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서사가 머무는 곳
서로.
그곳에 왔다.
선유도처럼 따뜻하고 다정하고 로맨틱하고, 햇살 가득한 오렌지빛 공간
밝은 노랑과 붉은 빨강의 중간지점의 공간이라고도 말하고 싶다. 희망과 열정 사랑 사이,
처음에는 자기만의 방처럼 개인적으로 공간을 사용하는 곳이거나 심리상담을 해주는 곳인 줄 알았다.
고전문학 책들은 창가 가장자리에 빼곡히 있었고
인생, 철학, 심리, 행복에 관련된 책 중 큐레이션으로 추천해 주는 책들이 있었다.
그리고 한쪽면에는
익명의 누군가와 연결하여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편지함이 있었는데, 이 편지를 기다리고 다시 방문하고 답장을 쓰면서
이곳을 자주 찾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기다리던 편지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누군가가 적은 한 땀 한 땀 적어 내린 편지를 읽으며 혼자가 아닌 연결되어 있다는 서로라는 관계를 맺어주는 곳이기도 하다.
책방의 공간이 이런 역할도 할 수 있다는 점에 신선하고 나에게도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보고 싶은 공간이었다.
현재는. 우리는 쓰고, 읽고, 감정을 공유하는 것을 매우 다양하고 많은 매체로도 하고 있긴 하지만
직접 쓴 편지를 받았을 때의 밀려오는 설렘이나 들뜸의 감정은 단 한 번의 메일창의 클릭과 다르다는 경험을 해보았다면 오랜 시간
기다리다 보면 답장의 의미와 사연들이 얼마나 더 희귀하고 새롭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답장을 향한 보답으로 하루하루를 더 값지게 보내기 위해 자신의 하루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근사한 생각도 들었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베아트리체를 처음 본 순간, 갑자기 그의 인생이 성장했던 것처럼 말이다.
로맨스 서사의 많은 이야기 중
편지라는 매개체를 통해 감정과 소통을 연결 짓고자 하는 남녀 간의 사랑이 더 드라마의 깊은 순수함을 드러냈기 때문에 그 사랑의 여운은 오래간다.
그래서 한 번쯤 편지로 사랑을 이룰 수 있다면이라는 로맨틱한 상상을 청소년 시기 때 해보지 않는가?
또한, 종이에 누군가에게 대화형태로 쓴 글이 편지라면 꿈의 형상도 이미지의 형태로 쓰인 편지이지 않을까 싶었다.
나에게 오랜 지난 과거의 망각된 시간을 불러일으켜보자면,
종종 첫사랑이 꿈에 나타날 때가 있었다.
그 사람과 대화를 한다거나 꿈속에서 그가 건넨 선물을 받고 싶었는 마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꿈속에 그가 보낸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느꼈던 순간들을 생각해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이긴 했다.
그러나 그 꿈은 여전히 신비하거나 미스터리 한 상태로 이미지로만 떠올리거나 기억되어 있는 정도다. 그 꿈의 출처는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답장을 보낼 수가 없는 상태로
그 편지꿈은 유예되어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본능적으로 우리, 혹은 나라는 결핍된 자아는 사랑과 우정을, 더 친밀한 상호작용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우리가 관계 맺는다는 것은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계속 원하기도 하고, 미래의 연속성을 생각하면서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는 긴장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적을 꿈꾸게 한다.
그러나 결코 오지 않는 답장도 있을 것이다. 그 긴 침묵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그리고 끝나는 점이 되는 순간을 말이다.
“행복할 순간을 찾고 계시는지?
햇살 받기 좋은 곳에서 이렇게 책을 보며 나를 성찰해 보는 것이 진정한 휴식이죠”
근엄하고도 삶의 지혜를 전하는 철학자저럼 다소 진지해 보이는 고양이가 말을 걸었다.
“언제 행복할 것인가라는 책을 읽어보시오.”
고양이는 한숨 고르면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 책을 읽기 전 질문을 했다
언제는 과연 언제인가? 어느 때를 말하는 가?
생각해 보면 언제라는 것은 변화무쌍하다. 그 시간은 공간과 시간과 매듭으로 연결되어 있어 우리를 둘러싼 외부세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볼까?”라고 약속을 정할 때, 시간만을 생각하지 않는다.
만날 장소, 이야기, 또 만날 사람들의 얼굴과 표정들을 미리 생각하여 행복을 느끼고자 하는 것들을 고려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질문들을 이제 멈추고 책장 한편에 “행복”의 주제에 진열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10가지 질문이란 부제의 <언제 행복할 것인가> 책을 집었다.
스토아인을 위한 1분 철학의 예는 이렇다.
[성찰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기]
아침 성찰을 할 때 3가지의 질문
-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 나에게 좋은 것은 무엇이며 무엇이 나에게 내면의 평화를 가져다주는가?
- 나는 누구인가? (생각과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라는 것, 또 우리는 다른 모든 존재처럼 사라질 일시적인 존재라는 점이다)
저녁 성찰을 할 때 3가지의 질문
- 첫째 오늘 내가 잘한 것은 무엇이고 더 발전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이를 위해 오늘의 행동을 5년 전과 비교해 보자.
- 둘째 오늘 나에게서 보인 나쁜 습관이나 약점은 무엇인가?
- 셋째, 오늘보다 내일 더 나아졌으면 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이렇게 나의 성찰을 하다 보면 매일 아침마다 떠올리며, 자신에 대해 알게 되고 일상의 행동이 더 나아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여러 번 성찰을 했음에도 더 발전이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하여 잘 모르겠다라고 먼저 받아들이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나서. 자신에 대해 잘 알고 , 자신의 통제 영역에서 매우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더 나은 인생을 살게 되고
행복을 충분히 단편적인 시각, 기억에서 떼어낸 일부 조각이 아닌 현재의 순간과 하루의 시작 끝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행복과 멀어지는 것들에 대해서도 조언한다.
- 피로, 배고픔, 수면부족, 또 이런 것들은 다툼과 성급한 반응을 불러오는 악순환으로 보았다. 그리고 끊임없는 다툼과 격한 논쟁만큼 지치게 하고 소진시키고 불안하게 하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아인슈타인이 갈등 상황을 해결하는 방식에 대해 말한 부분을 언급한다 (아인슈타인이 스토아철학과 관련은 없지만, 그의 천재성을 빌려)
“똑똑한 사람은 문제를 해결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피한다.”
이 말에 나는 동의한다.
결국 그 논쟁과 소진시키는 에너지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하는 미숙함과 피로와 건강치 못한 상태에서 온다.
우리가 몰입하고자 하는 것들은 이 부정적인 것이 아님에도 결국 부정적인 결말을 맺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행복과 성취 능력이 자기 통제와 자기 수양, 또 삶의 평안함을 바라보는 기준들이다.
스토아철학과 의견에 다소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우리 삶이 원래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시스템에서 살아야만 한다고 배워왔으니 말이다.
현실은 냉혹하고, 냉담하고, 냉정하다. 그래서 더 평안함으로 가는 길은 어려운지 모른다.
정말 고양이처럼 느긋하게 바닥에 뒹굴고 책을 보는 평안함,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는 그 여유는 지나친 사치라고 말이다.
회사업무로 일에 치여있다 보니 부엌 찬장에 정리되지 않은 큰 그릇이 떨어져 바닥이 깨진 적이 있고
길에서 넘어지고, 피로감과 지친 마음 때문에 짜증이 얼마나 늘었는지 말이다.
난 그 깨진 그릇이 나의 일부이고 또 다른 누군가라고 보았다. 그래서 언제 행복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나 혼자로서 행복해질 수 없음을 알았다.
우리는 서로가 그 행복을 빌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행복이라는 말에, 누구와 함께 , 좋은 것을 지니는 마음으로 그 하루의 성찰도 더 발전해가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이 오렌지 빛 가득한 공간에 와서 행복, 휴식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와 서로, 성찰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심리편집샵, 서로]
주소:서울 영등포구 양포로 22길 4 4층 (선유도역 3번 출구 뚜레쥬르 건물 4층)
운영시간: 오후 3시~8시 (일, 월, 화 정기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