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염려에 대하여
새벽 여섯 시,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때 요란히도 울리는 알람 소리를 재빠르게 눌러 끈다. 희멀게 뜬 눈을 잠깐 감았다가 부스스 일어난다. 몰래 나온 거실은 아직 어둡다. 거실 창문 밖 풍경을 보며 찌뿌둥한 몸을 뒤틀어보다 조심스레 물 한잔을 마신다. 곧 살금살금 뒤꿈치를 든 채 욕실로 들어간다. 행여 누가 깰까 물소리를 죽여가며 도둑 같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마자 보이는건 조용히 켜진 TV와, 거실 소파 팔걸이에 걸쳐 삐죽 나온 까만 뽀글머리. 그새 엄마는 거실로 나와 쇼파 위 눈을 감고 티비를 보고 있다.
“더 자지 뭘 또 일어났어”
엄마는 답이 없다. 아무래도 그 말은 답을 하기에 어려운 질문이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그저 허리를 숙이고 물기를 털털 닦아내고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아들은 혹여나 출근이 늦어질까, 속옷 차림으로 방과 거실을 바쁘게 활보한다. 화장품을 대충 바르고 머리 를 말리고, 그러다 보면 식탁 위에는 그새 아침거리가 차려져 있다. 분명 엄마는 처음 그대로 소파위에 누워있는데도 말이다.
대충 준비를 끝내고 나서, 시계를 슬쩍 보니 그래도 아직은 시간이 있다. 식탁에 앉아 아침 정적 속 달그락거리며 먹기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는 고마움과 미안함을 꽁꽁 숨겨 무뚝뚝하게 늦은 기침을 했다.
“오늘 날씨 뭐래?”
그러면 엄마는 오늘도,
“무지 춥대 따뜻하게 입고 가”
엄마는 미동도 눈길도 없이, 어디 오래된 인공지능 스피커처럼 답을 한다. 아들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식탁에서 일어나 막바지 출근준비를 한다. 가방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서려는데 거실에는 또 엄마가 없다.
“갔다 올게.”
들릴만큼의 소리를 내며 거실을 가로질러 현관 앞, 어느새 엄마는 손에 내 코트를 들고 있다. 아들은 또 아무 의심 없이, 아무말없이 그 옷을 둘러 입고 나왔다.
그새 밝아진 아파트 입구까지의 길을 그저 두리번거리며 입구 앞 정류장까지 걸어간다. 얼마 걷지 않아 가을 햇살이 따가웠는지 금세 더운 느낌이 들어 코트를 벗어 손에 걸친다. 코트를 벗으며 아들은 알게 모르게 엄마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낫다. 10월, 아직 모직코트가 어울릴 때는 아니다. 지난밤 가을비도 없었고, 아직 가을햇살은 충분히 따뜻하다. 어제도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지난 계절 내 옷장 구석 박아뒀던 이 내 코트를, 졸린 눈을 비비며 또 어느새 찾아내 건네줬는지, 코트를 풀어 벗으며 깨달았다.
엄마에게 아들의 계절은 항상 그리 걱정스레 추웠다. 혹여 무심한 아들이 찬바람에 웅크리고 감기에 걸릴까, 조금만 바람이 불어와도 그리도 매일 춥다 춥다 내게 말해왔다. 아들은 이제야 그 둔하고 따뜻한 마음을 알았다. 그렇게 아들은 오늘 또 어머니의 계절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