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전업주부를 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시작은 0원이었다.
그만큼 둘이서 함께 벌어 일궈야 할 것이 많았다.
그중에 자녀계획도 함께였다.
우리의 성과 중 가장 빠르게 성공한 것은 어여쁜 아이들이다.
첫째는 허니문 베이비를 계획했지만 당연히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남편은 연초에 생일이면 좋겠다며, 그 의지가 확고했다.
신혼차 3개월에 임신 사실을 알았다.
다행히 아이는 예정일이 1월 말이었다.
출산 전까지 회사를 다닐 생각이었지만, 스트레스 때문인지 입덧이 세게 왔다.
중간에 입원을 하면서도 일을 손에 놓지 못했다.
결국 입덧이 끝나갈 때쯤 퇴사를 했다.
. . . . .
우리는 시댁도 친정도 아이를 봐줄 분이 안 계신다.
그래서 맞벌이는 쉽게 생각하지 못했다.
생계를 생각하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아이가 아프면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대로 전업주부의 역할에 최선을 하기로 했다.
집안일, 육아, 그리고 생활비 절약까지
완벽한 전업주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집안일도 육아도 생활비 아끼기도 마음처럼 되는 것이 하나 없었다.
남편하고 다투게 되면 이유의 1순위는 육아였다.
일하고 와서 남편이 힘든 걸 안다.
하지만 아이와 아빠의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서 투잡을 하겠다는 남편을 말렸었다.
지금도 그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편은 연대 만들기보다 육아를 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서운하고 속상했다.
다투던 두 번째 이유는 집안일이었다.
사실 육아와 같은 맥락이었다.
나도 하루종일 전업주부의 역할을 하느라 힘든데, 남편이 알아주지 않아서 속상했다.
남편은 집안일은 주부의 역할이라 정확히 선을 그었다.
대신 생계유지는 모두 자기 몫이라며 그것 또한 정확히 선을 그었다.
그래서 맞벌이는 자기가 미안해서 안 했으면 했고, 대신 내가 집안일을 혼자서 해내길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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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남편도 서로 힘든 점만 내세우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많은 대화를 통해서 남편의 생각을 알고 나니 내가 양보할 부분도 보였다.
사실 정리에는 재능이 없는 남편이라, 내가 혼자 하는 것이 편했다.
그 대신 남편이 집에서 쉬는 기간에 빨래를 도맡아 해 주었다.
그때는 빨래가 밀릴 일이 없었다.
남편은 지금도 그 시절을 매우 뿌듯해한다.
어느 정도 포기와 양보를 하고 납득을 하고 나니 집안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무엇을 해야 내가 편하고 쉽게 할 수 있을지 점점 보였다.
결혼 7년 차에 이제 전업주부 Lv 2 정도 된 느낌이다.
(만렙은 어느 경지일까?)
남편 회사는 점심에 도시락을 먹는다.
그리고 일주일이 1번 정도는 외식을 한다.
신혼 초였으면 막막했을 것 같은데, 지금은 도시락에도 요령이 생겼다.
일주일 메뉴를 정해놓고 전날 재료를 손질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침에 아이들 아침밥과 도시락을 동시에 만든다.
남편의 도시락 메뉴는 나의 점심밥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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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도 아이들이 커가면서 조금 수월해졌다.
아마 나의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 아이가 유치원, 어린이집을 마치고 오면 저녁에 잠들 때까지 정신없이 흘러갔다.
그런데 지금은 저녁준비도 미리 해 놓아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아이들도 둘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 그럴 때 얼른 집안일을 마무리한다.
물론 아직도 부족하다.
아이들에게 더 집중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도 1~2년 전과 비교하면 정말 많은 발전이 있었다.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나는 전업주부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완벽해지고 싶은 주부이다.
요령이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전업주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