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하기 이를 데 없는 중년 만화가 ‘강귀찬’과 함께
- 스마트뱅킹, 시도조차 안 해 봄.
인터넷뱅킹은 꼬박꼬박 컴퓨터를 켜야 함.
- 모바일 결제, 어떻게 하는지 모름.
커다란 컴퓨터 화면으로 물건을 봐야만
안심하고 돈을 지불할 수 있음.
- 카카오페이, 이름만 들어 봄.
에, 또 뭐가 있더라….
허걱, 너무 많구나! ㅠㅜ
.
.
어쩌다 한 번 곱씹어 본다.
남들 다 한다는데 시작도 못 해 본 것들.
(다들 안다는 연예인 이름도 잘 모르긴 마찬가지.)
내 나이 아직은 마흔 대(후반일지라도), 덜컥 겁이 난다.
변해 가는 시대를 따르려야 따를 수 없는
멍텅구리이자 무능력자가 되면
아니, 벌써 그리됐으면 어떡하지.
처음부터 이렇게 주눅 들지는 않았다.
철없이 행복하던 시절이 있었고,
산골에서 먹고살고자 애쓴 노력들이
하나둘 좌절되면서 암담하게 웅크리던
시간들마저 흐르고 흘러 어느덧
귀촌살이 10년 차가 되던 올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체 그동안 뭐 하고 살았지?’ 하는
후회, 자책, 자괴감, 막막함….
‘서울이라는 우물’을 벗어났다고
철없이 좋아했던 나는
‘스스로 판 우물’에
저도 모르게 갇힌 것만 같았다.
높푸른 하늘에 대고
‘대자연님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하소연이라도 할라치면 나지막한 목소리가
내 안에 울린다.
‘스스로 제 앞가림하고 싶다며
여기 온 거 아니었나. 길은 알아서 찾게.
안 되면 되돌아가더라도 잡지 않겠네.’
지극히 맞는 말씀 앞에
몸도 마음도 더욱 움츠러든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숱한 일들은
의도하지 않아도 시나브로 멀어져 갔다.
붙잡으려 애쓰지도 않았다.
시골 살면 다 그런 것 아니겠냐며
세상일에 무관심한 세월이 겹치고 쌓이면서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 나도 모르게 되어 갔다.
관계도 그러했다.
일주일에 전화 한 통 주고받지 않아도,
한 달 넘게 사람 한 명 만나지 못해도
괜찮던 때가 분명 있었다.
지난 10여 년간.
딱 반년 직장 다닌 것 말곤 사회생활을 못 하였으니
새로운 인연 만날 일 드물었고,
이어질 듯 말 듯 아련하던
귀촌 뒤 인연들은 무엇이 문제였는지
끈끈하게 엮이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끈,
‘프리랜서’ 편집 일마저 수년 전 툭 놓아 버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깊은 절망이
있었다, 그때는….
자연을 벗 삼아 지낸다는
허울 좋은 그늘 아래,
사람살이도 경제생활에서도
‘고립’이 너무 깊고 길었나 보다.
돈벌이를 해야만 하고,
사람과 만나 말하고 부대끼면서
‘인간(人間)’답게 살고 싶은데
처참하리만치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하염없이 주저앉아 있는 나를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안일하고 나태했던 시간을 반성하고,
어떻게든 어떤 방법으로든
다시 일으켜 세워야 했다.
사람 속으로, 세상 밖으로!
이대로 가서는 정말 아니 되겠고
그렇다고 되돌아갈 수는
더더욱 없다는 절박함으로
생활에서 작은 것부터 하나씩
바꾸어 보기 시작했다.
- 한동안 못 만난 인연들한테 용건이 없어도 안부 전화를 건넨다.
(전화기 너머로 사람 목소리라도 들으니 외로움이 조금은 물러가더라.
느닷없는 전화를 반갑게 받아 준 인연들이 고맙고도 소중했다.)
- 농사에 참고하고자 날씨만 살피던 포털 창에서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읽는다.
(연예인 이야깃거리보다 경제 뉴스에 눈길이 더 간다. 예전엔 정말 안 그랬는데.
요즘은 기름보일러 땔 등유 값 내린다는 기사만 애타게 기다리는 중.)
- 마음 가라앉히는 명상이나 생각 멈추기용 먹방만 보던 유튜브에서
‘자기 계발’ 영상을 찾아본다.
(부엌에서 일하거나 농사지은 거 갈무리할 때 틀어 놓는다.
무기력한 마음에 자극이 좀 된다.
‘자기 계발’이란 말이 마흔 후반에 이토록 절실하게 다가오다니,
자존감이 어지간하게도 바닥을 쳤나 보다.
그래, 인정. 바닥 친 반동으로 다시 올라설 힘을 받아 보자!)
- 어쩌다 한 번 들어가 삭제만 누르던 이메일. 차근차근 열어서 내용을 본다.
(수년 동안 업무용 메일이 없으니 온갖 광고만 많았는데,
새로운 뉴스레터에 구독 신청도 하고 전에는 제목만 보고 지웠던 것들,
때로는 광고까지도 이제는 본다. 이메일 내용이 다양해지니까
그것만으로도 뭔가 활력이 된다.)
떠오르는 몇 가지를 적고 보니
마치 무인도에서 살다 온 사람이
사회에 적응하는 모습 같기도 하네.
슬쩍 한심하지만 천천히 조금씩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을 되찾고
세상과도 이어지는 기분에 숨통이 살살 트인다.
이렇게 한 걸음씩 가 보는 거지, 뭐!^^
하얀 화면에 대고
컴퓨터랑 이야기 나누듯
넋두리 줄줄 늘어놓는 산골 경단녀.
지질하고 못난 모습인지라
얼굴은 화끈해도 속만큼은 후련하다.
마음속에서 웅얼대던 목소리를
부끄러워도 꾹 참고 글자로 적어 보라고,
그러면 조금 더 나아질 힘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살살 부추긴 주인공이 있다.
사람이 아닌 책, ‘20년 차 만화가의 밥벌이 생존기’를 담은
<일어나요 강귀찬>이다.
“팔아야 한다, 아무 생각도 안 나지만 뭐라도 꺼내 팔아야 한다!” (117쪽)
만화 속 이 대사와 그림이
그간 내 몸부림과 처절하게 닮아서, 마음이 많이 저렸다.
“나는 왜 돈 벌기 힘들까?”
“나를 찾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왜 찾는 이가 없는가?”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137쪽)
‘돈 버는 생각 4’에 나오는 장면에서는,
‘고립’이라는 낱말이 서글프게 반갑고
돈 벌 길 못 찾는 내 신세랑 또다시 비슷한 느낌에
여러 번 들여다보기도 했지.
책을 보는 내내, 책장을 넘길수록
짠하기 이를 데 없는 중년 만화가 ‘강귀찬’,
그이가 이 책과 함께 훌쩍 일어서기를 진심 바라고 또 바랐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때 느낌이 왔다.
이 만화를 보고 나면 주눅 든 마음이 좀 펴질 것 같다는.
역시, 맞았다.
고립된 듯 보이는 지금 이 자리에서도
분명 세상 밖으로 나아갈 수 있고
사람들과도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의 불씨가 되살아난다.
이번만큼은 참말로 꺼트리지 않고
꼭 잘 살려내고 싶다.
“일어나요, 조혜원!”
당분간 이 외침으로
아침을 열어 봐야지.
바닥 친 마음이 어제보다 오늘은
단 1밀리라도 더 일어섰기를,
또 내일도 그럴 수 있도록 내게 온 이 하루를
옹골차게 맞이하기를
간절히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