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찾기 위해 영어를 읽던 밤

여러분들도 무언가를 찾으셨길 바랍니다.

by Writer Choenghee

십 대 때부터 영어를 참 좋아했습니다. 정확히는 중학생 때부터인데요. 영어가 제 마음속으로 들어온 것 같습니다. 영어가 좋아진 특별한 이유가 없이 그저 영어를 배우고 겪는 시간들이 즐거웠고 좋았으니까요. 그냥 재미있었습니다. 영어 학원에서 원어민 선생님과 수업 중 선생님의 질문을 알아듣고 영어로 대답하는 순간들이,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게 짜릿했습니다. 같은 중학교를 다닌 친구도 그 학원을 함께 다녔는데 제가 영어라는 세계에 점점 스며들고 있는 상태임을 그 친구도 느꼈나 봅니다. 당시 CNN 뉴스 기사가 담긴 책과 카세트테이프를 원하면 마음껏 쓰라고 빌려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바로 빌렸습니다. 당시 부모님이 저에게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인 마이마이를 사주셨어요. 학교에서, 집에서, 방과 후 귀갓길이나 학원 가는 버스 안에서 마이마이로 CNN 뉴스를 그저 영어를 좋아해서 어려웠고 다 이해되지 않아도 기분 좋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십 대 시절 영어에 스멀스멀 빠져들던 때의 저에 대해 더 풀어보자면, 해리포터를 통해 영국 영어에 매료된 것과 모의고사 문제 풀다 울컥한 경험을 빠트릴 수 없습니다. 해리포터를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던 기억이 납니다. 그전에 한 번도 책을 읽으며 밤을 새운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해리포터가 그걸 가능하게 한 거죠! 이후로 해리포터를 쓴 작가 조앤 K. 롤링, 그녀의 국적 영국, 영국 드라마, 영국 팝가수 등 해리포터를 통해 꿰어질 수 있는 모든 것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종착지는 결국 영어였습니다. 그맘때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해외 친구들과 펜팔을 하던 때였습니다. 당시 제 생일이 다가와 미국 친구와 펜팔을 하던 중, 어떤 선물을 받고 싶냐고 물어 당시 갓 출판된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원서로 받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영국, 한국 동시 출판이 아니었을 때입니다. 그 원서를 학교에 가져가 은근히 자랑하듯 영영사전과 함께 쉬는 시간에 책상 위에 펼쳐 놓고 읽었습니다. 당시에는 모르는 어휘 투성이에 이해하기도 힘들었지만 원서를 읽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겐 큰 희열이었습니다.


또 한 번은 고등학생 때 영어 모의고사 문제를 풀다 울컥한 적이 있습니다. 해당 문제들은 모의고사 맨 마지막 쪽 긴 지문과 관련된 것들이었습니다. 지문 내용이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이 잘 안 나는데 힘든 상황에 처한 한 사람을 몰래 도와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문제를 풀 때의 저는 문제를 푼 게 아닙니다. 그저 하나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읽고 그야말로 감동을 한 것이었죠. 울컥했습니다. 영어 시험 시간이 끝나고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 너무 슬프지 않냐고 물었고, 친구들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장면이 떠오르네요. 그러니까 저에게 영어는, 영어 시험 문제들은 공부해야 할 여러 과목들 중 하나가 아니고, 맞혀야 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무엇인가에 씐 것처럼 영어가 입시의 압박도 벗겨내고 그저 재미와 즐거움을 제공해 준 것이었죠.




그렇게 성인이 되고 대학교를 다니며 영어 원서 읽기는 저에게 덕업일치의 생활이 되었습니다. 전공이 영어교육이다 보니 전공서적들이 모두 영어로 된 원서들이었죠. 좋아하는 영어를 전공으로 공부하니 너무나 행복한데 동시에 그 전공서적 또한 영어로 되어있으니 저에겐 행복감이 몇 배나 진했습니다. 교양과목은 최소로 듣고 전공과목을 좀 더 수강할 정도였으니까요. 임용고시 합격 후, 교직에 들어서고는 영어의 재미보다는 영어 실력을 더욱 갈고닦기 위해 영어 원서를 꾸준히 읽었습니다. 영어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계속 증진시키고 싶었습니다.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이유로 정체되고 뒤쳐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요.


올해 1년 육아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육아만으로도 바쁠 테니 딸에게 집중하면서 쉬어가는 한 해를 가지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5, 6개월을 지내다 보니 육아가 너무 고되더군요. 체력적으로는 솔직히 힘들지 않았습니다. 육아가 아무리 힘들어도 집 안에서만 생활하니 활동량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큰 목소리로 교실 곳곳을 누비며 수업을 하고, 생활지도를 하며, 상담을 하고, 행정업무를 하는 등 출근을 할 때의 체력적 에너지 소모가 더 큽니다. 그런데도 육아가 힘들었습니다. 제 삶의 중심에 제가 있지 않은 것이 그 이유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몸이 아니라 마음이 저를 힘들게 했던 거였죠. 내가 하고 싶은, 좋아하는 것들을 잠시라도 즐길 수 있어야 중심으로 스스로를 조금이라도 당겨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찾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좋아하던 영어를 다시 꺼낼 수밖에 없었지요. 예전에 읽던 원서들을 주섬주섬 꺼냈습니다. 올해 2월 이사를 해서 애를 써서 찾아야 했고, 친정 제 방의 책장에서도 재미있게 읽었던 원서들을 챙겨 왔습니다. 참고로, 브런치스토리를 하기 전에는 저는 쓰는 인간이 아니라 그저 읽는 인간이었습니다. 공부를 할 때도 눈으로 읽으며 머릿속에 정리하며 공부하는 스타일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남들처럼 책에 흔적이 많이 없는 편입니다. 형광펜을 칠한다든가, 메모를 해둔다든가 하는 것들이요. 원래 책을 깨끗하게 보려고 하는 편이기도 합니다만. 필사나 밑줄, 하이라이트로 표시해두진 않았지만 머릿속에 제가 좋아했던 부분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그 부분들을 찾아가며 읽은 책을 다시 빠르게 훑어 읽었습니다.


이제야 이 브런치북 <영어를 읽는 밤 나를 찾는 시간>의 존재 목적이자 이유를 정확하게 알려드리게 되었습니다. 머릿속에 밑줄, 하이라이트, 필사되어 있던 그 부분들을 이제는 글로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동시에 제가 좋아하는 영어를 여러분들께도 읽어드리고 싶었어요. 더 나아가 영어 원서에 담긴 영어들이 함께 버무려진 제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쉽게 전달되길 바랐고,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조금이라도 새롭게 또는 더 단단하게 얻어가시는 영어 표현이나 문법들이 있길 바랐습니다. 영어를 공부하고 싶은 분들께 혹은 영어에 관심이 많은 분들께는 인용된 부분을 통해 원서를 소개해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그래서 이 브런치북의 전형인 매거진 <영어를 읽는 밤 나를 찾는 시간>은 원래 <매일 밤 영어 원서를 읽어드릴게요>였습니다. 하지만, 매거진 제목의 글자 수 제한이 있어 결국 <영어를 읽는 밤 나를 찾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제목도 저에게 의미 있는 것들이 다 담겨있어 좋습니다. 제 삶의 중심으로 저를 좀 더 끌어당겨 저를 찾고 싶다는 원래의 목적이 담겨 있고,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제가 좋아하는 영어였으니 결국 제목이 다 이뤄냈군요.



브런치북을 발간하지만 저의 영어를 읽는 밤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제는 영어 원서를 읽으며 주옥같은 부분들을 꼭 필사해두려고 합니다. 독자분들과 나누고 싶어서요. 제가 좋아하는 영어를 많이 읽고 즐긴 후 또 다른 영어 원서 관련 브런치매거진이나 브런치북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리고, 조금 다른 형식도 생각 중이니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께 또 읽어드릴게요. 물론 다른 매거진의 글들은 계속 쓸 예정이니 계속 소통해요, 우리. 영어가 반갑지 않았던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간 제 글들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글 제목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