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내 Sep 05. 2024

12년 차 직장인, (완전)퇴사를 선택하다.

01. 우물안 개구리의 노력 

그 때는 없는 표현이었지만, 최복동이었다. 

두 번째 직장에서 나는 내가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수습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느꼈다. 

스스로 제 몫을 해내는 팀원들 한 명 한 명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수가 없었다. 

심지어 입사 동기들은 해외대 출신에 유창한 영어실력과 경력을 갖추고 있는, 나와는 비교도 안되는 대단한 스펙이기에 팀장님이 왜 나를 뽑았을까 의아했을 정도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야근을 불사하더라도 주어진 일을 묵묵하게 쳐내는것 뿐이었다. 원없이 야근을 했고 자정이 되어 집에 들어가는건 예삿일이었다. 


일이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건 '최복동 최고의 복지는 동료' 라서였다. 서로를 경쟁자로 보지 않고 도움을 줄 수 있는게 있는지 먼저 물어봐주는 동료들과 선배들은 이상적이었다. 꿈꾸던 그런 동료들을 만나서 기뻤다. 

잘 하는 점, 부족한 점 등에 대한 피드백을 아끼지 않았기에 성장할수 있었고,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정말 즐겁고 자신감 넘치게 일했다. 가끔 야근에 찌들어 저녁도 거를 때는 편의점에서 캔맥을 사와 자리에서 같이 마시기도 했고, 야근을 빙자해 저녁식사를 거하게 법카로 해결하기도 했다. 그 마저도 동료들과 함께라서 즐거웠다. 

이 회사에서의 경력은 이후 이직시장에서 내 가치를 끌어올려준 소중한 경력이기도 하다. 


3개월을 1년처럼 밀도높게 일하며 인정받는 커리어우먼을 꿈꾸던 시기는 오래가진 못했다. 


신생팀으로의 발령 

조직이 성장하며 팀이 커지고 일이 늘어났다. 팀은 직무단위로 쪼개졌고 나는 새로운 팀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때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악인'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몇년이 지난 지금도 그 사람의 이름만들어도, 아니 같은 성씨의 사람을 보면 괜히 눈쌀이 찌푸려질 정도다.


사실 나는 신생팀으로 가고싶지 않았다. 원래 소속팀원들과의 사이도 좋았고, 근무지도 본사가 아닌 다른 곳이었으며 모든걸 다시 셋업해야 하는 힘든자리는 것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 팀으로 가게 된 건 팀장님과 선배들의 회의를 통해서 일종의 '다수결' 논리로 결정되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누군가는 가야하는데 군말없이 잘 녹아들 수 있는 사람이 누구였을지를 상상했으리라. 


몸을 갈아넣어 불금도 없이 일한 댓가가 이거라니, 팀장님과 선배들에 대한 배신감에 야근을 불사하던 호기로움은 까맣게 잊었고, 반항하듯 일주일을 내리 칼퇴를 했다.(이것도 반항이라고... )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나니 월요일 아침에 팀장님의 호출이 있었다. 첫 마디가 '퇴사 할거니?' 였다. 

이거야 말로 제대로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랄까?나는 나를 좀 다독여주길 바랬던것 같다. 너무 감정이 앞서 있으니조금 침착하게 같이 생각해보자 이런걸 기대했었나보다.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그때의 내 행동은 참 부끄럽다. 기분이 태도가 된 아주 적절한 사례였다. 아마 그때의 내 모습을 본 같은 조직에 속했던 사람이라면 나에 대해 '아 그때 그분이 팀에서 감정적으로 행동했던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그 팀 팀장님께서도 별로 좋은 이야기 안하셨었거든요'라고 말 할 지도 모른다.


아무튼 팀장님과 선배들이 돌아가며 1:1 면담을 요청해왔고, 당근과 채찍을 수도없이 휘둘러 대는 통에 정신을 차렸다. 한 선배는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며 개인톡을 보내기도 했다. 다시 야근부대로 합류한것을 환영한다는 뜻이었을까? 뭐 어쩌겠는가 이미 그렇게 결정해서 보고까지 다 마친걸.

곧 팀이 분리되었고 새 회사에 입사한 것과 같은 느낌으로 적응을 해야했다. 그때부터가 지옥의 시작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