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살겠습니까?/ 네 어쩔 수 없죠
아빠는 말했다. "니는 걷기 전에 문장을 구사했다!" 실제로 내가 걸음이 늦된 아이였다는 것도 알고, 아빠의 말이 애정 섞인 과장이란 것도 감안하고, 아무튼 이 말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부터 언어는 나의 무기'였다는 것이다.
나는 말로 실패한 적 없다. 상사도 클라이언트도 연인도 이겼고, 설령 이기지 못해도 내 안에서 언어로 합리화되어 패배로 남지 않았다.
걷지도 못하는 아기가 무엇 때문에 언어라는 동아줄을 그토록 간절히 붙잡아야 했는지 모르겠지만, 자의식이 생기기 전부터 정체성을 부여받아 기억하는 매 순간 이미 '너는 언어로 너를 증명해 왔다'는 증언을 들어가며 자란 나는, 언어와 들러붙어 어디부터 선택인지 생존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됐다.
어느 시인은 "장르는 운명"이라고 했는데, 나 자신의 장르가 그런 식으로 결정되었다는 게 안쓰럽고 그래도 되는 건가 싶으면서, 그런 식으로 결정되는 것이야말로 운명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일랜드행 워킹홀리데이를 앞두고 내가 가장 기대하는 것과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언어를 잃는 것"이다. 모국어는 누구나 할 줄 안다. 때문에 모국어를 장르로 삼는 것, 모국어를 전공하는 것은 때론 후려쳐지기 십상이었고 때론 비장의 무기이기도 했다.
나는 말하는 것으로 사랑받았고, 말하는 것으로 일을 얻었고, 말하는 것으로 모든 현재를 흘려보냈다. 말 그대로 말로 먹고, 살았다.
워킹홀리데이는 내게 35년 동안 갈고닦은 손때 묻은 무기이자 도구를 버리고, 저벅저벅 걸어가 새로운 돌덩이를 손에 쥐는 일이다. 은장도를 버리고 뗀석기부터 다시 시작하는 일이다.
혼자 여행할 때의 내가 얼마나 뜨겁고 싱싱한지 안다. 나는 끊임없이 걷고 움직이며 선택하고 생각한다. '한 시간만 가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그림이 있다'고 생각하며 걷는 네덜란드에서의 나도, '한 시간이 지났는데 허허벌판이네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걷는 아이슬란드에서의 나도 너무나 살아있다.
물론 여행과 사는 것은 다를 것이다. 유튜브, 블로그를 떠돌며 '영어를 못하는데 워홀 가도 될까요?', '정착비는 얼마나 있어야 될까요?' 아무리 찾아봐도 답은 비슷하면서 다 다르다.
사람들은 물었다. '외로울 텐데 괜찮아?', '언어가 불편할 텐데 괜찮아?', '정착해야 하는 나이에 괜찮아?'. 그 말에 뭐라 대답하겠는가? 안 해봤는데. 그니까 일단 해볼게. 해보고 말해줄게. 외로워도 괜찮은지, 영어를 못해도 괜찮은지, 떠돌이가 되어도 괜찮은지.
나는 한국에서, 서울에서 자립하고 정착하기 위해 시도했고 실패했다. 내가 지금 뭐 하러 가는 거냐, 내가 살 수 있는지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알아보려는 거다. 이번엔 여행이 아니니 삶을 만들어야 한다. 삶에는 반드시 수치스러운 순간이 있다. 중요한 건 나도 이제 짬밥이 좀 된단 거다. 맷집도 뻔뻔함도 순발력도 있단 거다.
그리고 못 죽을 거면 어차피 살아야 한단 거다. 나는 '다시'라는 말이 정말 지긋지긋하다. 탈진한 내가 강물에 둥둥 떠내려 가면 그 '다시'라는 말에 걸려 살아남아 물밖으로 걸어 나와야 했다. 내게 다시라는 말은 냄비에서 끓고 끓어 눌어붙은 다싯물 같다.
한동안 백수로 집안에 틀어박혀 있던 때에도 하루에 몇 번씩 '다시'라는 말이 되풀이 됐다. 그래서 다시 할 건지? 언제 다시 할 건지? 뭘 다시 할 건지?
로그인하시겠습니까?라는 세상의 물음에 나는 '네, 어쩔 수 없죠' 답한다. 하나도 안 용감하고 하나도 기껍지 않다. 사실상 먹고살려면 세상으로의 로그인 여부에는 별 선택권이 없지만 어쨌거나 ID는 내가 정할 수 있다. 나는 늘 그런 사소해 보이는 의미화와 명명에 지나치게 집착했고 친구들은, 상담사는, AI는 바로 그 점이 내가 아직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했다.
아, 하지만 아니다. 나는 아직 삶을 사랑해서 이런 것들에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어찌해도 삶을 버리기 불가능해서 이런 것들에라도 신경 쓰는 사람이다.
나는 삶이 '술잔처럼 뜨거운 오렌지블루'가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런데 붙잡고 발버둥 치다 보면 어떤 순간 손 안에서 '술잔처럼 뜨거운 오렌지블루'로 번뜩인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떠나본다. 내내 빛날 거라는 환상 때문이 아니라, 잠시 잠깐 찾아오는 그 빛이 조금만 아주 조금만 자주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 안녕하세요.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브런치북 <술잔처럼 뜨거운 나의 오렌지블루> 연재를 마칩니다. 예상보다 훨씬 즐겁고 운 좋은 과정이었습니다.
클릭 한 번 얻는 것이 라이터 빌리는 일보다 어렵다는 걸 압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오늘 하루 작은 행운을 만나길 빌어드립니다. 덕분에 저는 다시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계속 쓸 테니, 부디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