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사는 유쾌한 비법
아내가 죽기 전에 남편에게 단단히 못을 박았다. “여보, 내가 죽거들랑 다시 장가들지 마요. 만약에 새 장가를 들면 내가 귀신이 되어 밤마다 찾아가 괴롭힐 테니 각오해요!” 남편은 아내의 유언을 지키려 애썼지만, 석 달이 지나자 외로움이 밀려왔다. 결국 그는 새로운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약혼까지 하게 된다. 그런데 약혼식 다음 날부터 정말로 아내 귀신이 밤마다 나타나 남편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오늘 애인한테 다이아몬드 반지 선물했지? 몇 캐럿이야? 포장지는 무슨 색이었어?” 남편은 점점 지쳐갔고, 결국 용하다는 스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다.
스님은 잠시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기더니, “죽은 아내가 귀신이 되어 당신의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다니, 정말 영특한 귀신이구만. 오늘 밤에 또 나타나면 이렇게 말해보시오. ‘여보, 당신이 정말 영특한 것 같으니 우리 내기 한 번 하자. 내가 콩 한 줌을 손에 쥘 테니, 몇 개인지 맞혀봐. 맞히면 내가 약속을 지키고, 못 맞히면 당신은 나를 놔줘야 해.’” 남편은 스님의 조언을 그대로 실천했다. 그날 밤, 귀신 아내는 콩 개수를 맞히지 못했고, 그 후로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문득 우리 인생에도 ‘IF’라는 귀신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때 그 사람과 결혼했더라면…” “다른 직장에 갔더라면…” “그때 그 주식을 샀더라면…” 이런 ‘만약에’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고,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정작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한다. 마치 사과를 한 입, 또 한 입 베어 먹히듯 현재가 점점 줄어든다.
어느 마을에는 ‘3년 고개’라는 곳이 있었다. 이 고개에서 넘어지면 3년밖에 못 산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느 할머니가 그 고개를 넘다가 실수로 넘어졌는데, 그날부터 걱정에 휩싸여 앓아누웠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현재를 내어준 셈이다. 우리는 이렇게 근거 없는 소문, 불확실한 미래에 현재의 행복을 빼앗기며 산다.
임종을 앞둔 스승이 제자에게 물었다. “내 책을 정리하느라 바쁜 모양인데, 그걸 다 정리하고 나면 무엇을 할 거냐?” 제자는 “스승님이 나으시면 다시 말씀을 가르쳐주셔야죠.” 스승이 다시 물었다. “만약 내가 일어나지 못하면?” 제자는 “그럼 다른 분을 스승으로 모셔야겠지요.” 스승이 또 묻는다. “만약 그런 스승도 찾지 못하면?” 제자는 결국 “쓸데없는 질문 그만하고 잠이나 주무세요!”라고 소리쳤다. 인간은 이렇게 쓸데없는 걱정과 후회로 현재를 낭비한다.
길을 가다 낭떠러지에 매달린 사람이 있다. 위에는 호랑이가 그가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아래에는 뱀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린다. 그는 간신히 나뭇가지를 붙잡고 매달려 있는데, 옆을 보니 잘 익은 딸기가 하나 달려 있다. 그 순간, 딸기가 얼마나 맛있어 보이던지! 인생도 마찬가지다. 과거나 미래에 매달리지 말고, 지금 눈앞의 딸기나 맛있게 먹는 것이 현명하다.
화투 초보는 두 손 가득 패를 들고 있지만, 고수는 중요한 패 몇 장만 쥔다. 우리도 쓸데없는 걱정, 미련, 후회는 내려놓고, 정말 중요한 것만 챙기며 살아야 한다. 인생의 짐을 가볍게 해야 오늘을 더 잘 살아갈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도 우리 몸의 세포는 7년에 한 번씩 완전히 바뀐다. 그러니 7년 전의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없다. 뱀이 허물을 벗듯, 나도 과거의 허물을 벗어던져야 한다. “내가 예전에 그랬지…”라는 생각은 이제 그만, 오늘의 나로 살아가야 한다.
성경 속 사무엘은 “사무엘아!” 하고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에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우리는 “제가 거기 있었습니다…” 혹은 “제가 곧 있을 예정입니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진짜 신앙이자 인생의 비결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집트를 탈출한 후, 노예 시절 가마솥 고기를 그리워하며 과거를 미화했다. 인간은 과거나 미래에 끌려가며, 현재를 잃어버리고 산다. 정작 내게 행운의 배가 도착했는데도, 알 수 없는 미래만 기다리며 현재를 놓치고 있다.
결국, 과거에 미련 갖지 말고, 미래 걱정에 휘둘리지 말고, 오늘을 책임지고,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영원한 현재’를 사는 법이다. 오늘의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다. 오늘 딸기 하나, 콩 한 줌, 그리고 내 옆의 사람에게 미소 한 번 지어주자. 인생은 생각보다 짧고, 귀신보다 더 무서운 건 ‘만약에’라는 후회니 말이다!
사람들은 종종 영원한 삶을 꿈꾼다. 신화나 전설 속 500년, 1,000년을 산 인물들은 언제나 아름다운 20대 미모로 그려진다. 그 이유는 그들이 과거에도, 미래에도 얽히지 않고, 영원한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과거의 허물을 벗고, 미래의 불안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 영원한 현재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영원히 사시는 분과의 인연에서 비롯된다.
일요일마다 예배를 드리는 것도 영원한 현재에 드나드는 연습이다. 이웃에 대한 사랑,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무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비법이다.
결국, 오늘의 나를 사랑하고, 내가 걸어온 길에 책임을 지며,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영원한 현재를 사는 삶이다. 오늘의 나를 받아들이고, 내 옆의 사람을 사랑하며, ‘만약에’라는 귀신 대신, 지금 내 손에 쥔 딸기와 콩을 맛있게 즐기자. 인생은 생각보다 짧고,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니 오늘을 마음껏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