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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캥거루 May 04. 2019

퇴근4 - 모임

그시절의 사소함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1.

 오랜만에 학교 동기들을 만났다. 뭐가 그리도 바쁜지 그리도 서로 시간한번 맞추기가 점점 어려워 모처럼만에 반가운 자리다. 학교에 대한 그리움이 인지 약속장소는 학교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잡았다. 약속시간이 되고, 하나 둘 노란 불빛의 술집에 차례로 들어왔다. 아무래도 어유 오랜만이야 하며 악수를 하는 사이는 아니라, 먼저 와있던 친구들은 늦게 오는 친구들에게 반가움의 욕지거리를 한다. 나는 하필이면 바빴던 주간이라, 제일 늦게 도착했고, 가장 많은 욕을 듣고 시덥잔은 시비와 장난을 받아주며 구석에 앉았다.


 대충 그렇게 장난이 끝나고 나면 가십거리들과 그런저런 대화들이 오간다. 어디서 그리들 돈이 생겨났는지 돈, 투자 따위를 이야기하기도 하다가 공통의 과거, 학창시절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러다 금새 지겨워져서, 각자의 현재에 대한, 내가 얼마나 힘든지 토로의 장이 열린다. 육아면 육아, 일이면 일, 서로가 처한 상황에 대해 각자 자신이 지금 더 힘들다고 경쟁하듯이 이야기를 하게 된다. 나는 슬쩍 이야기에서 빠진다. 사실 나도 별로 괜찮지 않더라도, 나만큼은 힘듦을 말하기 싫었다. 


 기껏해야 여자 연애 따위가 걱정이던 대학 친구들이 이제 어른이 다 되었다. 어른 같은 지겨운 대화가 일상이 되었고 꾸는 꿈은 비슷비슷한 모양새다. 아닌 척 하려하지만 아마 나도 마찬가지일 텐데, 문득 고상한척 이중적인 내 자신이 역겹다 생각이 들어 다시 대화에 끼어본다.


 꽤 길게 그 푸석한 대화가 오갔다. 그래도 일차 이차를 거쳐 늘어난 술은 약간 우리를 들뜨고 젊게 해줬다. A는 학교 앞으로 가자 했고, 택시를 타고 그 늦은 시간에 학교에 갔다. 길거리에서 오뎅을 서서 먹고 딱히 올라가서 무얼 한건 없었지만 그 언덕빼기 학교를 결국 걸어 올라갔다. 올라감의 목적은 없었어도 그 길은 의미가 있었을 것이라 그리 했을 것이다.  두리번거리고 히히덕 거리다 곧 그 언덕 끝 익숙한 벤치에 앉았다. 빨간 자판기에서 오백원짜리 사이다 하나와 담배를 노나 피던 곳. 동전과 천원짜리 지폐가 없어진 지금의 주머니에선 아무래도 뽑아먹을 수 없어 서글펐다.


 벤치에 앉아 그냥 앞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A가 울었다. 흐느끼며 우는데 왜냐 물어보기 전에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 주사가 우는 거였지 이제 와서 취기가 올라왔구나 이 XX는..’ 갑자기 그걸 보고 나는 뭔가 우리의 사소한 때로 돌아간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서 그날 처음 진심어린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도 같이 붙어다니며 자주 봤던 모습인데 어느새 나는 그의 특이한 주사를 잊고 있었다. 그리고 A자신도 아마 불편한 사회에 나간 뒤로 그 주사를 고치던지 불편하게 스스로 막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우는 이 눈물에는 어쩌면 아래의 술자리에서 A가 토로한 현재의 돈따위 걱정과 슬픔이 포함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회상인지 솔직함이었던 건지 그 사소한 모습 자체가 반가웠다. 그래서 나도 옛날만치, 텁텁한 손으로 A의 뒷목을 툭툭치며 조물러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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