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들에게도 물려주고 싶은 자연의 선물
일본 유일의 민물 김 공방 카와타케 엔도 고킨도(川茸遠藤黄金堂)
흔히 ‘김’이라 함은 바다에서 자라는 걸로 생각하지만 민물에서 생식하는 김도 있다. 강원도 삼척 소한 계곡과 후쿠오카현 아사쿠라 시 코가네 강(黄金川) 일대에서만 발견되는 민물 김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바다 김보다 칼슘 함유량이 14배나 많고, 철분과 만니톨, 불포화지방산인 올레산과 리놀레산을 다량 포함한 덕에 자연의 보양식이라고도 불리는 민물 김은 일찍이 소한 계곡 일대 주민 사이에서는 산후조리 음식으로 쓰였다. 또한 조선 시대에는 진상품으로서 임금님 밥상에 올라갔다.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고급 식재료’로 각광받으며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오늘날, 후쿠오카 아사쿠라 시 고가네 강(黄金川) 근처에는 일본 유일의 민물 김 공방 카와타케 엔도 고킨도(川茸遠藤黄金堂)가 있다. 1793년, 엔도 키사부우에몬도모(遠藤 喜三右衛門共)가 문을 연 이후로 17대째 명맥을 잇는 이 공방은 양식과 채취, 건조에 이르기까지 ‘창업 당시’의 방법을 지켜 나가는 한편 자연보호에도 힘쓰는 진짜배기 노포(老舗)다.
일정에 없던 취재, 벼락치기로 익힌 민물 김
앞서 방문한 전통 종이 공방 ‘치쿠젠 아키즈키 와시쇼’(筑前秋月和紙処)의 이노우에 사장님 소개로 알게 된 민물 김 공방 카와타케 엔도 고킨도. 예정에 없던 취재라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 판단해 벼락치기로 정보를 모았다.
‘민물 김은 민물에서 자라는 녹조류 중 유일하게 잎의 모양이 나뭇잎과 같은 엽상(葉狀) 형태를 띠며, 2년에 두 번 유성생식과 무성생식을 통해 증식…(중략)… 올레산과 리놀레산 함량이 바다 김보다 3~4배 높아 콜레스테롤 농도와 혈당을 낮춰주며, 아토피성 피부염 억제에 효과가 있는 ‘사크란’을 다량 함유한 덕에 의약품 원료로도 각광받는다…’
대략적인 지식과 ‘질문’을 정리한 다음 7km가량을 달려 검은 기와를 얹은 으리으리한 목조 건물이 길게 이어진 가게에 도착했다. 마당 앞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려는 순간, 바로 옆 건물에서 차분한 인상의 남성 한 분이 나왔다. 17대 후계자인 엔도 준(遠藤 淳) 사장님이다.
엔도 : 어서 오세요. 이노우에 사장님에게 연락받았습니다. 엔도라고 합니다.
급히 잡힌 취재에도 싫은 내색 없이 맞아 주시는 사장님과 명함을 주고받은 후 가게로 들어갔다. 현관 바로 옆으로는 가게의 발자취를 가늠할 수 있는 역사적 사료와 표창장, 유명 인사들의 사인으로 가득했다.
엔도 : ‘이것저것 많이 진열되어 있죠? 저희 가게의 역사를 증명하는 소중한 자료예요. 이와 관련해서 드릴 말이 많은데 가게의 역사, 민물 김과 관련한 이야기는 조금 이따가 들려드리도록 할게요. 우선 여기 앉으셔서 차라도 한 잔 드세요.’
사장님의 안내를 받아 실내 한쪽에 마련된 소파에 앉았다.
엔도 : 이따금 국내 방송이나 신문사에서 취재 요청이 들어오기는 하는데 한국 분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는 작가님과 마주하는 건 처음이라 신기하네요. 실은 제가 한국과 깊은 인연이 있거든요.
무슨 말이냐 하면 몇 년 전, 저희 공방에 한 한국 여학생이 1년 가까이 머물며 일을 도운 적이 있어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다 일본 전통 건축물에 흥미를 느껴 건너온 친구였는데 박상을 뵈니 그 아이가 생각나네요.
쉬는 날이면 다른 직원들과 어울려 외식도 하고 나들이도 했는데 사실 이런 시골에서 다른 나라 사람과 지내는 일이 흔치 않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국경을 뛰어넘어 마음을 나누고 교류할 수 있어 참 좋았어요. 그리고 일본 전통 건축물과 민물 김에 관심을 가져 주는 것도 고마웠고요.
사장님 마음에 자리한 소중한 기억으로 분위기가 무르익는 사이, 가게 안 쪽에 계시던 사모님께서 차를 내주셨다.
엔도 : 이거 한 번 드셔 보세요. 민물 김으로 우려낸 차(茶)예요.
사장님의 권유로 잔을 들었다.
박 : ‘고맙습니다. 자극적인 맛이 하나도 없네요. 식감도 매끈매끈하고요.’
2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
잔을 비우고 사장님의 안내를 받아 마당으로 나갔다. 본 건물 옆, 그러니까 작업장 바로 맞은편에는 사람 키보다 큰 비석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그 앞에 선 사장님께서 아사쿠라 시의 역사와 가게의 발자취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에도 시대, 아사쿠라(朝倉) 시는 아키즈키(秋月) 가문의 거점이었다고 한다. 매년 5만 석의 소출을 받던 이 집안은 전국 다이묘(영주) 중에서도 작은 세력권에 속했다. 때문에 정기적으로 에도와 영지를 오가야 했던 *참근교대제(参勤交代)로 인해 만성적인 경제난에 시달렸다. 이를 타개하고자 가문에서는 산업 진흥을 도모했다.
*참근교대(参勤交代)제도
➡에도 막부(1603~1868)가 전국 영주(다이묘) 세력의 반란을 막는 한편 이들에게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주기 위해 정기적으로 에도와 영지를 오가게 한 제도
그런 가운데 1763년, 사장님의 선조인 엔도 고자에몬(遠藤幸左衛門)이 코가네 강 일대에서 민물 김을 발견한 후 맛을 확인했다. ‘향미(香味)가 담백한 게 반드시 쓸모가 있을 것’이라 판단한 그는 민물 김에 ‘카와타케’라는 이름을 붙인 후 건조 및 가공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788년, 고자에몬의 아들인 엔도 키사부우에몬도모(遠藤 喜三右衛門共)가 독자적으로 민물 김 건조법을 개발했다. 이후 그는 건조한 김을 아키즈키 영주에게 헌상했고, 이를 맛 본 영주는 몹시 기뻐하며 민물 김에 ‘쥬센다이(寿泉苔)’라는 이름을 내렸다. 그리고 이 해(年) ‘엔도 고킨도’가 창업했다. 그 후 가게에서 만든 쥬센다이(寿泉苔)는 에도 막부에 바치는 ‘헌상품’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아키즈키 영주는 고가네 강에 『이곳에는 막부에 바치는 헌상품이 자란다. 따라서 그 누구도 강에 들어가 민물 김과 고기를 잡아서는 안 된다. 』라 쓴 비석을 세운 후 강이 오염되지 않도록 철저히 보호했다.
엔도 : 비석이 참 크지요? 이 비석과 함께 저희 가게가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엄격한 신분제가 존재한 에도 시대에는 일반 백성, 아니 무사들조차 막부에게 헌상하는 물건을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됐거든요. 그런 와중에 저희 집안은 아키즈키 영주의 허가를 얻어 아무나 못 들어가는 고가네 강에서 민물 김을 채취하는 한편, 이를 건조해 상품으로 만들고 강 상하류를 깨끗이 관리하는 일을 해 왔어요. 지금도 매일같이 강 주변을 청소하고 있고요. 이왕 말도 나왔겠다. 같이 강에 나가 볼까요? 차로 5분 거리에 있어요.
사장님의 호의에 차를 얻어 타고 좁은 농도(農道)를 돌고 돌아 도착한 강 주변은 쓰레기 하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고 물이 흐르는 가장자리에 검은색 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엔도 : 여기가 고가네 강이에요. 참 작죠? 상류에서 하류까지 길이가 2km 밖에 안 되는 데다 강폭도 좁아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지금보다는 넓었는데 강 상류에 데라우치 댐(寺内ダム)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수량(水量)이 감소, 이로 인해 강폭이 좁아지고 수질도 나빠졌어요.
엎친데 겹친 덕으로 지난 십 수년간 지구 온난화도 심화했죠. 그 결과 햇살이 강해지고 일조량도 늘면서 민물 김 서식지가 많이 파괴되었어요. 이는 수확량의 감소로 이어졌죠. 한창때에 저희가 연간 200톤 이상의 민물 김을 수확했는데 지금은 10톤이 될까 말까 한 정도예요. 이를 타개하고자 펌프로 지하수 물을 끌어와 강에 공급하기도 하고, 물 위에 검은 비닐을 씌워 수온 상승을 막는 등 할 수 있는데 까지 다 해 봤는데 저희 가게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더라고요. 수확량이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에 월 50만 엔 이상 지하수 펌프 가동비로 지출하니 죽을 맛이었어요.
그런 와중에 2012년과 13년에는 연달아 집중호우가 발생하면서 민물 김이 전멸하다시피 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이렇듯 모든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으면서 2013년에는 가게 문을 닫을 뻔했어요. 그때 저희 가게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시 관계자분들과 지역 사회 구성원들이 큰 관심과 지원을 보내주셨어요. 먼저 시장님과 환경 부서 공무원들이 고가네 강에 시찰을 나와 상황을 파악한 다음, 지하수 펌프를 가동하는데 필요한 지원책을 마련해 주셨어요.
동시에 지역 사회 많은 분들이 강 일대를 깨끗이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셨어요 그 덕에 큰 위기는 벗어났어요. 하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지구 온난화 문제와 환경 개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10년 후에는 ‘민물 김’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몰라요.
250년간 이어온 전통과 자연이 주신 소중한 선물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없게 되는 것만큼 비극적인 게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민물 김’을 지키는 데 전력을 쏟고 있어요.’
박 : 민물 김을 지키는 대책이라 함은?..
엔도 : 현재 저희 가게 종업원이 저를 포함해 5명인데, 그중 두 명은 매일 강에 나가 청소를 해요. 저도 틈틈이 주변을 돌면서 상황을 파악하고요. 그리고 ‘민물 김’의 존재를 널리 알려야 사람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멸종 위기 해결에 힘을 기울일 것이라 판단하여 지역 주민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견학’과 민물 김 채취 체험도 열어요. 매년 초등학생들이 저희 공방에 방문해 민물 김 채취 및 건조 과정도 보고, 강에 나가 쓰레기도 줍는데 참 좋아해 주더라고요.
그리고 민물 김 보호뿐만 아니라 저희 가게의 역사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도 다양한 대책을 강구해요. 우선 몇 해 전, 온라인 판매 사이트를 개설해 전국 각지로 민물 김을 판매하는 데 ‘일본 유일의 민물 김 공방’이라는 타이틀과 민물 김에 함유된 다양한 성분들이 알려지면서 호평을 받았어요.
저희 집에 초등학생 아이가 둘인데 걔네들에게 가게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자연환경 보호뿐만 아니라 안정된 판로를 열어둬야 한다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 할 예정입니다.’
소개는 소개를 싣고
사장님의 이야기를 끝으로 졸졸졸 맑은 물이 흐르는 강을 뒤로한 채 가게로 돌아왔다. 이후 마당 한쪽에 마련된 건조장과 작업장을 돌아보는 것으로 취재를 끝냈다.
박 : 사장님,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귀한 시간 내주시고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도 민물 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네요. 사장님의 바람대로 100년 200년 후에도 민물 김이 사랑받길 기원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저도 좀 더 자연보호에 신경 쓰도록 할게요.
엔도 : 아니에요. 저야 말로 이렇게 좋은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좋았어요. 박상, 저는 '일본 유일의 민물 김 공방'이라는 타이틀과 더불어 200년 넘는 역사와 전통을 이어 나가는 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전통을 지키고, 많은 분들께 민물 김을 알리는 걸 저의 사명으로 여겨요. 그런 의미에서 박상을 통해 더 많은 분들께 ‘민물 김’이 알려진다 생각하니 참 기뻐요.
아, 마지막으로... 아마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는데 저희 아사쿠라 시와 이웃한 야메 시(八女市)에는 코노미노엔(このみの園)이라고 하는 차 공방이 있어요. 제가 알기로 거기는 3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데, 언제 기회가 닿으면 한 번 들러 보세요. 그곳 사장님께서도 역사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계셔서 책을 쓰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아무쪼록 오늘 이렇게 만나 뵐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