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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Aug 28. 2020

박아나의 일상뉴스

코로나 시대, 신사의 품격

 에이모 토울스의 소설 <모스크바의 신사>에는 신사가 실제 존재한다면 과연 이런 사람일까 싶을 주인공, 알렉산드르 로스토프가 나온다. 구러시아에서 백작이었던 그는 권위의식에 쩐, 사사건건 잘난 척하는 그런 백작이 아니었다. 유연하면서도 품위 넘치는 태도, 여기에 따뜻한 마음을 갖춘, 잘난 척하는 게 아니라 그저 존재 자체가 멋진 신사다. 그런 그에게 무슨 근심 걱정이 있겠냐마는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러시아는 혁명의 바람이 불기 시작해, 지금의 코로나 팬데믹 같은 혼돈의 상황이 일어나고 있었다. 스탈린이나 볼셰비키란 말이 지금의 마스크나 사회적 거리두기만큼이나 많이 등장했던 시절, 서른세 살의 로스토프 백작은 모스크바의 메트로폴 호텔 밖으로 평생 나갈 수 없다는 종신 연금형을 선고받는다.


  종신 연금형이라...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집콕이 일상이 되어서 그런지  더욱 와 닿는다. 아예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면 그런가 보다 할 수 있겠지만, 요 며칠 강화된 집콕을 해보니, 집이 감옥처럼 답답하게 느껴진다. 물론 밖으로 돌아다닌다 해도 이 더위에 마스크를 써야 하니 답답한 것은 매한가지지만. 집콕의 또 다른 괴로운 점 중의 하나는 하루가 너무 길다는 것이다. 활동량 자체가 적다 보니, 몸이 덜 피곤해서 그런가. 아침에 자꾸 일찍 눈이 떠진다. 밤에도 잠이 빨리 오지 않는다. 좋게 해석하면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늘어난 거다. 이럴 땐 모스크바의 신사처럼 교양을 두루 갖추고 있지 않아 다행이랄까. 갖춰야 할 학식과 교양이 많아 심심치는 않다.


  로스토프 백작의 호텔콕은 호텔이 규모가 크고 여러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집콕보다는 덜 답답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종신 연금이다. 종신, 그러니까 평생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지워버릴 만큼 무겁지 않은가. 요즘 종종 “코로나 이후의 시대는 없다, 코로나와 함께 하는 시대만 있을 뿐”이라는 말을 듣는다. 들을 때마다 너무 섬뜩해서 머리를 절레절레 젓는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오기는 하겠지만, 안정성 문제도 그렇고 효과도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다. 여기에 그 어떤 것도 확실한 것이 없는 이 상황이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매일 우리를 급습한다. 이러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추억 속으로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


 백작의 시대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사람들과 2미터 이상 거리를 둬야 하는 그런 제약은 없었으니 우리보다 나아 보이기도 한다. 마스크 없이 호텔에 방문한 손님들과 언제든 술잔을 기울이고, 늦은 밤까지 침 튀기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지만, 혁명의 여파는 컸다. 어릴 적 그의 친구, 미시카는 체호프 편지의 일부 구절을 빼야 한다는 명령에 항의해 수용소로 보내졌다. 백작도 이름만 백작이지, 그가 갇혀있는 호텔의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해야 했다. 센스꽝 웨이터 출신의 비숍은 당의 인맥을 이용해 이 호텔의 지배인이 되었는데, 백작을 비롯한 호텔 직원들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또 괴롭혔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지옥으로 보내질지도 모르는 현실과  ‘이제 마스크도 패션’이라는 광고를 보고 있는 지금의 상황, 모두 막막할 뿐이다.


 코로나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면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제약은 커지고 있다. 어딜 가든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지만, 오늘 발표된 강화된 정부의 지침을 보면 마음이 더 조여 온다. 이제는 스타벅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실 수 없고, 피트니스 센터도 당분간 갈 수 없다. 커피 한 잔으로 나누던 잠깐의 대화도 활력을 주었던 운동도, 아쉽지만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는 안녕이다. 내 마음대로 뭔가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이제껏 살면서 큰 제약을 받아본 적이 없던 나, 우리로서는 적응하기 힘든 일이다. 주민등록번호만큼이나 중요한 체온도, 자연스럽게 찍고 들어가는 QR 코드도 거부할 마음은 전혀 없지만, 이 모든 것이 예전과는 너무 달라졌음을, 그리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길이 전 세계의 확진자 숫자만큼이나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더 무서운 일은 지금의 제약은 깜찍한 수준일 수도 있다는 것. 설마... 지금도 충분히 괴로운데. 부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이 스릴러물이 지금까지 나온 예고편에 등장한 공포가 전부이길 바란다.


 남이 보면 가혹한 연금생활을 이 모스크바의 신사는 그야말로 신사답게 우아하게 보냈다. 과거의 것과는 무조건 결별하라는 새로운 시대의 정신에도,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러시아의 변화에도, 백작에 대한 열등감으로 어떻게든 그를 보내버릴 틈을 노리고 있는 지배인 비숍의 도발에도, 놀라울 정도로 유연하고 담대한 태도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백작의 부모님이 콜레라에 굴복해 돌아가셨을 때 백작의 후견인인 대공이 백작에게 얘기해 준 “역경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며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그를 지배했을까. 또 다른 혹독한 시대를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이 말을 적용할 수 있으려나. 나의 일상이 무기력함에, 불안함에, 우울함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하루를 잘 보낼 방법이 있을까. 코로나 블루 따위에 지배당하지 않게,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위협에 대한 맷집도 키우면서 그렇게 나는 강해질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위안이 되는 사실은 로스토프 백작의 연금 생활만큼이나 긴 이 이야기도 결국 끝이 있다는 것이다. 혹시 이 책을 읽고 싶은 분들을 위해 자세한 결론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게 백작을 위한 최상의, 최선의 끝인 듯. 지금의 팬데믹이 연극으로 치면  몇 막 몇 장 중에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끝이 있겠지. 그 끝이 많은 사람들에게 가능한 최상의, 최선의 끝이길 바라본다.

에이모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 , 누구나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거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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