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하룻 Mar 04. 2024

증상(symptom)_불면

뭐가 얼마나 어떻게 잘못돼야 다 때려치울 수 있을까. (상)

내 피 땀 눈물. 여느 직장인의 삶이 고달프지 않겠냐 하면 할 말이 없다. 다만 적어도 내게는 생에서 가장 집약적인 피 땀 눈물을 흘린 10년이었다. 내 '작고 소중한' 커리어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견뎠던 모욕과 수치심. 사회에서 사람 구실을 하기 위해 우리는 당연스럽게 나의 인간으로서 존엄을 타인에게 양도한다.


매일 변칙적으로 펼쳐지는 부정적인 상황과 스트레스에 짓눌리면서도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세련되게 대처하고 노련하게 극복하고 싶었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떳떳하게 이겨내 보이고 싶었다. 내게도, 나를 재단하고 평가하던 무수한 타인에게도 증명하려 했다. 

'내가 어떤 시간을 견뎌왔는데, 누구 좋으라고 그만둬. 절대 안 돼.'

악에 받친 생각을 하며 내 영혼이 세 번쯤 죽을 고비를 넘긴 뒤에서야 나는 스스로 백기를 들었다.




증상

<나의 시작은 불면이었다.> 

내가 만난 업계 사람 중 셋에 하나는 불면증을 갖고 있었다. 금융업의 공통적 특성상 일에 대한 강박 또는 신변에 대한 불안이 그 원인으로 생각된다. 나는 일에 확고한 영역을 구축하고 그것을 잘 처리해냄으로써 받는 대내외적 인정이 나의 커리어 생명을 결정한다고 믿으며 생활했다. 


내게는 학벌, 집안, 인맥 등 위기 상황에 던질만한 근사한 카드가 없었다. 하다못해 넉살이나 아부에도 능하지 못했다. 내게 남겨진 건 선택지는 근면성실을 통한 정면승부뿐. 완벽하게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밤이고 낮이고 해야 할 일을 복기하고 고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기에 생기는 실수와 그 틈을 노리고 파고드는 공격과 비난은 내게 적응하기 힘든 위협이었다. 


나는 공격에 노출될수록 무뎌지지 못하고 다시는 공격당하지 않도록 노력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그렇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 시작됐다. 업무에 대한 걱정을 하며 계획을 세운 뒤 변명까지 고민하느라 잠에 들지 못했다.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가도 다시 깨서 고장 난 테이프처럼 걱정과 계획을 반복했다.


불면의 문제는 그 영향이 밤 시간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순히 낮에 졸리겠지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1. 한껏 예민해진다. 잠투정을 하는 어린아이처럼 같은 상황을 겪더라도 상황과 타인에 대한 인내 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실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2. 집중력이 떨어진다. 잠을 자는 동안 회복되지 못한 뇌가 태업을 한다. 뚝딱 처리할 일을 헤매고 실수가 발생하며 업무의 퀄리티가 떨어진다.

3. 불면이 장기화되면 신체 건강에도 타격을 준다. 수면을 통해 회복되지 못한 신체에 면역력이 떨어져 잔병치레가 시작된다. 소화불량으로 시작돼서 위염, 장염 등 온갖 ~염을 골고루 경험하며 몇 개월 내내 항생제를 먹어야 했다. 




결국 나는 수면제의 힘을 빌리기 시작했다. 건강보다는 업무의 완성도와 회사 내 관계에 악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수면제의 효과는 탁월했다. 자기 전 한 알 털어 넣으면 눕자마자 잠들어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잠을 푹 자면서 컨디션이 회복되자 업무 능률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 주위 사람과의 관계도 수월해졌다. 마치 마법의 약 같았다. 


안타깝게도 수면제의 마법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회사에서 부조리와 고통은 단순히 잠을 잘 잔 내가 일을 잘하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온전하고 최선의 상태라고 해서 생존과 번영이 보장되는 호의적인 세상이 아니었다. 마시멜로우 하나를 먹지 않고 참고 기다린 착한 아이에게는 두 개를 준다는 말을 서른이 넘도록 믿은, 그게 응당 세상이 법칙이리라 기대한 순진무구한 어른이는 그렇게 좌절을 경험해 갔다. 

작가의 이전글 어리석은 모범생에게 보내는 충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