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 형성기 2) 식문화
퇴사 후에는 주로 집에서 뭔가를 해 먹으려 했다. 고등학교 이후 쭉 바깥 밥을 주로 먹어 깨끗한 집밥이 그리웠다. 그리고 실은 긴축재정이 주된 이유였다. 돈도 벌지 않으면서 한 잔에 오천원 하는 아메리카노, 한 그릇에 적어도 만오천원하는 돈가스를 매일 사 먹을 수는 없었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하루에 두 끼는 먹어야 하지 않는가. 그렇게 내게 형성된 몇 가지 나의 식문화를 소개해보려 한다.
퇴사 후 만난 전 직장 상사가 핸드 드립 세트 남는 게 있다며 선물해 주었다. 우연히 시작하게 됐는데 드립 커피의 여러 가지 매력에 금세 빠졌다. 먼저 맛의 면에서는 일반적으로 먹는 에스프레소 커피보다 부드러워 은은하게 커피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큰 장점은 카페에서 몹시 비싸게 파는 싱글 오리진 원두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사실 향과 맛에 예민한 사람은 못되는데 우연히 마신 프릳츠 카페의 게이샤 드립커피의 향에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가격은 그 자그마한 한잔에 무려 칠천 원! 이후로도 비싸도 게이샤 원두를 탐하게 되었는데 직접 내려 마시니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그 향과 맛을 즐길 수 있어 참 좋다.
다만 내게는 맛보다 행위의 매력이 더 크다. 잘 보관된 원두를 꺼내 분쇄하고, 드리퍼에 종이필터를 넣고 뜨거운 물로 필터와 서버를 데운다. 분쇄한 원두를 필터에 담고 고르게 편 후, 약간의 물을 부어 뜸을 들이고 여러 번에 나눠 커피를 내린다. 물을 부을 때는 물줄기를 가늘고 천천히 원형으로 돌리는데 이게 나름대로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시간이다. 물줄기에 집중하는 동안은 나름 짧은 명상의 시간이 되는데 은은한 커피 향이 배경이 되며 완벽한 평화가 찾아온다.
이 시간은 내 삶에 다시 찾아온 여유를 온 향과 맛, 눈으로 만끽하는 순간이다. 나는 이후 친정과 시댁에도 핸드드립 문화를 전파하여 두 가정에서도 융성하게 하였는데 이 정도면 가히 우리 집안 내 작은 선구자라 할 수 있다.
본부장님이 와인을 좋아해서 값비싼 와인을 마실 일이 종종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안타까운 점이 그런 값비싼 와인을 주로 만취해서 먹었다는 점이다. 향과 맛을 즐기기는커녕 다 함께 원샷을 외치며 단숨에 털어 넣었던 추억이 있다(또르르..). 다만 그때는 그것이 아까운 일인지 잘 몰랐다. 와인을 내돈내산 하기 전까지는!
나 역시 주류 중에서는 와인을 좋아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소주처럼 (비교적) 막 들이붓지 않아도 된다는 점과 최소한 와인을 마실 때는 모두들 약간은 고상을 떤다는 점이 재밌었기 때문이었다. 와인은_평소 독설을 일삼던 괄괄이 상사도 약간은 부드러운 도시 남자가 되고 싶어 하는 듯한_그런 분위기를 만든달까?
나 역시 와인을 마실 땐 우아한 크리스털잔을 반짝이며 도시의 밤을 즐기는 성공한 도시 여자인양 우아를 떨고 싶었으나, 실상은 와인리스트 앞에서 몹시 작아지곤 했다. 그래서 퇴사 후에 시간이 생기고 직접 와인을 구매할 일이 많아지자 나는 와인 라벨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와인 유튜브와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는데 초보자가 읽기에는 정아영 소믈리에의 ‘와인 좋아하세요?’라는 책이 입문 지식을 습득하기에 좋았던 것 같다.
와인의 세계는 ‘이렇게나?’ 싶을 만큼 넓고 깊어 나는 아주 가벼운 지식 정도만 습득할 수 있었다. 약간의 지식이지만 마트에서 친구의 취향을 고려한 와인을 찾아 선물할 수 있고, 레스토랑에서 소믈리에의 추천에 내 취향을 가벼이 얹을 수는 있게 되었다. 직장에 다닐 때에 비해 비싼 와인을 마실 기회는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2-3만원 짜리 마트 와인이라도 내 속도에 맞춰 마시며 라벨을 읽을 여유가 있다는 점에서 지금이 더 만족스럽다. 앞으로도 소소하고 얕은 수준의 와인 문화를 나만의 속도로 즐겨 나가려 한다.
처음에는 그릭요거트와 그래놀라로 만들기로 시작했다. 혼자 끼니를 때우기에 그런 메뉴가 적당했고 적당히 감성 브이로그 느낌도 나는 게 만족스러웠다. 이어서 유튜브를 보며 치아바타, 피자, 스콘, 휘낭시에 같은 베이킹을 시도했다. 베이킹은 어릴 적부터의 로망이었던 터라 시작 전에는 잔뜩 기대를 했는데, 만드는 과정에서 한번 실망하고, 결과에서 조용히 로망을 접을 수 있었다. 들이는 정성에 비해 결과물은 복불복이었고, 베이커리 사장님들의 노고와 실력에 존경을 보내며 우리 집 베이킹 문화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남편과의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주부의 역할을 맡게 되었으므로 저녁을 열심히 준비했다. 내가 포기한 직장에서의 하루를 우리 집 대표로 매일 치르고 돌아오는 남편에게 이상적인 저녁_보글보글 찌개 끓는 냄새가 나고 따뜻한 밥이 차려져 있는_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다. 여러 가지 재료를 손질하고, 맛을 조합하고, 한 상을 차려내는 게 처음에는 꽤나 재밌기도 했다. 온갖 음식을 시도했었는데 실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라서 소개할 것이 많지 않다.
1) 밥 : 백미는 조선향미 골든퀸 3호를 먹는다. 맛은 최고지만 체중 조절 때문에 귀리를 절반 섞어서 먹는 게 보통이다. 그러면 맛도 보통이 된다.
2) 국 : 모든 종류의 국을 막론하고 멸치액젓 1, 참치액 1(조미료)을 넣으면 국물 맛은 끝이다.
3) 샐러드류
- 방울토마토 샐러드 : 방울토마토, 올리브유, 발사믹식초(레몬즙), 꿀, 바질 > 간단하고 보기에도 예뻐 손님 대접으로도 좋은 메뉴
- 양배추 라페 : 양배추(소금 절여서), 올리브유, 레몬즙, 꿀, 홀그레인머스터드 > 단무지, 김치의 가벼운 대체 메뉴
- 오이 간장 샐러드 비빔밥 : 오이, 양배추, 양파, 닭가슴살 + 간장소스 (간장, 알룰로스, 들기름, 참깨 등) > 다이어트 비빔밥이지만 꿀맛
4) 빵
- 계란샌드위치 : 코스트코 핫도그빵, 스크램블에그, 메이플시럽, 치즈, 마요네즈
- 베이글에는 ‘그릭요거트 + 알룰로스’로 크림치즈 대체
5) 일품요리 : 당근 김밥, 삼겹김치돌돌말이
나를 위해서든, 남편과 나를 위해서든 매일 요리를 하며 느낀 건 사람이 하루에 세끼, 적어도 두 끼를 먹는 건 정말 귀찮은 일이라는 점이다. 끼니를 준비하고, 먹고, 정리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더욱이 나처럼 요리의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 경우 먹는 노고까지 더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요리를 하는 이유는 결국 또 사람은 매일 적어도 두 끼는 먹어야 한다는 점으로 귀결된다. 그 무수한 매일, 매 끼니를 남의 손과 돈으로 대체할 수는 없다. 은퇴 후에도 자신은 평생 일만 해서 계란 후라이 하나 못 부친다며 허허 웃는 중년 뒤에는 그를 위해 평생 매일 세 번 후라이를 부쳐야 했을 누군가가 있었으리라. 그것은 내 기초 생활을 타인의 희생에 기반 삼는 일상적 비매너라고 본다.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실력은 부족하지만 나는 조촐한 우리 집 식문화를 매일 꽃 피워보고(?) 자주 실망한다.
밥 사주기 돈 아까운 애라는 말을 들었었다. 뭐 그럴 만도 했던 게 이만오천원 짜리 짬뽕을 시켜도 절반을 채 먹는 일이 잘 없었다. 신입 시절에는 동기와 나 둘 다 밥을 남기는 걸 보더니 다음부턴 메뉴 하나 시켜 둘이 나눠먹으란 이야기도 들었다.(허허) 두 사례 다 진심으로 악의라곤 없는 (예의라곤 소싯적 말아 드신) 아재들의 막간 유머임을 알기에 괜찮았다.
그 음식들을 남기려 했던 게 아니다. 정말 맛있었고 다 먹고 싶었다. 다이어트 아니고, 내숭은 더욱이 아니었다. 신입 시절에는 눈치 보고 누가 말을 시키면 적당한 답을 궁리해 대답하느라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렇게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보면 상사들의 바람 같은 식사는 끝나 있었고 따라 나가야 했다. 어느 정도 이후에는 언제나 그럴듯한 자리에는 그에 상응하는 미션이 있었다. 미션을 수행하다 보면 내 그릇은 절반도 비워지지 못했다. 그때의 교훈은 어떤 산해진미도 편하게 먹어야 맛을 음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내가 아쉽다. 그만큼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고, 그만큼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따 배고플 테니 밥 한술 크게 떠서 입에 넣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 시간은 이미 지났으니 괜찮다.
다만 앞으로의 내가, 그리고 앞으로의 당신이 언제 어디서든 밥 잘 먹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