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글방] 부산 여행길에 만난 릴케

헌책방에서 얻은 추억 하나

by 이네숨


헌책방에서 얻은 추억 하나


예전에 초등학교 때 동대문과 한국외대 근처에서 헌책들을 종종 구매했었고 아직도 그 책들을 잘 보관하고 있는데, 유독 헌책들이 독일어권 책이긴 했다.


그런데 한국에는 헌책방 골목거리는 우리 골목상권이 사라지듯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래서 그 기억의 추억을 떠올릴만한 거리를 걷고 싶었는데

부산의 헌책방거리로 알려져 있는 보수동 책방골목을 평일에 갈 계기가 되어 찾았다.


길은 헌책방 골목을 상징하는 동상과 몇몇 안 되는 사람으로 한산하였다.

각 고서점마다 저마다 전문으로 파는 책들이 있었다.

일반 서점에서는 주로 검색을 한 후 해당 책을 찾고 읽어봤을 테지만, 책방 분위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종교, 어린이문학, 철학, 소설 등을 저마다 서점마다 취급하는 책을 분류하여 진열하고 판매하고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연대를 가진 책들과 어울려져 있는 빛깔이 바랜 노란색 책들을 하나둘 펼쳐보았지만

꼼꼼히 좌우, 위아래를 살펴보았지만 헌책방 주인 분 게 물어보는 것이 더 빠를 듯했다.


그래서 무슨 책을 찾을까, 고민을 했다.

최근에 융의 내면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 융은 릴케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듯했다. 또 릴케는 고서점 거리를 걷는 걸 좋아한다는 글을 어디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몇 군데 책방을 기웃거리며 릴케의 책이 있는지 물어보았으나 릴케의 책은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글방>에 들렸다.

부산- 보수동책방 <우리글방>


책방의 책들은 오래된 악보, 1980년대에 인쇄된 펭귄북스의 존 스타인벡의 영문버전 <생쥐와 인간>, 베트남어 사전 등을 보자, 이 헌책방의 시간이 80~90년대로 멈춘 듯 보였고 그 시대너머의 책들은 오히려 더 안쪽에 있거나 내려가는 계단 벽에 꽂혀져 있었다.



마치 새로운 것이 그곳에선 새롭지 않게 된다.라는 규칙을 가진 것 같아보였다.


현재라는 시간과 가장 가까이에 있다고 한 시간은 과거의 시간으로 흐를 뿐이며 새롭다고 정의하는 것은 "신, 새 상품"이라고 명명되는 것이지 결국 서로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누군가의 손에서 읽히고 몇 번이나 손바꿈이 되었을지 모르는 그 책들은 자신의 존재를 책장과 조화를 이루며 낯선 이들을 수없이 바라보고 잊어 왔을 것이다. 그들은 연결되고 하나로 보이는 우주였다.


그들은 십자형태로 묶은 책묶음이 되어 이곳으로 추방되었는지 모른다.


릴케를 찾다


책을 찾다가 , “릴케의 말테의 수기가 있나요?”

주인분에게 여쭤봤다.


벽면의 책을 보시더니 한 권을 꺼내주셨다. 릴케의 말테의 수기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올해가 릴케의 150주년이라고 해요. 릴케를 잘 모르지만 릴케가 헌책방을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책방을 운영하던 시인들도 많았죠. 한강작가도 책방을 운영한 걸로 알고 있어요."


흰 단발의 여성분이 부산사투리의 억양이 살짝 묻어난 조용한 소리롤 말씀해 주셨다.

사실 릴케의 시를 더 읽고 싶었다. 릴케는 시인으로 더 알려진 작가이기도 하니까,


책은 깨끗했고 연필로 밑줄 그은 몇몇 부분들이 있었고 1992년에 1쇄가 나온 책이었다.

앞면의 표지는 파리의 에펠탑이 길가의 물에 비친 장면을 묘사했는데

말테가 파리를 처음 방문했을 때 보았던 심적 이미지를 그려낸 것 같았다.



우리 글방에서 만난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의 첫 문장을 잠시 읽어보았다.


말테는 파리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며 자신의 의식을 묘사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파리의 첫인상은 우리가 흔히 아는 낭만과 아름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사람들은 살려고 이 도시(파리)로 모여드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여기선 모두 죽어간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로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번역은 출판사와 최근 소개를 보니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도처에 깔린 병원과 병원 앞에서 죽어가는 사람, 어린아이들의 다친 모습들로 어두운 파리 시내는 죽음이 곳곳에 드리워져있다. 몰락한 귀족의 신분인 말테는 공포와 불안증세가 심해지는데, 그중 유일하게 내적으로 기쁨을 찾는 곳은 도서관이었다.


"잠자고 있는 인간이 두 개의 꿈 사이를 돌아눕기나 하는 것처럼 독서하는 사람들 속에 앉아 있는 것은 마음이 즐겁다"

P36



<말테의 수기>는 파리시내에서 몰락한 귀족의 신분의 말테가 겪은 감정들을 유년시절 이야기와 서술하면서 적어낸 단편적인 스토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훗날 이러한 경험과 감정들은 모두 릴케가 시를 쓰기 위한 만년의 시상으로 전개되었다고 한다.


말테는 수기에서 인간 실존의 공허함, 텅빈과 같은 형태에서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지, 실존적 숙고를 거듭한다.


"내가 뒤집어쓴 가면은 일종의 독특한 텅 빈 냄새가 나고 나의 얼굴에 꼭 들어맞았지만, 밖을 내다보기엔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다." 90p







무엇을 창조해야만 한다라고 강박적으로 여겼던 시기가 생각나기도 했다. 말테가 시를 쓰기 위해 모든 것을 관찰하려고 시도했던 것처럼,


예술을 공부하고 불안감이 심해지자, 실존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였었다. 나의 재능의 부족과 자신감 결여, 인정받지못한 나의 모습들마저 떠올리며


그러나 다시

"알지 못했던 깊은 내면이 생겼다"는 릴케의 표현을 빌리고 싶다.



이 안의 내면에 불타는 심지조차 없는 공허한 영혼으로 사는 것보다

릴케가 헌책방과 도서관에서 내적인 기쁨을 찾듯 나 또한 이렇게 방황하며 책방을 곳곳을 찾으며

소음에서 벗어나, 남들과 어울려 있지 못하는 고독 속에서도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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