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다시 한번 생각해 봐. 다시 한번 인생을 새롭게 봐 봐.

by 이네숨

죽음 가까이의 삶

현재의 영혼이 제대로 숨 쉬지 않으면

부서진 조개껍데기처럼, 현재를 상실한 과거의 사람, 곧 죽음 그 자체의 삶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유일히 가진 갑옷이란 상징적인 것들이었는데

잔다르크와 같은 뜨거운 심장

파도가 밀려와도 계속 헤엄쳐 나가는 무쇠 팔

넘어져도, 용기를 갖고 다시 일어서서 붙잡을 수 있는 창 같은 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 3가지 요소가 스스로를 망치고 있는건 아닐까 싶었다.


나의 직업은 헬스케어 사업기획팀의 PM이었다.


협업하는 타사 개발자의 일정을 직접 조율할 수 없어서 일정이 지연될 수 밖에 없었다.

회사의 대표는 성과보고의 날, 지연의 이유를 묻자

나는 자초지종 설명을 했다.


당연히 개발자의 개발 기술로 인해 그 일정에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개인정보 보호로 인해 암호화처리 등등의 기술적인 설명을 차근히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내 말을 끊으며 변명하지 말라고 하며 손으로 시선을 막고

매섭게 노려보았다.


"기획자가 개발이야기 하는건 변명이다."


그 대표 말 한 마디와 눈빛과 차단하는 시선은

예민한 나의 감각들이 나를 압도하면서 공포를 느끼게 했다.


더구나 옆에 있던 팀장은 입사하기도 전에 하지 못했던 업무를 마치 내가

못한 것처럼 말했다.


퇴사 당일 전까지 더 괴로운 소리를 들었다.


다른 팀의 팀장은 매일 같이, 소리를 지르는 일이 다반사이니

대표가 한 행동은 비교할 것도 아니에요. 뭐 이정도 찍어누름은 찍어누름도 아니죠. 라는 반응과

그냥 말을 하지 말았어야죠. 라는 말들로 인해


이 것이 진짜로 회사에서 나올법한 대화인가 싶었다.

나는 깊이 상처받았다.


이 회사에서, 이 시련으로부터 단단하고 성장 해줄꺼야라는 바보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예민하고도 사람관계에 피해를 끼치는 걸 싫어하는 것으로 남몰래 끙끙거리고

일정에 맞춰야 하는 업무량으로 인해, 다시 공황장애가 오는건 아닐까 싶은 걱정과 두려움들.


그러나 업무는 남들보다 잘해냈지만 성과는 결국 정량적으로 평가받아야 했기 때문에

한달 동안 몸이 아프고 미뤄둔 연차를 보면서

이 엉망진창 조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건 아니구나 싶었다.

어쩄거나 선택은 나의 몫이었고 퇴사를 결정하는데는 오래걸리지 않았다.


성과보다는 내 개인의 정체성 고민이 더 깊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무수한 풍랑 속에 뒹굴고 거친 여행 끝에 부서진 조개껍데기에서

바다 모래 위에서 "내 모습"을 발견했다.



모래 위에서 바람을 느끼고 있을 작은 조개껍데기

IMG_7748.HEIC 퇴사 후 마주한 모래 위 조개 껍데기




그리고

퇴사 후 1주일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은채 머리를 비웠다.

복잡했던 마음 뒤로, 미뤄 두었던 브런치 연재를 통해 내 삶을 다시 소생시키고 싶었다.


그 잔잔한 바람과 파도소리를 들으며,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하고자 했던

책방투어, 독립서점에 대한 궁금한 이야기

개인적으로 눈길 가는 책들. 애정하고 경외할 수 있는 것들을 향해서 말이다.



부서진 조개껍데기 위에 새로 걸맞는 갑옷에 날개를 달아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는 날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일들에 기쁨이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조앤 치티스터의 글에서 다시, 새로움, 아름답게 빛나는 있을 것이라는 상상에서

위로를 얻는다.




“살면서 이해되지 않는 것을 여기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봐. 다시 한번 인생을 새롭게 봐 봐.

네가 미처 보지 못했던 곳, 예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을 테니까. “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 조앤 치티스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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