 자주 구입하면서도 내 옷은 그냥 잡히는 대로 입고 다녔네요.


무엇보다 두 아이 육아를 하면서 늘 피곤하고, 힘들었으면서 어떻게 해야 조금 덜 힘들고 피곤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피곤하고 힘든 것을 감당하는 것도 엄마의 몫이라 생각했거든요. 그게 엄마다운 선택이라 여겼으니까요. 아이를 위하는 것이라 자부하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자신을 꾸미는데 시간을 쓰는 엄마들을 좋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네요.



어떤 하나의 모습을 그려놓고, 그것에서 벗어나면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이상한 프레임을 씌워 놓은 것도 나였고, 그것으로 괴로움을 자처한 것도 나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정작 내가 좋지 않은 시각으로 엄마답지 않다고 생각했던 그 엄마는 자신을 챙기고 아끼는 동시에 자신에게 맞는 행복한 육아법까지 찾아 해내고 있었던 거였어요. 엄마와 아이 둘 다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행동으로 옮겼던 것이었고요.






위에서 소개한 동네 엄마 말고도, 한 명의 엄마가 더 떠오르네요. 그 엄마는 이사 오기 전에 살던 곳에서 만났던 엄마인데요, 우리 큰 아이보다 4개월 정도 먼저 태어난 딸을 키우는 엄마였어요.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보았던 엄마들 중에서 체력과 의욕이 최고점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뭐 하나 빠지지 않는 만능 맥가이버 같은 엄마랄까요? 그 엄마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왔던 걸까요?



임신 전부터 만났었는데, 저보다 나이도 많았고, 아이를 7년이나 기다려 어렵게 가진 엄마였어요. 그래선지 태어나기 전부터 육아용품, 육아 교육에 대한 정보 등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공부하는 열혈 엄마였어요. 거기에 자기 관리도 엄청 철저했어요.



큰 아이가 백일 정도 되었을 때, 집에 아기를 데리고 놀러 왔는데, 살이 많이 빠져 날씬해졌고, 모유 수유하는 엄마가 맞나 싶을 정도로 예쁘게 입고 왔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아기가 안겨 있다 토를 해도 여유 있게 닦아 내고, 자기 아기 보는 것도 힘들 텐데 우리 아기까지 업어서 재워줬어요. 전 그때까지 아기를 혼자 업으면 머리가 흔들려서 정말 큰일 나는 줄 알았거든요. 언니 등에 업혀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곤히 잠든 아기를 보면서 얼마나 눈물이 났던지요.



자신을 아끼면서도 충분히 괜찮은 육아도 할 수 있었던 거예요. 나를 포기해야만 하는 게 엄마가 되는 길이 아니더라고요.



그때는 미처 몰랐어요. 언니가 무엇 때문에 자신을 가꾸는 일에도 열심히 했던 것인지를요. 지금은 잘 압니다. 언니는 육아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오는 줄 알고 있었던 거예요. 제가 질투했던 앞 집 엄마처럼요. 바로 나 자신을 아껴주고, 내가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도록 만들어 가면서 말이죠.



이젠 저도 변했어요!



아이들 로션만 대충 바르던 제가, 아침에 세수하고 나면 바로 정성껏 수분 크림을 바르고요, 선크림을 발라 줍니다. 작년 생일에 선물로 받은 헤어 오일을 손바닥에 짜서 문지른 뒤, 머리를 매만져 줍니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는 꼭 비타민 c가 듬뿍 들어 있다는 수면 팩을 하고 잔답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꼭 하는 잠자기 전 루틴이 되었어요.



이렇게 하게 된 이유는 딱 하나였어요. 나를 돌보는 일이야말로 육아도 내 일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어요. 그렇게 하기 위해선 위에서 소개한 엄마들이 그랬듯 나 자신을 가꾸고, 소중하게 대해줘야 합니다.



물론 육아 자체가 고난도인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에겐 이 말조차도 배부른 소리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하던 아이를 돌보다 지쳐서 아침을 맞았는데, 일어나서 정성껏 로션을 바르는 일조차도 굉장히 피로하게 느껴질 수 있거든요.



하지만 그것만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그럴수록 더 나를 가꾸는 일을 루틴처럼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을요.



아주 잠깐의 짬은 낼 수 있어요. 그 짬에 핸드폰을 손에 들지 말고요. 편집된 남의 인생의 일부를 보면서 좋아요를 누를 시간에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을 보며, 내 얼굴을 어루만져 주는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까요?



오소희 작가님의 엄마의 20년이라는 책에는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눈썹부터 그리자'라고요. 그 말도 지금 제가 하고자 하는 말과 다르지 않아요.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야 할 존재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말해 줄 거잖아요? 그런데 엄마인 나에게는 왜 그 말을 해주지 않을까요? 행동으로 스스로에게 보여 주면 어떨까요?



눈썹을 그리는 것처럼 작지만 나를 가꾸고 소중히 대하는 태도를 말이죠! 나를 가꾸고 소중하게 대해줘야 결국 우리 아이들을 위해 쓸 수 있는 육아 에너지도 함께 올라가게 된답니다. 나를 성장시키는 시간을 갖고 미래를 꿈꾸게도 만들어 줍니다.



진짜냐고요? 일단 거울 앞으로 달려가 보세요. 아마 거기서부터 시작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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