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글쓰기가 그저 즐거웠습니다
토플, 아이엘츠, 중등 영어 임용고시 등에서 요구하는 영어 쓰기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영어 쓰기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습니다.
그 원천은 어디에 있을까요?
초등학교 말까지 원어민 선생님과 함께하는 영어회화 중심의 학원을 다니다가 중학교를 입학하기 직전부터 입시종합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수업을 진행하는 학원이었죠. 그 학원을 약 3년 다녔습니다.
성실히 모든 과목을 열심히 듣긴 했지만, 그 중 제일 재미있었던 수업은 역시 영어였습니다. 중3이었던 어느 날, 영어 선생님이 저를 유심히 관찰하고 계셨나봐요. 이런 제안을 하셨습니다.
"펜팔 한 번 해보는 게 어때?"
당시 펜팔이 유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학원 영어 선생님께서 처음 저렇게 펜팔을 제안하셨을 때, 당시 자주 들어보던 단어라 익숙했지만 정확히 '펜팔'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펜팔(pen-pal): 편지나 전화, 인터넷 매체 등 통신 수단을 사용해 사귀고 교류하는 친구를 가리키는 영어 어휘이다. (출처: 나무위키)
선생님께 펜팔이 무엇인지, 어떻게 펜팔을 구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여쭙고 그 날 바로 펜팔 사이트를 통해 저만의 펜팔 친구를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캠블리(Cambly)처럼 원어민과 화상으로 영어회화를 할 수 있는 어플까지 있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길거리에 외국인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중학생이였던 2002~2004년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랬으니 초등학생 때 다니던 영어 회화학원에서 본 원어민 선생님은 저에게 신세계처럼 다가온 것이죠.
어릴 적부터 영어와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환상을 품으며 영어 공부에 재미와 흥미를 갖고 열심히 매진하던 저에게 펜팔은 또다른 흥미로운 세계였고, 학원 선생님의 추천에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인터넷 상으로 미국, 독일, 터키 등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처음엔 e-mail로 교류를 시작했어요. 첫인사를 나누고 자신의 국적, 취미, 꿈 등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는 메일을 보내면 상대방도 자신의 소개로 답장을 보내오곤 했죠. 이후 자신의 학교 생활, 형제, 자매, 부모님, 친구와의 사소한 일들, 관계 등 개인적인 근황에 대해 메일로 주고받았습니다.
이후 제가 직접 쓴 편지를 주고받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편지 속에 한국 사탕을 하나씩 몰래 넣어 전달하기도 했고, 한국 전통 문양이 담긴 책갈피도 같은 방식으로 보내곤 했습니다. 이에 이번 글 대문 이미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펜팔 친구들도 편지로 또는 소포로 저에게 선물을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한편, 편지는 e-mail과는 다르게 또다른 매력이 있더군요. 편지지에 쓰기 전, 받는 사람을 생각하며 그 내용을 미리 다른 종이에 초고를 쓰고 수정을 거듭하는 과정, 국제 메일이라 편지가 도착하는데 걸리는 그 시간을 애태우며 설레며 기다리는 마음, 마침내 답장이 왔을 때 느끼는 진한 반가움. 해외에 사는 펜팔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는 과정은 자꾸만 달아오르는 마음을 달래야만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위의 메일 내용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의 펜팔 친구를 통해 생일 선물로 갓 출간된 <해리포터와 혼혈왕자>를 받게 됩니다. 당시에는 해리포터가 전세계 동시출판되지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미국 펜팔 친구가 생일 선물로 보내주는 그 책은 저에겐 쉽사리 얻을 수 없는, 신성한 물건이었습니다. 또한 저에겐 매우 의미있고 뿌듯함을 주는 값진 선물이었습니다. 영어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받게 된, 그것도 바다 건너 도착한 선물이었으니까요.
중학생 때부터 기다려왔던 해리포터 시리즈의 다음 이야기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분권으로 출간되는 우리나라 해리포터 책들과는 달리 한 권으로 나와 아주 두껍거니와 그 속에 빼곡히 쓰여진 영어가 주는 허세는 저를 현실 세계와 판타지의 경계를 구분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했습니다. 다음 날 학교에 가져가 쉬는 시간에 그 책을 펼치는 사태에 이르렀거든요. 해리포터 영문판을 읽고 있는 저 스스로의 멋짐을 즐겼습니다.
실제로 해리포터 원서는 조금도 쉽게 읽히지 않았습니다. 고등학생으로서 중차대한 입시라는 기차를 탄 시기라 해리포터 원서를 붙들고 그 세계를 헤매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습니다. 중학생 시절 챕터북이나 리더스 시리즈들은 자주 읽어오곤 했었는데 고등학생이 되니 책을 읽을 시간이 없더군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한 펜팔. 미국, 독일, 영국 등 외국 친구들에게 손편지나 이메일을 쓰는 일은 영어 쓰기 능력의 기틀을 제대로 잡는 경험이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 약 2년동안 펜팔 활동을 통해 영어로 글을 쓰는 것 자체에 익숙해졌고, 그로 인해 영어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이 쑥쑥 자라고 있었으니까요. 대학 입학 후 토플, 아이엘츠 시험을 치를 때, 임용고시 서·논술형 문제를 풀 때도 영어로 쓰는 것이 어렵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다른 수험생들보다 하나의 커다란 관문을 이미 통과한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무엇보다 제가 펜팔 친구들과 손편지,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얻은 가장 중요한 결실은 '읽을 사람이 명확히 존재하는 글쓰기 연습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편지를 쓸 때마다 미국 또는 독일에 사는 제 펜팔 친구가 받을, 읽을 편지를 썼으니까요.
이는 쓰기 능력 향상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영어교육 이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Teaching English as a Second or Foreign Language> by Marianne Celce-Murcia, Donna M. Brinton, et al.)
What are the important components when learning to write in a new language?
Viewing writing as an act of communication suggests an interactive process that takes place between the writer and the reader via the text. Such an approach places value on the goal of writing as well as on the perceived (or intended) reader audience. These two aspects of the act of writing need to be stressed even at the very beginning level, as soon as students can create the smallest meaningful messages. Teachers need to encourage students to define for themselves the messages they want to send and the audiences who will receive them. (중략)
요약하자면, 쓰기는 하나의 소통 행위입니다. 즉, 텍스트를 통해 글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상호작용입니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그 글을 읽을 사람을 항상 염두해야 합니다. 이 두 부분은 시작 단계에서부터 강조되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학습자가 아주 작은 메시지를 쓸 수 있을 때조차도요. 결국, 교사는 학생들이 그들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뿐만 아니라 그 메시지를 읽을 독자를 명확하게 정의하도록 북돋아야 합니다.
저는 해외 친구들과 펜팔을 하면서 위와 같은 글쓰기의 핵심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각종 영어시험, 중등 임용 고시에서도 비교적 높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한글, 영어로 쓰는 서·논술형 문제 풀기도 결국은 하나의 쓰는 행위입니다. 쓰는 것은 그것을 읽는 사람과의 소통 행위라고 했습니다. 즉, 자신의 답안을 읽을 채점자와의 소통입니다. 채점자가 제 답안을 이해하기 쉽게 써야 합니다. 글의 구조가 명확하고, 문장이 단순·명료하고 키워드가 들어가 있어 채점자 입장에서 읽고 이해하기 쉽게 써야한다는 말입니다.
읽는 사람을 염두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 줄줄 쓰는 글은 문장이 길어지기 쉽고, 키워드 보다 다른 불필요한 단어들을 끌어와 문제에서 요구하는 개념을 설명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채점자에게 글쓴이의 생각을 명확하게 전달하기 힘들어지는 글을 낳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자신의 답을 읽을 채점자를 미리 고려하지 않고 쓴 답이니까요.
이제 펜팔이 유행인 시대는 지났습니다. 쉽게 전화, 화상 영어로 원어민과 소통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렇게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원어민과 소통 전, 어떤 주제에 대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스크립트로 먼저 작성한 후 원어민과 대화해보고 그것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로써 말하기 능력뿐만 아니라 쓰기 능력까지 향상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아이들에게 영어 글쓰기를 지도할 때는 어떨까요? 어린 아이들은 영어 책이나 학습지에 있는 쓰기 문제를 풀 때 읽는 사람을 생각하는 글쓰기를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또한, 학생들은 그저 문제를 풀어내면 끝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자신의 실제 삶과 직결되지 않은 문제일 땐 더더욱 그렇고요. 그럴 땐 읽는 사람을 특정하게 지정해보면 어떨까요? 제일 친한 친구나, 선생님 등으로요. 아주 간단한 것이지만 하고 안 하고의 차이는 분명할 것입니다.
읽는 사람을 생각하며 하는 글쓰기는 글쓰기 실력 향상에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가 이해하기 쉽고 명확하게 글을 써야하기 때문이죠. 그렇게 쓴 글은 어떤 글보다 단단하고 명료한 글이 될 것입니다. 저는 청소년기 펜팔 활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이 훈련을 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영어 쓰기 능력과 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