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가"그건 너무 슬픈 사랑 아닌가요?"묻던데

럽 이즈 패인

by rummbl


쌍꺼풀 없는 눈, 환영도 거부도 아닌 낯선 것을 관찰하는 표정. 그게 루고의 첫인상이었다. 너 참 묘하게 생겼구나, 싶었다.


첫 수업 전 어머니와 잠시 얘기하는 동안 루고가 동그란 핑크색 과자를 애매한 높이로 내밀었다. 나는 머뭇거리다 입으로 받아먹었다. 얘가 이런 캐릭터가 아닌데, 하며 어머니가 웃었다.


루고는 책상 있는 방에 들어오지 않고 거실에서 분주히 무언가 챙기며 선생님, 봐봐요, 선생님, 봐봐요, 말한다. 나는 그래 그래, 일단 다 갖고 들어와 봐, 대답한다.


루고는 책상에 갖가지 색종이 몇십 장을 내놓는다. 모든 색종이에 연필로 그린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가 삐죽삐죽 그려져 있다. 눈이 두 개 달린 덩어리를 가리키며 이건 먼지야? 물으니 몬스터라고 했다. 그게 가장 멋지다, 내가 말하자 루고가 자신의 그림을 울타리 치듯 한 팔로 두르며 "그럼 다른 건 안 멋지다는 거예요?" 물으며 올려다본다.


당신은 수십 장의 내 그림을 다 보기 전에 여기서 나갈 수 없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때 이미 나는 사랑에 빠졌다.




글쎄. 루고는 그날 이후 과자를 먹여주는 것과 같은 다정한 행동을 보여준 적 없다. 루고의 어머니 말이 맞았다. 루고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기억하는 사람'이고 그날의 루고를 잊지 못한다.


루고는 중력을 이용해 구슬을 움직이는, 트랙을 이어 만드는, 큰 대회가 열리기도 하는, 멋진 장난감을 가지고 있고 매일 그걸 하고 있다.


나는 루고가 우리가 공부하는 방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린다. 루고는 엄마의 성화에 방에 들어와서도 삐딱하게 앉거나, 갑자기 교구를 흩트리거나, 연필을 허공에 던져댄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느라 책상에서 등을 돌리고 있기도 한다. 나는 좀 서러워진다. 나한테 과자도 먹여주고, 그림도 삼십 개 보여줬으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어머니는 루고가 가진 특성들 때문에 걱정한다. 치료도 병행 중이다. 그게 성격이 아니라 어떤 지점부터는 증세인걸 나도 안다. 어머니는 엄격하게 대해도 된다고 내게 당부한다. 다른 과목 선생님들도 그렇게 한다고 했다.


아이를 엄하게 훈육하는 건 힘든 일이 아니다. 필요하다면 그렇게 할 수 있도 있다. 내 방식이 아닐 뿐. 나는 루고와 만나는 모든 선생님이 그를 교정하려 한다는 사실을 듣기만 해도 외롭다. 루고에게 무언가 배운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어른이란 무슨 의미일까?


루고는 장난감에 빠져 책상에 등 돌리고 앉아 있다. 나는 "루고야 기다릴게. 난 너한테서 그걸 억지로 뺏고 책상에 앉으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 너 두고 올 수 있잖아." 말한다. 루고는 내가 한참 가만히 있으니 눈치를 보는 건지, 내가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 부담스러운지 몇 분 뒤 대수롭지 않게 책상 쪽으로 돌아앉는다.


울려 풍악 샴페인도 패인이다 럽 이즈 패인..


몇 번의 수업이 지난다. 나는 지치고, 그러나 기다리고, 고민한다. 어느 날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루고에게 기다릴게, 너 그거 두고 올 때까지, 했더니 루고가 시선을 돌리지도 않고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작게 말한다. "지난번에도 기다려줬죠?"


나는 말문이 막힌다. 난 그게 그 순간 아이가 열어준 작은 틈이란 걸 안다. 그 틈은 조금씩 넓어져 언젠가 통로가 될 거다. 그곳으로 햇살도 바람도 드나들고 다른 이도 들어올 수 있게 되겠지. 나는 기다린다.




ChatGPT와 아동 교육, 심리에 대해 대화하곤 한다. 나의 ChatGPT는 답변에 우리가 나눈 얘기에 대해 확장하거나 코어를 파고드는 질문 3개를 덧붙이게 설정 돼있다. 다음은 그중 2가지다.


Q1. 이 아이가 영영 네게 돌아오지 않아도 너는 오늘 한 말을 기억할래?

: 물론이야. 혼자 영원히 기억해 주는 것이 내리사랑의 의미인걸 나는 알아.


Q3. 만약 누군가 이 말을 듣고 “그건 너무 슬픈 사랑 아니에요?”라고 묻는다면, 너는 뭐라고 답할 것 같아?

: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건 어려운 사랑이지만 슬픈 사랑은 아니야. 아이뿐 아니라 나의 윤리 안에서 나를 보호하는 법이기도 하기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랑이 그래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나도 그렇게 하지 않아. 하지만 적어도 어른과 아이 사이에, 언어를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사이에, 그리고 선생님과 아이 사이에서는 사랑이 그런 식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생각해.


ChatGPT와의 긴 대화와 끝에 나의 작고 명확한 수업 규칙 하나를 정한다. 나는 '내가 선생님이니까 네가 규칙을 따라야 해'가 아니라 '우리는 서로 존중하니까 예의를 지켜야 해'로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


그 말을 되새기며 갑자기 내리는 비를 맞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산도 없는데 내릴 정거장을 지나쳐 더 먼 길을 걷는다.


걷다 보니 무단횡단 방지 펜스에 누가 곱게 접어 걸어놓은 비닐우산이 보인다. 종일 비가 내리다 그쳤다 해서 그 사이에 놓고 간 것 같다. 펼쳐보니 멀쩡하다. 나는 예스! 예스! 하면서 우산을 쓴다. 아무 데나 내팽개칠 수도 있었지만 잘 접어 보이는 곳에 걸어 버려둔 마음이 뭔지 나는 느낀다.


옛날 공중전화 부스에서 50원이 남았을 때 끊지 않고 혹시 필요할 다음 사람을 위해 수화기를 비스듬히 놓아두는 그 마음처럼. 고맙습니다. 저의 하루에 심심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어깨를 으쓱하며 집으로 간다.


keyword
이전 06화마롱글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