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함과 고요 사이, 오늘의 교회가 세상에 주는 맛

by 아침햇살

내가 어릴 땐 “세상 참 살기 좋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었다. 아, 물론 그때는 휴대폰도 없었기에 누군가 부르면 항상 나가봐야 했고, 군것질하고 남은 과자봉지를 아무데나 버려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세상을 보노라면, 누가 옆에서 “야, 세상은 개판이야!” 해도 그냥 고개만 끄덕이게 되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누군가는 썩은 냄새 난다 하고, 누군가는 귀를 찢는 소음에 귀마개를 찾는다. 누군가는 “왜 이렇게 다들 바쁘지? 그러려고 로봇 만들어놨나!” 투정부린다. 이래저래 치이다 보면, 교회나 성도도 나서서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싶은데, 고대의 교회 사명이 그저 박물관 전시물이 된 건 아닐까 싶은 순간이 있다.


사실 기계가 우리를 좀 편하게 해 줄 줄 알았는데, 세상에나! 세탁기는 돌아가도 사람은 쉴 틈이 없다. 시간이 돈이라는데, 돈만 좇다가 정신이 멀뚱 날아가 버릴 지경이다. ‘하루살이처럼 산다’는 말, 썩 괜찮은 표현이다. 브레이크 풀린 자동차처럼, 언제 어디서 멈추게 될지 모른 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질주한다. 인간이나 교회나 뭔가에 쫒기듯 “분주함”이라는 괴물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더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


세상만 그런가? 교회도 때로 세상의 함정에 빠진다. 복잡한 머리통은 더 복잡해지고, 피곤은 몸을 무겁게 짓누른다. 지식은 늘어나도 평안은 줄고, 사람은 많아도 정 깊은 친구 하나 사귀기 어려워졌다. 그냥 삐걱삐걱, ‘꼴에 교회라지만 세상 냄새가 더 묻은 듯’한 착각이 든다. 미국도 그렇다며? 동맹국도 몰래 도청하는 저 세상이나, 경제적 이윤이면 언제든 ‘변절’할 수 있다 떠드는 곳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그저 “어떻게 더 빠르고, 더 많이, 더 쉽게?”가 우릴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말이다. 옛사람들은 이런 세상에서 ‘가만히 있음’의 힘을 알았다. 나만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현대적 우상’이, 진짜 골칫거리 아닌가? 세상살이에 지친 욥이 하늘의 천둥소리 듣고 입을 다물던 순간처럼, 우리도 때로 하늘 한 줄기 집중력, 하늘의 고요를 경험해야 하는 거 아닐까. 주말에 교회 나와 신령하신 척, 손 들고 찬양하다가 집에 가선 다시 “나밖에 없다” 모드로 변신하는 건, 하늘도 곤란해하실 노릇 아닐까 싶다.


예화 하나 꺼내본다. 대형마트 정육코너 직원이 고기를 열심히 썰고 있는데, 고객이 물었다. “이 고기, 신선하죠?” 직업의식이 불타오른 직원 왈, “여기선 저만큼 신선한 사람도 없어요!” 일에 지치다 보면 자신이 소금인지 설탕인지도 모르는 법이다. 교회가 교회다울 때, 그거야말로 무심한 세상에 풍긴 한 줌의 신선한 내음이다.

장자는 가만히 있는 시신처럼 도에 들면 신기가 돈다 했다지. 그 신기는, 요즘 치킨 냄새처럼 멀리 퍼진다. 기독교적으로 말하자면, 하늘이 부어주는 성령을 기다리는 겸손한 종의 자세를 말한다. 때로는 “비움”이 “채움”보다 힘이 쎄다. 교회도, 신자도 분주함의 미로에서 한 템포 쉬어갈 줄 알아야 소금기와 빛을 잃지 않는다.
노자 왈, “도는 빈 그릇과 같아서 무한히 퍼줄 수 있다”고 했다. 예수의 봉사는 한계를 몰랐다. 내 잇속만 차리는 영혼 체험은, 편의점표 장난감과 똑같이 두어 번 쓰면 소리도 안 나고 영양가도 없다. 하늘의 뜻을 따라, 조용히 자신의 몫을 다하는 그 소박함이 바로 현대의 교회에 꼭 필요한 고대명약 아닐까.


마지막으로, 하루 이틀 이런 자세를 연습하다 보면, 뭔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나만 신이 아니라, 나와 똑같이 지친 “세상의 농부”들이 이 세상 사방팔방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여기 내가 있다!”고 외치는 세상 속에서,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고, 동시에 누군가에 의해 지탱된다”는 걸 느끼게 된다. 교회란 곧, 이런 체험을 세상 앞에 솔직하게 보여주는 증인이다. 세상이 썩고 있기에, 소금은 더 빛이 난다. 그리고, 당신도 그 농부 대열에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다.


그러니 오늘도, “세상 속의 고대적 사명”을 품고, 한 줌의 소금처럼, 한 줄기의 빛처럼, 한없이 소란스럽고 복잡한 이 세상에 한 그루 무공해 나무처럼 뿌리 내려 보는 게 어떨까? 신선한 바람과 함께.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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