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교사의 비거니즘 에세이 "무릎 내어주기"
“와” 사람들과 인사동에 있는 오세계향에서 첫 번개 모임을 가졌다. 서촌의 소이로움 이후 내가 두 번째로 방문한 비건 식당이었다. 채식 두개장, 녹두로 만든 계란후라이, 들깨버섯탕, 강된장 비빔밥, 콩으로 만든 비건 탕수육, 표고말이튀김. 모든 메뉴가 동물성 재료 없이도 맛있었다. 모두가 “이런 식당이 집 앞에 있으면 나도 진짜 비건될 수 있다”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문득 “오세계향세권”에 살지 않는데 이미 비거니즘을 실천하고 있는 J의 일상이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회식에 가선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알고 싶어 질문을 던졌다.
“회식 가면 어떻게 해요? 비거니즘을 해서 고기 안 먹는다, 이런 이런 이유 때문에 비거니즘을 한다, 이런 거 다 설명해요?”
“상황 봐서 일일이 설명하기 어려울 때는 그냥 속이 안좋다고 하거나 한약 먹는다고 해요.”
비거니즘을 실천하기로 결심한 후, 가장 고민되는 것은 누구에게, 그리고 어떻게 말하느냐였다. 교단에 서는 것과 동시에 5년 간의 자취 생활은 종료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내가 밥을 혼자 먹는 때는 거의 없었다. 학교에선 동료선생님들과 점심을 먹고, 퇴근하면 부모님과 저녁을 먹었다. 혼자 먹는 것은 새벽 여섯 시의 아침식사 뿐이었다. 대체 언제, 어떻게 말할까 고민하던 중 J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옳거니. 나는 평소 소화가 안 될 때가 많긴 했다. 잔병치레가 많기 때문에 친구든, 가족이든, 직장동료이든 내가 아픈 모습을 한 번쯤은 본 적이 있다. 내 위가 약하다는 것도 다들 알고 있다. 실제로도 20대 초반에 심한 위염을 앓은 후론 기름진 음식을 잘 소화시키지 못했다. 삼겹살집에 가면 고기는 반찬처럼 조금만 먹고 주로 밥과 된장찌개를 먹곤 했다. 나의 왜소한 체구까지 적극 활용하여 소화불량이라 설명하면 구태여 의심하거나 되물을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벽장 속에서는 비건 지향인, 겉으로는 소화불량인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획득하였다. 주변 사람들과 불편해지느니 차라리 내가 병약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이 없었다. 아직 비거니즘에 대해 나의 언어로 잘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비거니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직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지식과 논리의 빈틈을 누군가 공격할까, 나의 실천을 반박할까 두려웠다. 그래서 일단 피하기로 했다. 차라리 소화불량인이 됨으로써 말이다.
“왜 제육볶음 안 먹어? 엄마가 양념 맛있게 했는데..”
“아.. 요즘 또 이상하게 소화가 잘 안 되네?”
밥을 먹을 때마다 거짓말을 해야 하는 양치기 소년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계속 하다보니 적응도 됐다. 연기력도 조금씩 늘었다. “쓰읍”하고 방울뱀 소리 내기, 미간 찌푸리기, 고개를 오른쪽으로 45도 정도 비틀며 갸우뚱거리기, 손으로 배를 한 번 쓸어내기. 소화불량인의 제스쳐 시퀀스를 확립했다. 그런데 고기 반찬을 빼고 연명하려니 소화불량인 치고 좀 많이 먹긴 했다. 나물반찬을 파스타 먹듯 흡입하고 잡곡밥을 남김 없이 먹었다. 두부 반찬은 한 끼에 반 모씩 먹어치웠다. 다행히 부모님은 크게 이상하다는 점을 눈치채지 못하신 듯했다.
우리집은 애초에 고기를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었다. 아니, 그냥 전반적으로 뭔가를 많이 먹는 편이 아니었다. 체구가 모두 왜소한 우리 집 식구들은 대체로 식탐이 없고 입이 짧다. 삼겹살 집에 가면 넷이서 3인분도 다 못 먹을 때가 있어서, 남은 고기 몇 점을 누가 먹어 치울 것인지를 두고 각자 얼마나 열심히, 많이 먹었는지를 앞다투어 증명하며 서로 미루곤 했다. 설에 정성 들여 만든 갈비찜도 이틀이 지나면 손을 대는 이가 거의 없었다. 가족들을 위해 영양가를 골고루 챙긴 건강한 밥상을 차려주시는 엄마 덕분에 채소 반찬도 늘 풍부했다. 그래서 막연히 생각했을 때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간단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동물은 우리의 밥상에 아주 복잡다단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김치는 괜찮겠지, 하고 먹으면 젓갈이 있었다. 콩나물국은 괜찮겠지, 하고 맛있게 먹은 후 쓰레기통을 열면 국에 담겼다 버려진 멸치육수팩이 있었다. 굴을 넣은 떡국을 먹다가 ‘굴도 쾌고감수능력이 있는가’하는 질문이 생겼다. 햄이 들어간 볶음밥을 받고선 햄만 골라먹으려다 밥이 이미 햄과 함께 어우러져 볶였단 사실에 들었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이건 감자니까, 하고 감자칩을 먹다 식품성분표를 보니 소고기를 넣어 만든 양념으로 단짠단짠을 구현하고 있었다. 그럼 도대체 무얼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아마 비거니즘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채식 유형표를 본 적이 있으리라. 비건, 락토, 오보, 락토오보, 페스코테리언[1] 등 채식의 유형별로 어떤 음식을 먹는지를 설명하는 표 말이다. 여러 동물권 책과 기사를 접하며 도저히 육고기는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해졌지만, 왜인지 해산물을 먹는 것은 그리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우선 페스코테리언으로 시작해보기로 타협했다. 소화가 안 된다니 큰일이라며 이거라도 먹으라고 엄마가 밥그릇에 올려주시는 고등어조림은 죄책감 없이 다시 먹기 시작했다. 멸치육수를 넣은 것으로 추정되는 국수와 김치콩나물국도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채식 단계표에 따르면 페스코테리언은 육고기를 먹지는 않지만 난류와 유제품은 허용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게 비거니즘은 공장식 축산업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에 일종의 불매운동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고기만 먹지 않을 뿐 그들의 알과 우유를 먹는다면 그것이 불매운동인가, 하는 의문이 든 것이다. 그 의문은 ‘불매운동이라면 내 돈으로 안 사면 되는 것 아닌가? 이미 누군가 구매한 것이라면, 버려지느니 내가 먹는 것이 환경에 더 낫지 않은가?’ 하는 질문으로까지 이어졌다. 매일 급식 잔반은 엄청난 양으로 남겨지는데, 그러느니 급식은 그냥 먹는 게 더 환경에 더 이롭지 않은가?
이렇듯 비거니즘은 내 일상에 예상했던 것 이상의 피로감을 주기 시작했다. 내가 쉽사리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은 자꾸만 쏟아졌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시간도 없이 다음 식사 시간은 때 맞춰 다가왔다. 무수한 질문을 생산하며 공복감까지 전해주는 나의 뇌 활동을 일시정지시키고 싶었다. 포기할까 싶었지만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인지부조화를 견디며 이전의 식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더 힘들어 보였다. 실천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 내게 비거니즘은 울며 먹는 겨자와도 같았다.
쏟아지는 질문과 함께 고립감이 찾아왔다. 고기를 맛있게 먹는 친구를 보며 사실은 그가 고기를 먹을 때마다 살아있는 소가 떠오른다고 말할 수 없었다. 친구들이 서로 고기의 육즙이 일품이라며 맛집을 추천할 때 그 대화에 낄 수 없었다. 다수, 표준의 집단에서 벗어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비건도 아니고, 비건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비거니즘적 문제의식은 충분히 가지게 되었는데 나의 불완전한 실천은 비거니즘이라 부르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 같은 사람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생선을 먹고 우유와 난류를 먹지 않는 사람을 부르는 이름은 채식 유형표에도 없었다.
간만에 자취하는 언니까지 집에 와서 가족 완전체가 모여 정육식당에 갔다. 소화불량인 제스쳐 시퀀스를 한 바퀴 돌리고는 속이 안 좋아서 고기 말고 버섯을 먹겠다고 했다. 송이버섯을 불판 위에 올렸다. 소 기름이 자글자글 거리며 불판을 타고 새어나와 버섯에도 스며들었다. 노릇노릇 구워진 버섯을 입에 넣고 씹으니 비릿한 고기 맛이 배어 나왔다. 자꾸만 나는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1] 락토는 동물성 식품 중 유제품을, 오보는 난류를, 락토오보는 유제품과 난류 모두를, 그리고 페스코테리언은 유제품, 난류, 해산물을 허용하는 채식 유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