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를 위해 주어진 논문을 검토하다가 내가 알고 있는 역사와 다른 사실을 발견했다. 비록 한국사를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일본을 섬기려고 통신사를 파견한 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데, 조선에서 공물로 종을 바쳤고 그 종이 도쇼구에 전시되어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고는 페이퍼를 쓸 수 없을 것 같아 처음으로 동북아 역사재단에 확인을 요청했다.
문화 전공이어도 강의 중에는 아무래도 그 기반이 되는 역사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동안 내가 배운 역사와 다른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 논문들을 상당히 자주 접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예전보다 많이 높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동아시아는 중국과 일본 중심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강의 자료로 제공되는 논문들에서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가 일본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나라에 불과한 것처럼 여겨지기 일쑤다. 사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는 점이 더 속상하긴 하다.
같은 전공 동기들 중 한국인은 나 하나뿐이다. 그리고 아쉽게도 딱히 한국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도 많지 않다. 덕분에 매 강의 때마다 굳이 한국 시점의 역사를 공유하고 일부러 발표 주제로 한국 관련 주제를 선택하며 어쩌다 보니 시민 외교관처럼 행세하고 있다. 몇 주 전 한국의 경제 발전에 대한 발표 때는 교수님이 박정희 정권 때의 논문을 소스로 제공해주셨는데 꽤나 편파적이라고 느껴져서 경제 성장 속에서 잊힌 불합리와 시민들의 고통을 발표의 끝에 삽입했다. 되도록이면 공부할 때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내가 아니라면 다른 나라 친구들이 정말 한국에 대해 잘못 알게 될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사사로운 감정을 싣게 된다.
나와 대만 동기는 우스갯소리로 동아시아는 "China, Japan, and others"라며 씁쓸한 농담을 하곤 한다. 중국학과 일본학 전공 교수님들이 많아서 강의가 보다 중국과 일본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이해한다. 그리고 내가 한국의 관점을 얘기했을 때 교수님과 학생 모두가 충분히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편파적이라고 불평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공부를 하다가 한국이 너무 작게 느껴질 때 나와 공감해줄 한국인이 한 명 정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내 편이 없는 이곳에서 한국 문화 연구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다시금 불태우게 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