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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Jan 08. 2022

5년차 전우, 죽이 좀 맞네

요 근래 남편은 혼자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둘은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과자를 왕창 먹는 것이 유일한 취미다. 봄이를 같이 재운 뒤 몰래 슬금슬금 나와 그때부터 과자를 까먹는다. 세상 맛있다. 재미있는 드라마라도 발굴했다치면 그 주는 그야말로 파티다. 


그런 남편이 혼자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과자를 뜯어도 입에 대지 않았다. 저녁을 굶고 물만 마셨다. 치사하게 너만 살빼냐. 고 말했지만 남편은 그만먹으라는 한 마디와 함께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나는 자기 전에 세수를 하는 게 박수를 칠 정도로 대단한 일이지만, 남편은 매일 운동을 하고, 매일 샤워를 하고, 매일 팩을 한다. 자제력이 뛰어나고 관리에 능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도 과자의 맛을 잃었다. 자고로 과자는 혼자 먹으면 재미도 없고 맛도 없는 법이다. 유일한 취미를 잃어 괜히 심술이 났다. 혼자 귤 5kg 짜리 한 박스를 사와 5일만에 해치웠다. 남편은 "하루에 귤 1kg를 먹었냐 이 돼지야"라는 말로 내 가슴에 생채기를 낼 뻔 했지만 나는 그런 말 정도로 기스도 나지 않는다!


그렇게 한 동안 과자를 멀리하고 지냈다. 둘이 보는 영상 취향도 꽤 많이 갈려서 각자 핸드폰으로 각자 보고 싶은 걸 봤다. 둘은 식탁에 앉아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했다. 결혼 5년차가 되니 나만의 시간이 참 소중했다. 


그러다 오늘 갑작스럽게 과자가 땡겼다. 너무 오랜 시간 먹지 않아서일까. 봄이의 저녁을 꾸역꾸역 먹이는데, 입에서 단내가 났다. 필히 과자를 먹으라는 신호였다. 난데없이 머릿속에서 콘치즈 과자가 뒹굴어 다녔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사러갈까, 하다가 퇴근길에 오른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또 과자나 먹냐 이 돼지야 소리가 나올까 찝찝했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살며시 톡을 보냈다.


'부탁이 있는데 나 과자 하나만'


돌아온 답변이 소오오름이었다. 


'안 그래도 사는 중'

아니, 이런 걸로 통한단 말이야? 피곤해서 당연히 집으로 오는 줄 알았다. 그렇게 투닥투닥 쌈박질만 해대다 과자에서 찌찌뽕이 통하니 기분이 묘하다. 또 사온 과자는 얼마나 대단하게.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덜덜덜!


이제 결혼 5년차에 접어들었다. 사실 만5년이 되려면 내후년이나 되어야 하지만, 그래도 5라는 숫자가 우리 가족의 결속력을 다지는 기분이다. 어른들이 볼 땐 애게? 겨우? 할 만한 숫자지만, 성인이 되고 4분의 1이라는 시간을 이 둘과 함께 보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솔깃해진다. 


결혼 5년차는 생각보다 다양한 어려움이 닥치는 시기라고 들었다. 서로에게 조금씩 느슨해지고, 화가 쉽게 난다고 한다. 그래서 그동안은 봄이를 본다는 핑계로 늘어져있던 둘 모두의 육체를 조금 빠르게 감아보련다. 우리의 중심 화제에 봄이가 있어 왔는데, 이제는 둘 각자의 중심에 자신을 올려볼까 하는 중이다. 


생각보다 나른하고 별 것 아니고, 사소하고, 작지만 참 소중한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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