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fine, fuck you!

아임 파인 땡큐의 나라에서 잘 살고 계신지?

by rummbl


스릴러 영화처럼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가로등 켜진 외진 골목길, 학부모의 문자가 날아왔다.


[교육을 3개월이나 받는다는 게 좀 이상한데요]


어둠 속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변태 살인마보다 그 문자 한 통이 훨씬 공포였다.


회사는 다른 컴플레인을 막기 위해 해당 학부모 아이의 수업 시간을 뒤로 미뤘다. 그때 회사가 한 거짓말이 '선생님(나)이 당분간 정기 교육을 받아야 해서'였다. 어김없이 시작된 돌려 막기식 거짓말이었다. 당분간엔 기약이 없고, 당분간이 지난 후 대처 방안도 없었다.


그 구조 속에서 나는 혼자 죄인처럼 굴었다. 다 떠나 그냥 내 자신에게 부끄러웠다. 난 쪽팔리면 발 뻗고 잘 수 없고 그게 내가 지난 7년 간 8개의 회사를 퇴사한 이유였다. 그런데 회사가 또.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나도 몰래 공범이 되어있었고 묵인하고 동참한 지 한참이었다. 상사에게 전화했다. 알리바이가 있다면 입이라도 맞춰야 한다는 심정이었다. 상사는 '그냥 11월까지라고 해' 답했다. 태연했고 뻔뻔했다. 맥이 탁 끊겼다. "아, 네."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런 시발.




7년 동안 8번 퇴사한 비법이 있다. 부끄러울 때 부끄러워하면 된다. 나는 클라이언트 갑질도, 방치하는 상사도 참을 수 없었다. 임원진의 권위적인 태도도, 동료들 간 뒷담화도 두고 보지 못했다.


나는 건의했고, 싸웠고, 임원진을 호출하고, 타 팀과 회의를 소집했다. 다들 '퇴사하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지만 결국 진짜 퇴사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되는데 난 항상 절을 들이받고 피를 철철 흘리며 걸어 나왔다. 상처가 흉터가 되는 꼴을 보며 내가 옳았지만 바보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안녕? 난 rummbl의 가방에 달린 모루 인형, 3일 만에 묵사발 났지


수업을 가서는 더 디테일하게 거짓말해야 했다. 상사가 앞서 시작한 거라도 대면하는 건 나였다.


수업이 끝난 뒤 나는 폭발했다. 다시 상사에게 전화했으나 받지 않았다. 장문의 카톡을 남겼다. 계속되는 말 바꾸기와 거짓말 동조 요구를 더는 참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이성적이지 않기를 선택했다. 비윤리적인 시스템을 지적하면서, 그에 역겨움을 느끼는 내 감정도 말했다.


회사를 상대로 그렇게 솔직하게 화낸 건 처음이었다. 여태껏 사회에서 커뮤니케이션할 때는 최후까지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그게 나를 지키는 거라 믿었다. 그런데 8번 퇴사하고 나니 알게 됐다. 평판을 위해 마지막까지 품위를 지키는 게 지나고 보면 다 나를 파먹는 짓이었단 걸.


상사에게서 '지금 밖이니 내일 통화하자'는 카톡이 왔다. 그러나 퇴사하는 날까지 상사가 말한 그 '내일'은 오지 않았다.


그냥 사무실 들어가는 길에 소화기 픽업해서 다 때려 부술까? 싶기도 했고 도대체 왜 그러세요? 물으며 상사를 붙잡고 흔들어대고 싶기도 했다. 건드리면 물어뜯는다, 진짜 이빨로 문다, 생각도 했다.


교재가 잔뜩 든 무거운 가방을 메고 버스 좌석에 앉았다. 아 더럽다, 아 멋없다, 생각하며 창밖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불합리함을 지적했고, 원하는 만큼 화도 냈고, 상사를 입다물게도 했지만 그건 둘째였다. 그 순간 내가 깨달은 건 모든 걸 차치하고 또 한 번 사회로부터 상처받았다는 자각이었다.




수업과 수업 간 드물게 시간이 남을 때가 있다. 나는 앞으로 내가 절대 살 수 없을 것 같은 아파트 단지 벤치에 가방을 베고 눕는다. 그리고 언젠가 이 순간을 농담으로 만드는 상상을 한다.


넷플릭스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만 주구장창 보던 시기가 있었다. 난 스피커이자 라이터고 기왕이면 농담하자! 가 모토이니 당연히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쓸 농담 몇 개쯤은 가지고 있다. 무대에 올리자면 모든 부조리는 소재고 모든 약점은 캐릭터다.


"35살에 워홀 간다고 하니까, 새벽에 오는 쓰레기수거 트럭에 뛰어오르는 것처럼 쳐다보더라."


"내 나라에선 I'm fine, thank you를 처음 영어 배울 때 자기소개 다음으로 달달 외워."


"그리고 I'm not fine, fuck you!가 나올 때까지 쥐어짜거든."


그러니까 괜찮다는 말은 학교에서 가르쳐줬고 안 괜찮다는 말은 사회에서 구르며 혼자 터득했다. 나는 살려고 그 부정문을 익혔다.


나는 학부모에게 퇴사 사실을 말하지 말라는 상사의 권고를 무시하고 아이들과 정성껏 작별인사를 했다. 회사 단체 카톡방에서 인사도 없이 나왔다. 그리고 이 글도 썼다. 시간 나면 고발용 단편 영화도 제작할까 한다. 모두 퍽 유! 퍽 유! 퍽 유! 였다.


서른다섯, 집도 절도 없는 내가 얻은 건 "난 존나 안 괜찮으니까 엿이나 먹어"라는 말 뿐이다. 난 그 문구를 넣은 텀블러를 제작할 수 있고, 이마에 타투도 새길 수 있고, 무엇보다 말할 수 있다. 아. 아임 파인 땡큐의 나라에서 아임 낫 파인 퍽유! 말할 수 있어 오늘은 발 뻗고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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