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 Feb 14. 2018

피아노 치는 남자

엄마 말 들을 걸 그랬지...


과거 추억을 떠올리며 살아가길 좋아하는 사람이다. 단 한 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피아노 학원에 다니라고 등 떠밀던 모친의 제안을 거절하던 그 날로 돌아가고 싶다. 엄마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그 말이 맞나 보다.


일곱 살 정도였던 거 같다. 그땐 피아노보다 동네에서 공차고 노는 게 더 좋았다. 피아노 학원은 여자아이들이나 다니는 거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때 엄마 말을 듣지 않은 게 정말 후회된다. 바보 같은 놈.


성인이 되어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바이엘 하권까지 배우고는 시간 탓을 하며 그만두었다. 이미 굳어버린 손가락이 원망스러웠다. 그때부터라도 꾸준히 쳤다면 피아노 경력 18년은 되었을거늘. 바보 같은 놈.


지금은 피아노 치며 노래 부르는 남자들을 보면 그게 참 멋있고 부럽다. 내겐 하나의 로망이 된 것이다. 특히나 피아노 치는 모습이 멋진 남성 뮤지션이 둘 있는데 한 명은 벨기에 뮤지션 시오엔(Sioen)이다.


한국에서는 그의 데뷔 앨범에 실린 <Crusin’>이 의류 CM송으로 쓰이면서 알려졌다. 기네스 펠트로(Gwyneth Paltrow)와 다니엘 헤니(Daniel Henney)가 나오던 의류 광고였다. 나만 알고 싶었던 좋은 곡인데 CM송으로 쓰이면서 대중들에게도 익숙한 곡이 되었다. 


데뷔 앨범을 제외하곤 라이선스가 안 된 탓에 직구로 그의 음반을 구하기도 했다. 벨기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이 내한이라도 할까 싶었는데 요새 시오엔은 한국을 제집 드나들듯 들어온다. 각종 방송 출연은 물론이요, 백화점 문화센터 공연까지 섭렵하고 있다.


시오엔의 여자 친구가 한국인이라던가? 시오엔의 SNS를 보면 김치를 포함한 한식도 즐겨 먹으니 이제는 반 한국인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시오엔은 국내에서 <홍대>라는 곡도 발표했고 한국 뮤지션들과 콜라보 앨범도 냈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벨기에 뮤지션 시오엔


피아노 치는 멋진 남성 뮤지션 다른 한 명은 프랑스 뮤지션인 미셀 뽈나레프(Michel Polnareff)다. 두꺼운 하얀 테의 라이방이 트레이드마크인 아주 멋진 영감님이다. 젊은 시절 청년 미셀 뽈나레프는 삐쩍 말라 가냘픈 외모였는데 어느 날부턴가는 탄탄한 근육남이 됐다. 백발의 노인이 된 지금은 조금 덜하겠지만 말이다. 대체 그의 삶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동네에 좋은 헬스클럽이라도 들어섰던 걸까?


1966년에 발표한 미셀 뽈나레프의 <Love Me Please Love Me>를 정말 좋아한다. 곡 제목에 콤마가 한 번 들어가는데 정확히 어디에 콤마를 찍는지 늘 헷갈리는 곡이다. 사실 어디에 콤마를 찍어도 비굴한 제목인 건 똑같다.


사랑해줘, 제발 나를 사랑해줘 

사랑해줘 제발, 나를 사랑해줘


이것 봐. 둘 다 비굴하잖아.


<Love Me Please Love Me>는 도입부 피아노 연주가 환상적인 곡이다. 피아노 연주를 하는 그의 손가락을 보고 있노라면 손가락 하나하나가 발레를 하듯 우아하고 현란하게 움직인다. 미셀 영감님이 몸이 좋아져서 그런지 60년대 녹음한 스튜디오 버전 보다 요즘 라이브에서 연주하는 버전이 더 듣기 좋다. 예전에 비해 피아노 연주에 악력이 느껴지기도 한다. 공연에서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면서는 관중들의 떼창도 어마어마하다.


누군가 피아노 연주가 좋은 곡을 소개해달라고 하면 어김없이 가장 먼저 소개해주는 곡이기도 하다. 내게 <Love Me Please Love Me>를 소개받아 들은 사람 중에서는 미셀 영감님이 가성으로 노래하는 부분에서 소름이 끼친다는 사람도 있었다. 뭐 듣는 사람마다 느낌은 다를 테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소름 끼치게 좋아하는 곡이다. 피아노 연주뿐만 아니라 보컬리스트로서도 미셀 뽈나레프를 좋아한다. 


미셀 뽈나레프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 뮤지션이다. 그의 곡 <Qui A Tue Grand' Maman/누가 할머니를 죽였는가>는 <오월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번안되어 불리기도 했다. 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셈이다. 매년 5월 18일이 되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두고 말들이 많던데. 그냥 미셀 뽈나레프 영감님을 한 번 초대하는 건 어떨까? 미셀 뽈나레프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를 직접 듣게 된다면 정말 멋진 일일 것 같다.  


큰 아이가 일곱 살이 되어 예전 어머니가 내게 그랬듯이 피아노 학원에 다닐 것을 권유했다. 어린 나이에 피아노를 배우지 않아 후회하는 내 자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후회의 대물림을 막아보고 싶었다.


“피아노 배워. 피아노 배우면 나중에 예쁜 여자 친구 사귈 수 있어.”

“엄마보다 더 예뻐?”


아이에게는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시기다. 큰 아이는 피아노 학원을 거절했고 태권도 학원에 다닌다. 




젊은 시절의 호리호리한 미쉘, 중년의 간지 폭발 미쉘, 노년의 미쉘. 하얀 뿔테의 라이방이 인상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