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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스 Apr 24. 2023

살리는 계절

며칠 전 다녀온 파리는 여전히 친구의 겨드랑이가 필요한 날씨였는데, 베니스로 돌아오니 벌써 봄이다.


아침 장을 보러 가는 길, 쾌청함이 온몸을 감싼다. 집 앞에는 온통 부드럽게 흔들리는 나뭇가지들. 기분 좋게 새어 나오는 한숨에 몸과 마음이 곧장 가벼워진다. 매년 찾아오는 봄인데 어떻게 매번 이리 반가울까? 매년 더 반가워지기만 한다.


봄이 선사하는 벅찬 마음을 부여잡고 허허벌판에 있는 대형마트로 향했다. 공놀이를 하고 있는 강아지와 양 옆에 줄지어 각자의 색으로 피어나고 있는 나무들이 보인다. 잠시 걸음을 멈추어 고개를 힘껏 들어보았다. 채도가 한참 높아진 하늘과 나무의 조합이 두 눈에 가득 찬다. 말도 안 돼.라고 중얼거리게 되는 예쁨. 감탄의 문장을 내뱉는 순간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자주 부유하듯이 살아간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멀찍이서만 바라볼 때, 납작한 제삼자가 되어 무엇이든 쉽게 판단할 때 주로 그렇게 느낀다. 그럴 때는 온몸의 감각을 잃어버린다. 내가 뱉는 말들은 무게를 잃어 전부 공중에 흩어지고, 두 발로 걷고 있어도 땅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내 몸은 나의 속에만 갇혀버리고 이 세상에 속하지 못한다. 살아있음의 정의가 허무로 쉽게 축소된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나는 땅에 두 발을 정확히 딛고 있었다. 봄을 느꼈고, 감동을 받았다.

살아있다는 감각을 성실히 체험하는 일은 영원한 과제일 테다. 자연스럽게 살아지는 기적 같은 날도 있지만 대부분의 날에는 애를 써서 호흡을 확인한다.


그렇기에 살아있다는 것이 축복처럼 느껴지는 순간은 꼭 기록하고 싶다. 거저 받은 선물이니 기억해야 한다. 기록이 쌓이다 보면 어떤 날들이 나를 살아있게 하는지 알 수 있겠지.


올해도 다시 살아보라고 요청하는 봄의 너그러운 기회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모두들, 새 봄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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