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교사의 비거니즘 에세이 "무릎 내어주기"
2016년 가을, 별이가 세상을 떠났다.
여느 때처럼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과천으로 과외를 가는 9-3번 버스 안이었다. 주머니 안에서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 ‘아부지’라는 수신자 이름을 봤을 때, 이미 무슨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인지 알 것만 같았다. 자궁축농증을 앓고 있는 별이가 떠올랐다. 의사는 병이 많이 진행되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고, 별이는 진통제로 버티며 가족들의 품에서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 통화 버튼을 누르지도 않았는데 시야는 뿌예져있었다.
우리 집 막내 박별은 2004년 생으로 추정된다. 하얀 말티즈로, 지중해의 몰타섬에 먼 조상을 두고 있다고 알려진 별이는 두 세 차례[1]의 입양과 파양 끝에 우리 집에 정착했다. 갑자기 아는 사람이 맡기고 떠난 강아지가 생겼는데 데려가겠냐는 큰이모의 말에, 엄마는 마트 지하의 펫샵을 지나갈 때마다 우리도 강아지를 키우자고 조르며 울던 어린 두 딸의 닭똥 같은 눈물을 떠올렸을 테고, 그렇게 충분히 단호하지 못한 엄마의 결단 덕에 별이는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친구네 집에서 놀다가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집에 강아지가 있으니 빨리 와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종종 집에 놀러 오던 큰이모네 강아지 콩돌이가 와있다는 줄 알았다. 신이 나서 친구에게 콩돌이를 보러 가자고 하고선 함께 날아갈 듯 집에 갔다. 현관문을 여니 콩돌이가 아니라 난생처음 보는 하얀 강아지가 있었다. 귀와 꼬리는 보라색으로 염색되어 있었고 큼지막한 검은 눈을 껌뻑이는 복실복실한 생명체가 캉캉 짖고 있었다. 엄마는 이 강아지가 우리 집에서 살게 될 강아지라고 했다. 믿어지지 않았다. 강아지라니. 우리 집에 강아지라니!
강아지는 TV에서 본 것처럼 내가 품에 안고 쓰다듬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주 큰 착각이었다. 별이는 나를 경계했고 아무리 박수를 치고 이리 오라고 불러도 내게 오지 않았다. 별이의 관심을 사기 위해 책가방에서 단소를 꺼내 하찮은 솜씨로 대장금 OST를 한 소절 불러 주었는데, 쉭쉭 바람 새는 소리를 비웃듯 애타는 ‘오나라’ 소리에도 도도하게 날 무시하고 소파 밑에 들어갔다. 첫 만남이라 낯을 가리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별이 성격이었다. 별이는 우리 가족과 함께 한 13년 동안 본인을 귀찮게 하면 그게 누구여도 아주 앙칼지게 거절하고는 개껌을 두 손 사이에 쥐고 미-타임을 즐겼다.
아닌 걸 알면서도 단단히 붙잡고 있는 신념이 있다. 가만 들여다보면 분명 이상한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지막지한 모순들이 드러나기 때문에 감히 의심할 수 없는 신념들 말이다. 예컨대 “먹는 동물”은 따로 있고, 반려동물처럼 먹지 않는 동물과는, 그리고 인간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신념이다.
별이가 세상을 떠난 후, 더 이상은 별이가 마중 나오지 않는 부모님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서 골목길을 따라 걷는데 늘 지나치던 정육점이 불현듯 눈에 들어왔다. 머리가 잘리고 가죽이 벗겨진 소의 신체 일부가 시뻘건 조명을 받으며 매달려 있었다. 이상하게도 죽은 소를 보며 죽은 별이가 떠올랐다. 별이는 죽었고, 이 소도 죽었다. 이름 모를 이 소도 별이처럼 며칠 전까지는 뜨거운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뛰는 생명이었을 것이다. 한 생명은 죽어서 영원히 누군가의 기억에 남지만 다른 생명은 이름도 없는 생을 살다 부위별로 잘려 정육점에서 팔린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개는 개고, 소는 소였다. 그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12월의 독서모임을 앞두고 <동물의 권리>를 펼쳐보았다. 첫 책이었던 <동물학대의 사회학>은 동물권 자체에 대해 직접적이고 자세하게 다룬 책은 아니다. 또한 동물학대에 대한 문제의식은 아주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책은 나의 신념 체계를 전반적으로 뒤흔들지는 못했다. 반면 <동물의 권리>는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나의 믿음에 사정없이 흠집을 내는 책이었다. <동물의 권리>를 읽으며 나는 매일 같이 무너졌고, 부끄러워졌고, 그 책을 읽기 전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린 오늘들을 살게 되었다. 그동안 설명할 수 없었던 나의 감정과 경험에 이름 붙여줄 언어들을 만나버렸기 때문이다.
<동물의 권리>는 프랑스 출신 기자이자 작가인 카린 루 마티뇽이 철학자 피터 싱어, 엘리자베스 드 퐁트네, 그리고 동물행동학자인 보리스 시륄닉과 동물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을 담은 대담집이다. 마티뇽과 세 학자의 대담 속에는 동물의 이익을 평등하게 고려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철학적 논증부터, 어떤 동물의 권리를 어떻게, 얼마나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담겨있다. 또한 그동안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동물을 관찰해온 연구 관행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인지적 동물행동학이 동물에 대한 존중과 윤리의식으로 이어지는 지점을 설명한다.
1부에서 피터 싱어는 인간에게만 신성한 가치나 존엄이 있다는 종차별주의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2] “각자의 고통을 줄이고, 최상의 삶을 살게 하자는 공리주의적 원칙”에 따라 쾌고감수능력(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모든 동물들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면, 고통받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이었다. 문득 정육점 앞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별이와 소는 어떻게 다른지, 나와 소는 어떻게 다른 지를 생각해보았다. 당연히 다른 점도 있지만, 그에 앞서 모두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문득 이 질문을 살면서 한 번도 진지하게 떠올려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 별이, 소 모두 쾌고감수능력이 있다. 그럼에도 굳이 차이를 찾자면? 가장 먼저는 인간은 더 뛰어난 사고능력과 언어능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다는 근거를 떠올려보았다. 하지만 책을 몇 장 더 넘기니, 싱어가 “인간”이라는 범주를 단일한 존재로 상정하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부분을 만날 수 있었다. 모든 개별 인간이 동물보다 더 뛰어난 사고능력과 언어능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이 자명한 사실 앞에서 나는 동물에게 고통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원래 다 그런 거지”하며 당연하게 가지고 살았던 신념들이 흔들렸다. “먹어도 되는 동물”과 “먹을 수 없는 동물”을 깔끔하게 나눌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찾을 수 없었다. “원래 다 그런 거”란 없었다. 모두가 고통을 피하고 싶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생명이었다. 그제야 별이가 떠나고 정육점 앞에서 느꼈던 감정을 “동물권에 대한 자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무언가를 알고 나서는 알기 전으로 절대 되돌아갈 수 없다. <동물의 권리>를 읽고 세상이 낯설게 보이기 시작했다. 식탁에 올려진 불고기를 보면 나도 모르게 이 소가 어떤 생을 살다 갔을지를 상상하고 있었다. 마트에서 엄마와 장을 볼 때 정육코너에 가는 것이 불편해졌다. 말끔하게 포장된 고기 이면에 비가시화된 고통들을 매우 자주, 일상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알면 알수록 혼란스러웠고, 혼란스러웠기에 더 알고 싶어졌다.
소셜미디어에서 동물권과 비거니즘에 대한 페이지들을 팔로우하고, 기사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동물은 밥상뿐만 아니라 내가 매일 쓰는 화장품, 가방, 신발, 옷, 심지어 즐겨 마시던 와인과 맥주에까지 쓰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사육장, 도살장, 실험실, 동물원. 모든 곳에 동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고통받고 있었다. 품종개량을 통해 비정상적으로 많은 우유를 만들어내는 소들은 강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고, 송아지를 낳자마자 빼앗기며, 더 이상 임신할 수 없게 되면 고기가 된다. 구제역, 아프리카돼지 열병, 조류독감 등 전염병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돼지, 닭, 오리들은 산 채로 땅에 묻혔다. 매해 전 세계에서 740억 마리의 동물이 오로지 인간의 이익을 위해 도살되고 있었다.
“당연하고 자연스럽다”는 이유로 의심해볼 엄두도 내지 않았던 나의 종차별적 신념들에 흠집이 가득해졌다. 지금 인간이 동물을 착취하는 방식을 정당화할 수 있는 타당한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찾아낼 수 없었다. 인지부조화가 시작되었다. 밥상 위에 올려진 매콤한 제육볶음. 돼지고기와 함께 뭉근하게 끓여낸 김치찌개, 견과류를 가득 넣어 만든 멸치볶음. 엄마표 요리들은 여전히 맛이 있었지만, 즐겁게 먹을 수가 없었다. 월급을 모아 샀던 가죽 가방은 여전히 예뻐 보였지만, 어쩐지 들고 싶지 않아 졌다. 자꾸만 살아서 움직이는 동물들이 생각났고, 별이가 생각났다. 다가올 독서모임이 간절해졌다. 누구에게라도 이 괴로운 심정을 털어놓고 싶고, 공감받고 싶었다. “와”는 그러기에 안전하고, 그럴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드디어 독서모임 날이었다. 우리는 <동물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각자 고기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털어놓았다. 환희는 일주일에 하루, 월요일은 고기를 먹지 않으려고 했는데, 동료가 준 고기만두를 무심코 입에 넣어서 망했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나는 급식과 집밥을 먹으며 느꼈던 인지부조화의 고통을 토로했다. 그러자 환희는 일주일에 한 번이 어렵다면, “6식 없는 날”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6자 들어간 6일, 16일, 26일은 “육식 없는 날”로 먹거리의 비거니즘을 실천해보자는 것이었다. 한 달에 세 번이라면 아주 해 볼만해 보였다. 그렇게 “6식 없는 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언젠가 새로운 무언가를 실천할 때 남들에게 떠벌리고 다니면 실패했다고 말하기 민망해서라도 포기하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교사라는 직업은 매일 100여 명을 만난다는 점에서 이를 시도해보기에 아주 적합한 환경을 제공해주었다. 나는 수업에 들어가 아이들 앞에서 “6식 없는 날”을 당당히 선언했다. 그리고 당연히 해낼 수 있으리란 자신감으로 아이들에게 겨울방학 전까지 남은 12월 16일과 26일에 내가 약속을 지켰는지 확인할 것을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단 두 번인데 못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급식을 배불리 먹고 5교시에 1학년 13반 수업에 들어갔다. 교실 문을 열자마자 한 명이 한껏 개구진 얼굴로 “선생님, 오늘 급식에서 카레 드셨어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한 걸 뭘 물어’하는 표정으로 “네! 맛있게 먹었지요~”라고 대답할 때까지도 뭐 하러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아이들이 깔깔 웃으며 “선생님, 오늘 16일이에요!”라고 할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나의 “6식 없는 날”은 첫 시도부터 아주 망신스럽게 실패했다. 벌칙을 만들지 않았던 것이 참 다행이었다.
스스로의 종차별주의를 인식하고 일상의 많은 것들을 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지만, 여전히 비건이라는 말로 나를 정체화하긴 어려웠다. 특히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무척 어렵게 느껴졌다. 매일 급식을 먹을 때마다 여기서 뺄 수 있다면 뭘 빼고 먹어야 하지, 하고 보면 먹을 수 있는 게 김치와 밥뿐인 날이 많았다. 똑같은 급식비를 내는데 밥에 김치만 먹긴 억울하고 허기질 것 같아서 그냥 다 먹었다. 나도 동물들이 덜 고통받길 바라고, 공장식 축산은 문제가 많다는 점을 인지했지만 실천은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연말의 다른 이름인 생기부 마감 시즌이 다가왔다.
내가 써내야 할 과목별 세부능력 특기사항과 동아리 특기사항의 글자 수를 세어보니 총 6만 자가 넘었다. 이 6만 자를 끝내야 비로소 크리스마스가 온다니. 돌이켜보면 당시는 비담임이었기 때문에 담임이 된 후 매년 쓰고 있는 팔만대장경에 비하면 택도 없이 적은 양이지만, 아무리 써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비거니즘과 동물권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노트북을 열면 아직 채워지지 않은 엑셀 파일의 빈칸들과 글자 수를 세어주는 엑셀 함수의 0이란 숫자들을 가능한 최선을 다 해 외면하고 싶었다. 퇴근하고 나면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괜히 평소에 보지도 않았던 드라마가 궁금해져서 OTT 세상을 배회했다.
마감일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현실을 자각했다. 남은 날 동안 하루에 몇 자 씩 써야 끝낼 수 있을지를 계산해보았다. 드라마를 보면 컨디션 난조까지 겹쳐 생기부를 기한 내에 절대 끝낼 수 없을 것이란 생각에 영화로 눈길을 돌렸다. 드라마는 다음 내용이 궁금해져서 계속 “다음 화 보기”를 누르다 수면부족을 안겨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딱 두 시간만 보고 생기부 써야지’ 하는 생각으로 넷플릭스를 돌아다니던 중, 문득 “와” 사람들에게 추천받았던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카우스피라시>였다.
<카우스피라시>는 육식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축산업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아주 많으며,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에 86배 더 해로운 메탄을 내뿜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3]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를 보며 가축이 먹을 곡식을 재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이 쓰이며 농경지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방대한 삼림이 파괴되고 있는 지를 더욱 자세히 알게 되었다. [4] 나무를 베고 숲을 밀어내니 야생동물들의 서식지는 급속도로 파괴되었고, 오늘날 인류와 인류가 소유한 가축이 전 지구 생물량의 97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구증가와 함께 늘어나고 있는 고기 소비량을 생각해보았을 때, 가까운 미래에 지구가 지금 우리의 식단을 더는 감당할 수 없을 것이란 사실에 몹시 충격받았다. 공장식 축산업은 지속가능하지 않았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아마존의 나무를 생각하자며 이면지를 쓰라고 권하고 있었지만, 사실 가장 크게 나무들을 없애는 원인은 매일 고기반찬이 올라오는 나의 밥상이었다. 다큐멘터리에선 고기를 만들기 위해 쓰이는 토지에서 식물 기반 자원을 생산하면 현재의 토지만으로도 15배 더 많은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가축에게 사료로 먹이는 곡식들을 인간이 직접 섭취하면 식량은 부족하지 않았다 [5]. 더 많은 숲을 밀어낼 필요가 없었다. 비거니즘은 동물권을 위한 행동일 뿐만 아니라,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기후 위기 대응 방법이었다 [6].
비거니즘을 실천해야 할 이유가 너무나 명확해졌다. 나는 지구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받으며 살았는데, 돌려주기는커녕 엄청난 빚을 지고 있었다. 빚을 졌으면 갚는 것이 도리이다. 받았으면 돌려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느끼는 존재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그리고 지구에 보답하기 위해, 무엇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이 지구 위에서 즐겁게 잘 살기 위해 비거니즘을 실천해야 했다. 사는 동안만큼은 지구에 가능한 깨끗이 머물다 가고 싶었다. “해야 한다”는 당위성의 내용이 또렷해질수록,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은 흐릿해졌다.
기꺼이 흔들려보기로 했다. 횟집 수족관에서 물고기의 안녕을 궁금해하는 상상력을 부끄러워하고 부정할 필요가 없었다. 잘라냈던 감각들이 소생되고 있었다.
[1] 두세 번이란 모호한 표현을 쓴 것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큰이모로부터 주인이 두 번 정도 바뀌었다는 최소한의 정보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달리는 오토바이, 체격이 큰 남자에게 가진 적개심과 인간에 대한 전반적인 경계심을 눈여겨보았을 때 우리 가족은 별이에게 학대 경험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2] 피터 싱어, 엘리자베스 드 퐁트네, 보리스 시륄닉, & 카린 루 마티뇽. (2014). 동물의 권리. 이숲.
[3] 더불어, 축산업은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에 끼치는 영향이 296배 더 큰 아산화질소 배출의 65퍼센트를 차지한다.
[4] 전 세계 물 소비량의 30퍼센트가 가축을 기르는 데 쓰이며 땅 표면의 45퍼센트를 쓴다. 매초 4,000 제곱미터의 열대우림이 가축을 방목하고 먹이를 기르기 위해 사라지고 있다.
[5] UN 세계 식량 이사회는 현재 가축 사료로 쓰이는 곡물량의 10~15%라면 세계 인구를 먹이기 충분한 양이 될 것이라 추산한다.
[6] 캘리포니아를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비건 식단은 고기를 포함하는 잡식 식단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은 대략 절반으로, 화석연료 사용은 11분의 1로, 물 사용량은 13분의 1로, 토지 사용은 18분의 1로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