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롱글라세

by rummbl


파노와 나는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한다. 우리가 늘 가던 내 회사 근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메뉴는 라자냐와 날치알 크림 파스타. 내가 좋아하는 메뉴다. 파노는 언제나 그렇듯 이견이 없다. 나도 거듭 묻지 않는다. 나는 이번에도, 혹은 바로 이 순간이기에 내가 좋아하는 메뉴를 고르는 것이 우리 둘 다에게 선의라는 것을 안다.


우리는 5년을 만났고 간단한 문자 메시지로 이별했다. 나는 함께 저녁을 먹고 웃는 모습으로 헤어지자고 파노에게 제안했다. 데리러 와달라고 하자, 데려다주겠다는 말로 파노는 거절했다. 파노는 일 년 전 차를 산 뒤 데이트 할 때 한 번도 데리러 오지 않은 적 없었다.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레스토랑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앉는다. 열 개 남짓한 테이블은 거의 꽉 차 있고, 내부는 사람들의 말소리와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로 소란하다. 2월. 레스토랑엔 시즌을 나타내는 어떤 장식물도 없다.


나는 파노가 일본 여행에서 기념으로 사다준 줄무늬 맨투맨 티셔츠를 입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아 한 번도 입은 모습을 보여준 적 없는 옷이었다. 파노는 티셔츠를 보자마자 알아,라고 말했다. 실제로 보니 정말 힘드네, 그렇게 말하며 파노는 눈물을 흘린다. 가게 로고가 박힌 냅킨으로 눈물을 닦아낸다. 나는 새로 산 헤드폰 이야기를 하고 소리 내어 웃는다. 웃는 모습을 많이 보고 싶었는데!라고 말하기도 한다. 파노는 왜 오늘 헤드폰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어? 묻는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 내가 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나는 가방에서 금색 틴 케이스를 꺼낸다. 갈색 종이 끈으로 묶어있다. 언젠가 파노의 어머니가 내게 명절음식을 전해준 적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것에 보답하고 싶었다. 내가 망설인 이유는 한 번 선물을 하기 시작하면 곤란해질지 모른다는 친구들의 조언 때문이었다. 좀처럼 남 얘길 듣지 않는 내가 어째서 그 말에는 그렇게 매몰되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잘 포장된 밤으로 만든 디저트를 파노에게 건넨다. 어머니께 잘 전해드려. 직접 전해 드리고 싶지만 인연이 짧아서 그럴 수 없었다고. 내가 말하자 파노가 대답한다. 짧지 않았지.


나는 마지막으로 악수를 하자고 말했다. 웃는 모습을 많이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고 하면서. 파노는 손을 내밀고 나는 그 손을 잡는다.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로. 두어 번 손을 흔들고 파노의 손에서 나의 손을 빼낼 때 파노가 잠시 손에 힘을 주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그 손을 가볍게 털어낸다. 나는 이 순간을 아주 오랫동안 생각하게 된다. 몇 개월이 지나도, 일 년이 지나도.


식사를 마치고 내가 계산하겠다고 말한다. 파노는 자기가 하겠다고, 상여금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좋아하는 드라마 속 인물이 가족에게 저녁 식사를 사고 다음 날 자살하는 에피소드를 떠올리면서, 끝내 파노가 우리가 먹은 음식값을 치르는 것을 본다. 메뉴를 고를 때처럼.


집으로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파노는 내가 준 디저트에 대해 말한다. 엄마는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 못 할 거야. 우리 엄마는 나 같은 사람이거든.


집 앞에 도착하자 나는 마지막으로 포옹하자고 한다. 파노는 운전석에서 내려 나를 안아준다. 파노는 지퍼가 달린 니트를 입고 있다. 새 옷이 분명했다. 파노는 새 옷을 사면 늘 데이트할 때 입고 왔다. 네 냄새가 안 나. 내 말에 파노가 허둥거리며 니트의 지퍼를 조금 열었다가 닫았다. 우리는 한 번 더 포옹했다. 나는 집에 잘 도착하면 마지막으로 연락하라고 말했다. 파노는 내게 행복하게 잘 지내라고 대답한다.


며칠 지나 방에 앉아 있다가 전기차가 내는 특유의 소리가 들려 대문을 박차고 나간다. 모르는 남자가 집 앞에 주차하고 있다. 남자는 내게 금방 차를 뺄 거라고 변명하듯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파노가 나만 알아듣게 했던 말들, 한 번도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한 적 없는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 졸릴 때 천천히 감기는 눈꺼풀을 생각하며 앓는다. 그러는 동안 일도 그만둔다. 파노는 오지 않는다. 몇 개월이 지나도. 일 년이 지나도. 파노를 오 년이나 사랑해 보았기에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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