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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Jul 26. 2022

심리적 거리두기

현직 교사의 비거니즘 에세이 "무릎 내어주기"

Chapter 1. 감각의 되살림


첫 번째 이야기. [심리적 거리두기]


  3월이다. 교사에게 학년 초는 가장 바쁜 시기다. 학생일 때는 몰랐다. 나만큼 선생님들도 개학을 두려워하는 줄은. 학년 초엔 자잘한 행정업무도 많지만 아이들 얼굴과 이름을 외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기억력은 나름 좋은 편인데, 매년 새로운 100여 명의 이름과 얼굴을 매칭 시켜 기억하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선생님, 제 이름 뭐게요?” “제 이름은요? 제 이름도 아세요?”


또 시작이군. 3월 초마다 쉬는 시간에 교무실로 우르르 몰려와 선생님들 자리를 순회하며 이름 퀴즈를 내는 아이들이 꼭 있다. 스윽 일어나 화장실 가려다 붙잡힌다. 학기초에 가장 곤란한 순간 중 하나다. 3월엔 다들 롱패딩으로 무장하고 있으니 명찰도 안 보이는데. 아주 곤란하다. “음, 그대[1]의 이름은 말이지..” 하고 2초 이상 망설이니, “선생님, 실망이에요.”란다. 장난인 줄 알았는데, 진짜 실망해서 삐칠 때면 식은땀을 삐죽 흘린다.


  아이들은 정말 똑똑하다. 이 전략은 확실히 효과가 있다. 이렇게 한 바탕 날 곤란하게 만들고 나면, 그 아이들 이름만큼은 정말 잊히지 않는다. 그간의 교직 경험을 통해 정리해본 바, 학기초에 유달리 이름이 잘 외워지는 아이들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이름 퀴즈를 내며 선생님을 당황시킨 아이들, 수업 시간에 열심히 대답하거나 질문을 많이 하는 아이들. 혹은 수업 시간에 책상을 향해 열심히 기도하는 아이들. 가장 빠르게 선생님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세 가지 방법이다. 단연 ‘책상 숭배’는 그중에서도 가장 효과가 좋다.


  보통 해가 바뀌면 새로운 얼굴과 이름들을 기억하느라 지난해의 이름들은 잊히기 마련이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아이들이 있다. M과 Y가 그러하다. 2019년, 2년 차 교사였던 나는 부서 희망원에 담임을 1순위로 적었지만, 얼결에 신설부서의 기획[2]을 맡아야 했기 때문에 또 비담임이었다. 비담임이라면 두 개 이상의 과목이나 학년을 걸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나는 1학년 세 반과 3학년 한 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1학년 1반의 M과 Y는 학기 초에 빨리 이름을 외운 몇 명에 속한다. 내가 수업 시간에 책 추천을 하고 나면, M과 Y도 책을 좋아한다며 쉬는 시간에 교탁으로 나와 또 재미있게 읽은 다른 책은 무엇인지 물어본 덕분이다. 우리 셋은 쉬는 시간에 종종 모여 종알종알 책 이야기를 했다. 담임이 아니라서 ‘우리 반 학생’이 없던 내게 M과 Y는 유사 ‘우리 반 학생’이었다.


  소설을 좋아하던 M은 학기초부터 나에게 꾸준히 민음사의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를 추천했다. “쌤, 릿터 구독하세요!” “쌤, 릿터 구독하셨어요?” “지은쌤, 릿터 구독 신청 오늘까지예요!” 난 잡지를 즐겨 읽은 적도 없거니와, 구독 신청 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한 번에 결제하기에 적지 않은 가격에 망설여졌다. 그런데 정기구독을 하면 민음사 세계 전집 중 원하는 한 권을 보내준단다. 민음사 세계 전집은 제대로 읽지도 않으면서 알록달록 색깔별로 사모아 책장에 꽂아두는 재미가 확실한 컬렉션이다. 민음사 세계 전집으로 장식한 책장만큼 내 지적 허영심을 효과적으로 채워주는 것도 없다. 덜컥 결제를 해버렸다. 이렇게 얼떨결에 릿터를 구독하기 시작했고, 연분홍색 표지의 <오스카 와일드 단편선>과 함께 처음 받아본 릿터 17호의 주제는 “비거니즘”이었다.


  나에게 “비거니즘” 자체는 그리 낯설지 않았다. 독일에 사는 사촌언니 유리 덕분이다.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유리 언니는 어릴 적부터 동물을 좋아해서 수의사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종종 큰아버지와 전화로 소식을 주고받던 아빠는 어느 날 저녁 식탁에서 유리 언니가 고기뿐만 아니라 해산물, 유제품, 난류도 먹지 않는 “비건”이 되었다는 소식을 큰아버지의 염려 가득한 한숨과 함께 전해주었다. 그때 “비건”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다. 나는 엄마표 제육볶음을 한가득 집어 먹으며 유리 언니는 고기를 안 먹으면 도대체 어떻게 사려고 그러냐, 하는 어른들의 걱정에 맞장구쳤다. 당시 바다 건너 사는 유리 언니를 통해서 말고는 “비건”이란 단어를 한국에서 들을 일이 없었다.


  그 단어를 오랜만에 다시 들은 것은 2015년 네덜란드에서였다. 2015년 8월, 나는 교환학생으로 네덜란드 엔스헤데에 갔다. 영어교육 전공생이 왜 네덜란드로 갔냐 하면 이유는 단순하다. 첫 번째 이유는 애석하게도 영국이나 미국을 가기엔 성적이 모자랐다. 두 번째 이유는 내 교환학생의 목적은 공부가 아니라 유럽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교환학생 지원서를 작성할 때까지도 네덜란드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네덜란드가 어디 있더라. 구글맵을 보니 여행을 다니기 최적의 위치였다. ‘그래, 떠나자.’ 그렇게 나는 2015년의 봄학기에 휴학을 해서 일을 하며 돈을 모으고, 가을학기엔 네덜란드의 트벤테 대학교를 다니며 간간이 유럽 여행을 했다.


  엔스헤데는 작은 도시였다. 캠퍼스는 온통 푸르른 잔디와 나무로 뒤덮인 숲 속 한가운데 있었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그동안 내가 같은 지구에 살던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별이 빼곡했다. 기숙사에서 나와 강의 들으러 가는 길에는 소 두 마리가 지내는 작은 목장도 볼 수 있었다. 전원생활을 동경하던 내겐 최적의 학교였다. 기숙사에 도착하던 날, 여유롭게 잔디에 누워 맥주를 마시며 음악 들을 생각에 들떴다. 하지만 24시간 편의점의 나라에서 온 내게 인생 첫 시골살이는 쉽지 않았다. 오후 다섯 시면 거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시티 센터에 있는 마트를 가는데도 자전거로 30분 남짓 걸렸다. 그러므로 나의 하루는 자전거 타고 가서 장을 보고, 돌아와 밥을 차려 먹고, 설거지하고, 또 저녁을 해 먹고, 설거지를 하면 끝났다. 그야말로 ‘먹고 사느라’ 바빴다.


  사는 내내 나는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 적응하는 편이었다. 적응력도 빠르다. 곧장 ‘먹고사는 일’로 점철된 일상에 적응했고, 중고 밥솥을 구해서 밥도 부지런히 해 먹었다. 방에선 개미가 엄청 나왔지만, 없애기 어렵다는 플랫 메이트의 말에 개미와 더부살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면 개미가 내 이마 위를 유유자적 걸어가며 아침 인사를 건넸다. 잘못 산 자전거에 맞춰 팔을 더 길게 뻗는 법도 터득했다. 네덜란드에선 자전거가 필수품이라는 말에 서툰 중고거래를 해버렸고, 열흘쯤 불편함을 견디며 타고 나서야 그건 산악자전거이며 사이즈도 너무 크단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새로운 자전거를 사는 게 번거로워서 그냥 자전거에 나를 맞췄다. 주어진 것이 어떻든 적응하기. 최대한 거슬리지 않게 나를 주변에 맞추기. 내가 평생 택해온 생존전략이었다.


  기숙사에 도착하고 일주일 후, 신입생 환영 파티가 열렸다. 점심으로 도미노피자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1인 1 피자부터 문화충격을 받은 나는 한쪽에 비건 피자가 당연한 옵션으로 준비되어있다는 사실에 몹시 놀랐다. ‘아, 유리 언니가 한다는 그 “비건”이구나!’ 스페인에서 온 빅토리아는 자신이 비건이라며 비건 피자를 한 판 받아 내 앞자리에 앉았다. 나는 왜 비건이 되었는지 물었고, 빅토리아는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기 때문이지!”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공장식 축산이 무엇이고,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는 잘 몰랐다.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는 이유로 비거니즘을 하는 줄도 몰랐다.


   그날 이후 전에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에선 어딜 가도 “비건 옵션”이 보였다. 식당에는 비건 메뉴가 표시되어 있었고, 학교 구내식당도 늘 비건 메뉴를 제공했다. 마트에도 비건 간편식이 있었다. 신세계였다. 학교 식당에서 처음 먹어본 콩고기는 정말 맛있었다. 메뉴를 확인하지 않고 먹어서 콩고기인 줄도 몰랐다. 정말로 닭고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비거니즘에 그다지 관심은 생기지 않았다. 나와는 상관없는 세상이었다. 주어진 상황에 별 탈 없이 적응하고 사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던 나에게 비거니즘을 꼭 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내가 교환학생으로 갔던 트벤테 대학교는 공대로 잘 알려진 학교이다. 대부분이 공대생인 학교에서 내 전공과 관련 있는 과목은 찾기 힘들었다. 어차피 공부가 목적이 아니었기에 별로 관심은 없었지만, 심리학과의 몇 과목 없는 교육심리 수업을 들었다. 경영학 수업엔 그래도 아시아인이 꽤 있었지만, 내가 듣는 수업엔 아시아인이 오로지 나뿐이었다. 나머지는 독일에서 온 유학생들이거나 네덜란드 토박이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이미 아는 사이인 듯 수업 시작 전에 둘셋씩 모여 떠들고 있었고 그 속에서 난 내향 에너지를 인생 최대치로 뿜어내며 혼자 앉아있었다.


  혼자 앉아있는 내 모습은 마치 서구권 문화에서 비치는 전형적인 조용하고 재미없는 아시아인으로 보일 것만 같았다. 그들의 허튼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산 표본이 되었다는 생각에 괜스레 울적해지던 참이다. 옆에 앉은 애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포마드 스타일로 넘긴 금발머리에 볼록하고 맨질맨질한 이마가 도드라진 애였다. 그의 이름은 캐스퍼이고, 알고 보니 내 기숙사 옆 동에 살고 있었다. 그제야 난 기숙사가 위치한 ‘Witbreuksweg’를 어떻게 읽는지 처음 알았다. 빝브레욱스붹. 우린 캠퍼스 안에서도 가장 구석진 숲 속에 있는 기숙사라서 등굣길이 얼마나 험난한지를 토로하며 동지애를 키웠다. 자연스럽게 뒷자리에 앉은 라라, 티모와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우리 넷은 조별 활동 팀이 되었다.


  벼락치기는 만국 공통이다. 조별 발표를 며칠 앞두고서야 우린 보고서 분량이 열다섯 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도서관 스터디룸에 모였다. 한국 대학생활에 익숙했던 나는 당연히 과제를 하다가 열두 시쯤 다 같이 학교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을 줄 알았다. 그런데 열두 시가 됐는데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슬슬 한 명씩 가방에서 빵, 과일 등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3]. 각자 무엇을 싸왔는지 얘기하는데, 알고 보니 셋 모두가 비건이었다. 여기서 나 빼고 다 비건이라고? 나는 그들에게 비건은 대체 뭘 먹고 힘을 내냐고 물었고, 티모는 아몬드를 집어먹으며 “이런 거!”라고 대답했다.


  셋 중 라라와 가장 친해졌다. 라라는 인도네시아인 어머니와 네덜란드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라라의 부모님은 비건이셨기 때문에, 그는 태어나서부터 비건이었다. 살면서 고기, 생선, 유제품, 난류를 하나도 먹지 않았다는 뜻이다. 동물성 단백질을 먹지 않으면 잘 성장할 수 없다는 보편적 믿음과 달리 라라의 키는 177cm로 네덜란드 여자 평균보다도 컸다. 게다가 취미로 스포츠 댄스를 추며 종종 아마추어 대회에도 나가고, 무엇보다 왕복 네 시간의 통학을 감당하는 체력왕이었다. 나는 라라에게 고기가 먹고 싶은 적이 없었는지 물어봤고, 그는 고기가 자신에겐 음식으로 보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고기 냄새를 맡고도 먹고 싶지 않을 수가 있다고? 이 좋은 걸 어찌!’


  라라와 함께 밥을 먹고, 장을 보며 서서히 라라의 시선에서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비거니즘을 실천해도 충분히 건강할 수 있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하지만 네덜란드라고 비거니즘을 지향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식당에서든, 카페에서든, 술집에서든 논 비건 메뉴가 기본값이었기 때문에 라라에겐 비교적 제한된 선택지만이 있었다. “한국에선 절대 못하겠군!”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비거니즘과는 거리를 유지했다. 비거니즘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실천인지에 대해서는 알고자 한 적이 없었다. 라라도 윤리적인 이유에서 비건이 된 것이 아니라 그저 태어나면서부터 고기가 음식이 아니었던 것에 가까웠으므로, 비거니즘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그렇게 2016년 2월 한국에 돌아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떠들썩하고 분주한 서울의 속도에 빠르게 적응해갔다. 바쁘게 대학 생활을 마치고, 일 년간 고달픈 고시생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9년 4월, 영어 선생님이 된 나는 퇴근 후 동네 공원 벤치에 앉아 릿터 17호를 펼쳐보고 있었다. 네덜란드에서의 6개월과 라라, 유리 언니를 떠올리며 비거니즘과 관련된 다섯 편의 글을 차례로 읽어 나갔다. 그 안엔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들, 알려고 하지 않았던 사실들, 그리고 나의 안온했던 세상을 사정없이 뒤흔드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축산업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이 모든 이동수단으로 인한 배출량을 합친 것보다 많으며 [4], 동물들은 식탁에 올려 지기 위해 온갖 고통을 겪고 있었다. 다 맞는 말이었다. 반박할 수가 없었다. 인간은 잡식동물이니 고기를 먹는 것은 “자연스럽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고기를 먹기 위해 인간이 동물을 기르고, 죽이는 과정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았다. 돼지의 꼬리와 닭의 부리를 자르고, 좁은 곳에 가두고, 수탉은 태어나자마자 분쇄기로 향하고. 효율성과 생산성을 위해 인간이 고안해낸 방법들은 하나같이 동물이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한 듯했다. 우리가 동물과 관계 맺는 방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비거니즘은 이러한 문제를 직면하게끔 해주는 하나의 “인식체계”였다. 


  책에 담긴, 비거니즘이란 인식체계를 들여온 사람들의 일상은 편안함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가까운 사람과 식탁을 나누지 못하고, 음식을 주문할 때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고, 완벽할 수 없는 실천의 빈틈을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불편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비거니즘을 통해 지구와, 동물과 “연결되어 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난 그 “연결됨의 감각”이 궁금했다. 내겐 없는 어떤 감각이 그들에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들은 나와 다르게 세상을 감각하며, 자신 안에 깊숙이 자리한 종차별주의를 자각하고 벗어던지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삶의 모습은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으나, 어쩐지 외로워 보이지가 않았다.


  나도 그 “연결됨”을 느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망설여졌다. 잘못 산 자전거도 차라리 팔을 더 뻗어가며 타는 내게 이것은 새 자전거를 사는 일 이상으로 번거로워 보였다. 동물성 식품과 제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먹고 산다는 것은 매일이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급식을 먹지 않고 학교는 어떻게 다닐까, 회식에선 어떻게 해야 할까, 음식을 주문할 때 매번 이것저것 빼고 달라고 말하며 살 수 있을까, 가족과 친구들에겐 어떻게 설명할까, 날 이해해줄까, 무엇보다 학교 일만으로도 바쁘고 피곤한 내게 이 모든 고민들을 처리할 에너지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실천하는 사람들은 대단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처럼 보였고, 나는 나의 일상을 버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고기와 치즈를 먹는 즐거움, 어느 식당이나 들어갈 수 있다는 다양한 선택권,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 무엇보다 다수에 속함으로써 주어지는 안정감. 나는 그것들을 내려놓고 비거니즘을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내 안의 종차별주의를 하나씩 마주하기 시작하면 모든 일상이 지속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릿터 17호를 책꽂이에 넣고, 내일의 출근을 준비했다. 


          


[1] ‘그대’라는 말은 다소 느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이름을 모르는 학생들에게 ‘너’라는 말은 쓰기 어딘가 내키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이름을 모르거나 아직 가까워지지 않는 학생들에게만 제한적으로 ‘그대’라는 표현을 스스로 허용한다.


[2] 회사로 따지자면 팀장 밑에 있는 대리 정도의 직급이다. 아직도 왜 ‘기획’이라 불리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거의 모든 학교에서 각 부서마다 부장, 그리고 그 밑에 기획이 있다. 대체 무얼 기획한다는 건지, 왜 기획이라 부르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3] 네덜란드 학생들은 간식이나 도시락을 많이 싸다닌다. 학교 식당을 자주 이용하기도 하지만, 샐러드, 샌드위치, 사과를 거의 모두 가방에 가지고 다니며 심지어 수업시간에 교수님 앞에서 도시락을 꺼내 먹는 장면도 자주 관찰할 수 있었다.


[4]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축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의 약 14.5%를 배출하고 있으며, 이 중 60%가 육류 제품과 관련되어 있다. 단일 사업으로는 온실가스 배출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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