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푸동 강변에서 왕홍을 꿈꾸는 이들과 함께 나도 내일을 향해 간다.
지난 12월의 마지막 날, 두 아이와 함께 북경발 비행기에 몸을 싣고 상해로 향했다. 가는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이곳에서 시작하게 됨에 묘한 기대감마저 생겨 두 볼은 복숭앗빛으로 물들었다. 새 해 달력을 걸자마자 이삿짐이 도착했다. 주말 내내 부엌에 쪼그려 앉아 이것저것 치우고 있던 내게 남편이 콧바람 좀 쐬자며 소매 끝을 잡아끌었다. 사무실에 일도 있으니 겸사겸사 드라이브 나가자며.
남편은 간단히 일을 마치고 곧장 근처 강변으로 차를 돌렸다. 푸동강 북쪽의 어느 한적한 골목에 주차했다. 나는 핸드폰 앱을 열어 근처 맛집을 검색했다. 그러자 남편이 내게 손짓을 했다. 인스타 감성의 카페를 좋아하는 내게 찜해놓은 장소가 있다며 따라만 오라고. 며칠 동안 희뿌옇던 하늘도 오래간만에 활짝 웃었다. 계절은 아직 겨울에 놓여있지만, 이곳 온도는 화사한 봄에 다가서 있었다. 사람들의 옷과 표정, 움직임들이 연둣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낯선 발걸음으로 주변을 수없이 살피며 걷는 우리와 같은 이방인들과 이곳이 제집처럼 익숙해 보이는 사람들이 뒤엉켜 있는 주말의 오후 거리가 내가 상해에 와있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이곳은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줬다.
역시 주말 오후였다. 남편이 가려했던 노상 카페에 자리가 있을 리가 없었다. 급히 다른 곳을 물색해 움직였지만, 처음 가보는 곳이라 방향을 잘못 잡아 헛걸음만 했다. 아쉽지만 집에 돌아가려 지나온 길을 그대로 밟아가는데 아까 그 카페에 빈 테이블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서둘러 앉아 샌드위치와 따뜻한 라떼,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강 너머로 상해의 랜드마크 삼종 세트가 만세를 부른다. 진마오 따샤, SWFC, 동방명주가 한눈에 들어오는 한적한 곳에서 티타임을 가지니 이곳이 낙원인 듯 느껴졌다.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산뜻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데 어느새 우리의 전후좌우에는 어깨가 푹 파이고 짧은 치마에 미용실 드라이 바람이 담겨있는 머릿결로 촬영 중인 사람들이 바글바글.
“아무리 햇살이 좋아도 그렇지, 1월 초인데 안 춥나? 크리스마스 때 배송 마무리 못했나 봐. 다 루돌프 코야.”
“왕홍이 되려 그러는 거지. 요즘 장래 희망을 왕홍이라고 하는 왕홍이라 하는 아이들도 많다고, 우리나라에서도 프로게이머가 꿈이라는 아이들이 한 반에 절반이었다며?”
“왕홍이 뭐야?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너도 중국에서 생활한 지가 꽤 되었는데, 인플루언서 같은 거지 뭐.”
“아는 분이 샤오홍슈라는 게 있다고 말은 했었어. 나보고 거기에 캘리그라피 올려보라고.”
중국 생활을 어느 정도 한 사람들이라면 들어봤을 법한 단어였다. 나 또한 정확한 의미나 내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채 수없이 스쳐 지나온 듯했다. 남편은 남은 커피를 마시며 설명을 해주었다.
샤오홍슈(小红书)는 중국에서 핫한지 꽤 된 애플리케이션이다. 샤오홍슈를 바이두에서 검색해보니 ‘小红书 – 标记我的生活’라는 문구를 볼 수 있었다. 이는 ‘나의 일상을 기록하라.’라는 의미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스타그램과 닮은 듯 달랐다. 인스타그램은 개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앱이라면, 샤오홍슈는 다른 이와의 정보 공유의 성격이 강한 쇼핑몰에 가까운듯했다. 왕홍은 '인터넷 유명인사'라는 뜻의 왕뤄 홍런의 줄임말이라고. 网络[wǎngluò] 인터넷이나 온라인이라는 단어에 잘 나가는 사람이나 인기인이라는 뜻을 가진 红人[hóngrén]의 합성어이다. 가볍게 나온 외출로 상해의 핫플레이스와 새로운 문화에 대해 알게 되다니!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며 신나 하는 내게 이걸 이제 알았냐며 남편이 툭툭 쳤다.
노천카페에서 일어나 주차한 곳으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 다리를 건넜다. 이곳에도 화보 촬영 장비들을 들고 나와 사진기 셔터를 누르는 이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한 손에는 커피 다른 손에는 애완견의 목줄을 잡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주인 잘못 만난 크고 작은 개들이 고생스러워 보였다. 그렇지만 그들의 주인님이 카메라 렌즈를 향해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과 써 올린 글들이 '좋아요'를 많이 얻게 되면 멍멍이들의 밥그릇도 금으로 변할지도.
나 또한 꿈꾸는 바가 있어 블로그, 인스타, 브런치 등에 글과 글씨 사진들을 열심히 올리고 있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검색창을 열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 앱스토어에서 샤오홍슈를 찾아 바로 다운로드까지 완료했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기 전에 앱 가입과 첫 이미지를 올리는 데까지 일사천리로 부릉부릉. ‘우왕~ 나도 드디어 빨간책 한 권 생기는 건가!’ 대단한 일이라도 해낸 듯 뿌듯해졌다. 서당 개 10년에 풍월을 읊듯 중국 생활 10여 년 만에 이뤄낸 쾌거라 할까나? 차에서 내리며 샤오홍슈 앱을 닫고 핸드폰을 가방에 쑥 밀어 넣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차에서 내려 걷던 내게 남편이 물었다.
‘오늘 그렇게 재미있었어? 뭘 그렇게 계속 웃니?’ ‘응, 완전 새로운 경험이랄까?’ ‘그래? 그럼 자주 가보자.’ ‘그래. 참 좋다. 그렇지?’
이렇게 중국이라는 나라에 한 걸음 다가가며 상해라는 도시에 녹아든다. 코로나로 일상이 무너진 지 2년여가 넘어가는 요즘 이런 하루가 내게 정녕 큰 선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