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출판사에 투고를 하고서 한 1인출판사의 대표 겸 편집자였던 분과 미팅을 한 적이 있다. 추측컨대 당시 편집자는 사십 대 후반에서 오십 대 초반 정도의 남성이었는데, 어쨌건 투고하고서 출판사 제안으로 가진 오프라인 미팅은 처음이라 나는 몹시 기대감에 차있었다.
미팅은 평일 한낮의 신도림에서 이루어졌는데, 원래 가려던 카페에 사람이 너무 많아 장소를 옮겨 들어간 곳이 동네의 허름한 치킨집이었다. 그때 우리가 무얼 먹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치킨집에서 치킨을 시킨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맥주를 시킨 것도 아니었고, 무엇인가 마시긴 마셨는데 아마도 낮에는 커피도 파는 그런 가게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걸 마시지 않았을까.
무얼 입에 넣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희미한 것과 달리 편집자의 옷차림만은 분명하게 떠오른다. 그날 편집자는 오렌지색 등산복을 입고 나왔다. 어느 정도 캐주얼한 옷차림일 거란 예상은 했지만, 등산복을 그것도 형광빛의 눈이 부신 오렌지색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
벌건 대낮에 오렌지색 등산복을 입은 머리가 살짝 벗겨진 4050남성과 동네 허름한 치킨집에서의 미팅. 나는 그동안 머릿속에 상상해 오던 출판사 편집자의 옷차림과 미팅 장소가 아닌 것에, 현실과 상상의 간극을 좁혀야만 했다.
아무튼 편집자는 내 원고를 괜찮게 봐주었고, 함께 책을 내었으면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편집자는 내가 보낸 원고 중 두세 꼭지를 샘플로 작업하여 보내주기로 하고서 우리는 헤어졌다. 며칠이 지나 그는 약속대로 내 원고 중 몇 꼭지를 고쳐 보내주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그의 작업 방식이 맘에 들지 않았고, 나는 편집자의 계약 제안을 거절하고서, 출간은 없던 일로 하게 되었다.
그의 편집 방식에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쓴 글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가 만연체로 늘려놓은 문장을 가지고 편집자는 무를 썰듯 싹둑싹둑 잘라 놓았다. 나중에서야 그가 1인출판사로 독립하기 전 학습지 만드는 출판사에서 오랜 시간 편집자로 근무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그의 편집 방식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던 첫 미팅이었음에도 그가 들려준 이야기 중에서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는 말이 있다. 치킨집에서 잠시 밖으로 나와 함께 담배를 태우며 그가 들려준 이야기였는데, 그는 문득 책 천 권 팔기의 어려움을 말했다. 작가 지망생들이 책을 내게 된다면 천 권 정도는 쉽게 팔 수 있을 거라 여기지만, 그 천 권을 팔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책 천 권을 파는 일. 그때 나는 편집자의 말을 들으며 어쩐지 사람들로 가득 찬 옛 잠실 야구장을 떠올렸다. 옛 잠실 야구장의 최대 수용인원이 30,500석 정도였었지? 만원의 잠실 야구장에서 지나는 사람들 30명 당 한 사람씩만 책을 사 주어도 천 권인데, 하는 상상.
실제로 작가 지망생들이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면서 책 천 권 정도는 금방 팔 수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내가 나온 학교에서, 내가 나온 군대에서,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사람들이 책을 사줄 거라며 1쇄 정도는 금방 팔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편집자들은 반복 경험에 의해 그런 사람들의 허풍을 믿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편집자의 말을 들으면서 정말 책 천 권 팔기가 그렇게 어려울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러한 사실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초판 발행 부수는 점차 줄어들어 이제는 천부 정도가 기본이고, 상황에 따라서는 500부 정도도 찍는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책이 1쇄를 소진하지 못한다고 하니, 첫 미팅 때 편집자가 들려주었던 책 천 권 판매의 어려움이 결코 엄살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한때 책 천 권을 떠올리며 잠실 야구장을 상상했던 나는 이제 책을 내고서 고층의 아파트 단지를 볼 때면, 저 단지에 있는 집의 수만큼만 책이 팔려도, 베스트셀러 차트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거대한 아파트 단지의 어느 집, 어느 방에도 내 책은 존재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걸 이제는 안다.
책이란 어떻게 알리고 어떻게 팔아야 하는 걸까. 길을 걷다 보면 치이는 게 사람이고, 세상에는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에게서 내 책을 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첫 미팅을 하고서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서, 몇 종의 책을 내게 되었지만, 여전히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