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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송인 Oct 05. 2019

자기애성 성격장애

과대한 자기와 취약한 자기가 벌이는 춤사위

오만/거만하고 자기가 다른 사람의 찬사를 마땅히 받아야 한다는 특권의식을 지닌 사람만이 자기애성 성격장애 혹은 병리적 자기애에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유형을 오토 컨버그라는 학자가 병리적 자기애의 한 유형인 외현적 자기애로 칭하긴 했지만요. 타인 평가에 과도하게 민감하고 행여나 수치스러운 자기가 발각되지 않을까 전전 긍긍하는 사람도 사실 병리적 자기애에 해당하죠. 이를 내현적 자기애라고 합니다. 외현적/내현적 자기애는 자존감의 조절이 외부 인정과 관심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외현적/내현적 자기애는 구분되는 집단이 아닙니다. 이러한 개념을 제시한 정신과 의사 오토 컨버그는 아마도 이 둘을 구분되는 집단으로 생각했던 것 같지만, 최근 연구는 이 둘이 동전의 양면에 가까움을 보여줍니다. DSM-5 자기애성 성격장애 진단 기준이 비판 받는 것은, 실상 이러한 양면성을 제대로 잡지 못 했다는 것입니다. 외현적 자기애에만 포커스가 맞춰짐으로써 없애 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는 진단이 돼 버렸죠.


거만하고 지배적이고 특권의식에 젖어 있는 정도가 심할수록 상당히 취약한 자기상이 있게 마련입니다. 어떻게 보면 겉으로 보여지는 과대한 모습은 너무나도 초라하고 수치스러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노력일 때가 많다는 것이죠. 보상적으로 과대한 자기가 출현한다고 봅니다. 일종의 방어기제인 셈이죠. 병리적 자기애를 지닌 사람이 주로 쓰는 방어기제는 이상화/평가절하입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최고인 듯 찬양하다가도 어느 순간 평가절하해 버리기 십상입니다. 같은 사람에 대해 이상화와 평가절하가 오가듯이 자기 자신에게도 이상화와 평가절하의 과정이 반복됩니다. 과대 자기가 우세할 때는 자기를 이상화하는 것이고, 취약한 자기가 우세할 때는 자기를 평가절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병리적 자기애를 지닌 사람은 정서조절 곤란의 정점에 있는 장애군 중 하나인 경계선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처럼 정서조절에 손상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과대 자기가 우세한 상황에서 위협을 받으면 격노한 모습을 보이기 쉽고 실제로 공격 행동이 표출되기도 합니다. 취약한 자기가 두드러지는 상황에서는 분노가 있다 하더라도, 폭발할 것 같은 분노라기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적개심일 가능성이 높죠.


더욱이 공허하고 자기 내부가 텅 비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보고하기 쉽습니다. 겉으로 보면 우울해 보이죠. 그래서 우울 장애로만 진단되는 경우가 많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울 장애를 지닌 자기애성 성격장애 환자는, 우울 장애만 지닌 사람과는 그 양상이 다릅니다. 우울 장애만 지닌 경우 자기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 두드러지는데, 자기애성 성격장애 환자에게는 취약한 자기가 우세한 상황에서도 이런 자기비판이 두드러지진 않는 듯합니다(자기비판에 연관된다는 연구도 있긴 합니다만.). 대신 취약한 자기의 상태에서 보이는 우울은 자기비판하는 내면의 목소리조차 없는, 텅 비어버린 진공상태에 가까운 무엇이라는 점에서 우울장애에서의 멜랑콜리와는 비교되죠.


과대 자기가 우세하느냐 취약한 자기가 우세하느냐에 따라 행동 및 정서 양상이 달라진다는 것이 병리적 자기애를 이해하는 핵심일 수 있습니다.




끝으로 소시오패스[=반사회성 성격장애=정신병질자(a.k.a 싸이코패스)]와의 유사점 및 차이점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병리적 자기애는 공감 능력이 결여돼 있고 타인을 독립적 인격체가 아닌 착취의 대상으로 본다는 점에서 소시오패스와 유사점을 지닙니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을 못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자신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한 대상으로서만 타인을 바라본다는 것이죠. 이런 까닭에 잔혹한 성범죄가 발생하기도 합니다.(아시다시피 성범죄는 쾌락추구가 목적이 아니라 힘/우월성 과시가 목적인 경우가 많죠.) 실제로 오토 컨버그는 병리적 자기애의 극단에 있는 악성 자기애가 소시오패스와 같다고 보기도 합니다. 당연히 치료도 같은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봤죠. DSM-IV의 자기애성 성격장애 진단은 반사회성 성격장애 진단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병리적 자기애를 지닌 사람은 소시오패스와 다르게 공감 능력이 발달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게 경험 많은 치료자들의 의견인 것 같습니다. 병리적 자기애에서 공감 능력이 결여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이런 점에서 소시오패스와 구분된다는 것이죠. 특히 병리적 자기애를 이해하는 데 오토 컨버그만큼이나 혁혁한 공을 세운 Kohut이라는 치료자는 병리적 자기애를 지녔다 하더라도 충분한 공감과 지지가 있다면 치료자와 신뢰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과대 자기가 잘라내야 할 썪은 가지가 아니라 물과 비옥한 토양을 통해 살려내야 하는 가지로 봤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치료 예후에서가 아니라 방어기제의 사용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소시오패스는 다른 사람을 이상화하는 일이 드물 것입니다. 무조건적으로 자기가 우위에 있어야만 직성이 풀리겠죠. 반면 병리적 자기애를 지닌 사람은 누구보다 치료자에게 의존하는 사람입니다. 관심과 인정을 받으려면 치료자와 연결성을 유지하는 게 필수겠죠. 이런 의존성이 있기 때문에 치료자를 이상화할 때뿐만 아니라 치료자를 평가절하할 때조차 치료자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불완전함을 수용하는 치료자의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참조)  

정신분석적 진단, 제8장 자기애성 성격

Oxford Textbook of Psychopathology(3판), 30장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and Pathological Narciss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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