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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프 YUNP Oct 20. 2021

누구나 가슴에 노래  하나쯤은 있는거에요

노래에는 추억이 깃들어 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도입부 멜로디를 듣자마자 과거의 순간이 생각이 나며 코 끝이 찡해지는 순간이 있다. 인간의 추억은 후각에 많이 의존한다고 하지만 청각에도, 단순한 청각이 아닌 멜로디와 화음에도 기억이 실려있다고 믿는다.

생도들은 슬옹을... 좋아하진 않았다.

 2010년, 진해의 생도일 때 아이유의 잔소리를 처음 들었다. 군인과 학생의 중간 어디쯤 있는 생도들은 여자가수들에 대해 언제나 지대한 관심을 보였었다. 점심시간이면 방송부가 직접 선곡한 곡을 식당에 틀곤 하였는데, 방송부 2학년(또는 3학년, 나에게는 그저 선배라 기억이 희미하다)이 아이유의 잔소리를 4연타로 틀었다. 과유불급, 듣다 지친 한 4학년이 박차고 일어나 방송부 문을 박차고 들어가 호통을 치고 그 자리에서 2학년을 '훈육'한 일화도 있다.


나에게 아이유의 잔소리는 코 끝 시큰한 비루함 같은 노래다. 육사, 공사, 해사가 다같이 모이는 자리가 있어 청주 공군사관학교에 1학년들이 모두 모였다. '육군은 군인, 공군은 귀족, 해군은 해적'이라는 농담처럼 공군사관학교의 분위기는 뭔가 젠틀함이 건물 틈새와 연병장에서 묻어났다. 소금 냄새 나는 진해 앞바다, 콘크리트 연병장을 자랑하는 해사와는 달리 조금 더 섬세한 도시남자와 같달까. 육해공 생도들이 모여 서로의 견장의 크기를 자랑하는 그 시간, 공사에서는 기상시간에 최신곡을 틀어준다는 한 마디에 기가 죽고 말았다. 해사의 기상시간이라함은,,, 연대부직의 고요한 종소리 뿐. 나를 기상시키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기상을 놓치게 만들어서 3학년 선배와의 화끈한 훈련보고(얼차려) 자리를 주선하겠다는 것인지 모를 그런 종소리였다. "팅 팅 기상 15분전".... 기상 15분전에 미리 기상하라는 그 얄궂음이란.


그렇게 우리는 진짜 최신곡을 틀어주나 기대하며 잠에 들었고, 다음날 6시 아이유님의 잔소리가 울려퍼졌다. 심지어 15분에 일어나라고 재촉하지도 않았다. 정확한 시간에 즐겁게(물론 기상은 즐겁지 않지만) 일어날 수 있게 하는 , 마치 지은님이 나에게 일어나라고 투정을 부리는 듯한 노래였다. 생도사에서 가요가 나오는 것....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타교가 얼마나 좋은지 느끼는 시간을 가졌고, 타교생도들과 우애를 다진다기 보다는 비루한 우리의 처지를 부정하기 위해 '진짜 군인은 저런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진짜 군인이다'라는 전형적인 정신승리의 과정을 통해 내부결속을 다지며 진해로 돌아왔다. 그게 첫번째 비루함이다.



해군사관학교 생도사, 지금도 소름이 조금 돋는 기분이다.


이제 어연 첫 번째 비루함은,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고작 10개월 동안의 해사에서의 생활은 나의 삶을 통채로 바꾸어 놨다. 서울만 알던 촌놈의 세상을 넓혀 놓았고 다양한 인간군상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해사에서의 규범을 진리로 경배하다, 견장을 떼고 돌아오니 그 진리라는 것은 너무나 가변적이고 연약하며 조금은 웃긴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대학과 전공을 졸업하였고, 졸지에 군대를 두번 다녀온 약간은 특이한 케이스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인간이 육체적으로 급속도로 성장하는 시기는 태아일 때의 10개월이라는데, 나는 진해 옥포만에서 10개월간 정신적으로 급속도로 성장했던 것 같다. 이제는 30대가 되어, 어느새 20대가 다 지나갔나. 그때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그런 순간에 서서 우연히 들은 아이유의 잔소리는 지난 10년간 과연 해사를 박차고 나오며 다짐했던 것 만큼 열심히 살았는가 하는 약간의 회환이 섞인 평범한 회사원의 비루함이다.


아무리 비루하다고 외쳐봐도 시간은 갈 것 이고, 엔트로피의 흐름을 역행하는 암흑의 주문이 발견되지 않는 한 나는 계속 늙어갈 것이다. 다음번 아이유의 잔소리는 조금 더 따듯한 비루함이었으면 좋겠다.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나에게 하는 잔소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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