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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국 Jul 20. 2022

넌 외롭다니깐 '수선화에게'(정호승)

시의 해석 -1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외로움만큼 인간에게 보편적이고 익숙한 감정이 있을까?

그래서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도 다양하고 제각각이다.

시적 화자는 외로움은 당연한 것이고

외로움은 너에게만 주어지는 형벌 같은 것이 아니라

저마다 외롭고,  외로움을 덜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너 역시 그리 슬퍼하지 말고 외로움과 함께 살아가라!

이 정도 논조로 시를 읽는 사람들을 잔잔하게 위로하려 한다.  


하지만 과연 그 의도가 잘 실현될지는 의문이다.

이 시에 사용된 주된 수사법은 의인법이다.

새와 산 그림자, 종소리를 사람처럼 표현하여

마치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존재처럼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의인법을 덜어내면 쟤네들은 외롭지 않다. 산이나 종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새가 외로움을 느낄 정도의 지능이 있을 지도 의문이다.

(까마귀는 예외라고 하고... 새 지능에 대한 폄하가 극단적이라고 누군가가 이의를 제기한다면

... 적극적으로 그분의 의견이 옳다고 지지한다.)

그렇게 보면 굳이 시를 진지하게 분석하지 않고

대충 되새김질하며 살펴보기만 하더라도

결국엔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존재는 나 혼자라는 걸 상기하게 한다.

게다가 오지 않는 전화를 실감하게 만들어 버리고

물가에 앉아 있는 것조차 외로움 때문이라고 힐난하여 물가에 홀로 앉기도 조심스러워진다.  

의식하지 못했던 행위들까지도 외로움이라는 미명으로 뒤덮여버린다.

외로운 사람이 외롭지 않은 일을 하더라고 외로우니까 외로운 사람 같은

행동을 하는구나라고 외로운 사람이 생각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외로운 사람들 위로한다기보다는

외로움을 더욱 실감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닐까라는 의심까지 생긴다.


정호승 시인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정호승 시인은 시를 창작할 때

사용할 시어와 표현 방법들을 창작 의도에 맞게 신중하게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보였다.

정호승 시인의 시도 여러 편 읽어 보았다. 시인의 경향이라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시인은 과거의 관념적인 위로와 격려에 얽매여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시에 공감하는 사람도 점점 적어지는 시기지만

요즘의 정호승 시인은 오히려 습관적 위로와 따뜻함을 재료로 작품을 양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인을 비판할 의도도 아니고 그의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는 없지만

(의도가 없더라고 불편할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내 글을 그 분들이 읽을 가능성과 불편해할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하면 거의 무의미한 염려가 아닐까 한다.)


암튼 외로울 때는 행동거지라도 외롭지 않은 것처럼 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시의 일반적 해석과는

상반되는 결론을 나만의 교훈으로 가슴에 새기려고 한다.

외로움도 뇌의 작용이라 행동을 외롭지 않게 하면 뇌도 그에 따라 외로움을 덜 느끼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는데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이 분비되는 위치와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이 분비되는 위치가 비슷해서 외로움을 느낄 때, 맛있는 걸 많이 먹으면 좀 덜 외롭다고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연인과 헤어지고 비빔밥을 양푼이 째 먹으며 폭풍 오열하는 가련한 처자의 클리셰가

황당무계한 설정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왠지 서글픈 결론이구나.  

떼로 있는 수선화도 나를 비웃는 듯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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