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 Feb 07. 2018

둘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인큐베이터에 들어갔습니다. 


아내와는 2010년에 결혼을 했고, 아내는 허니문 베이비로 생각되는 첫 임신을 했습니다. 결혼 이듬해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으러 산부인과를 찾은 날 아이의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아내는 수술로 첫 아이의 흔적을 지웠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아내는 두 번째 임신을 했고, 심장 소리도 잘 들렸습니다. 아이의 성별을 알기 전에는 딸바보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출퇴근길엔 항상 비비 와이넌스(Bebe Winans)의 <Love Thang>을 듣기도 했습니다.


"아니 119를 불러야지 택시를 잡으면 어떡해요?" 


만삭이던 아내는 집에 혼자 있다가 양수가 터졌고 산부인과를 가려 집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고 합니다. 살면서 처음 겪은 일이니 정신이 없었을 겁니다. 아내는 택시기사 분에게 추가 요금을 조금 더 쥐여 주고 홀로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집 바닥 흥건히 묻어있던 양수를 봤을 때, 그리고 택시기사에게 타박을 받았을 아내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오기 전에도 아내는 다른 집 아이들을 보면 참 예뻐했습니다. “객관적으로 그 애는 조금 못났더라.” 라고 얘길 하면 아내는 그런 소리하지 말라며, 예쁘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냐며 저를 나무랐습니다. 봄의 기운을 느끼기엔 여전히 춥던 3월의 어느 날 아내는 제왕절개로 첫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아내는 마취가 다 풀리지 않아 힘겨워하는 상황에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애. 예뻐? 객관적으로 봐도 예뻐?” 하고 말이에요. 


“예뻐. 너무 예뻐. 그러니까 어서 일어나.”


아이가 생기면 생각이 굉장히 많아집니다. 천사라는 단어는 연애 시절의 여자 친구에게나 쓰는 단어가 아닐까 했는데 갓 태어난 아이들을 보면 정말 천사를 보는 것 같습니다. 성악설을 믿는 누구라도 신생아실에 가둬 놓으면 성선설을 믿게 될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 아이는 기대했던 딸아이는 아니었지만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아이가 생기면 삶의 원동력도 생깁니다. 더 열심히 살아야지, 더 열심히 벌어야지. 내 꿈을 포기하더라도 슬프지만 기쁜 마음으로. 물론 이런 생각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옅어지긴 하지만 살면서 큰 원동력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예쁘게 자라는 첫째 아이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듭니다. 유산으로 세상에 나와 보지 못한 아이가 정상적으로 태어났더라면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이 아이는 존재하지 않았겠구나. 첫째 아이의 눈망울을 보면서 한참을 이런 생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첫째 아이가 네 살이 되었을 때, 많은 시간이 흐르고 세상에 홀로 남을 아이를 떠올리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딸 텐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하늘 볼 기회도 잘 없습니다. 그러던 중에 "나 생리 안 한다"는 아내의 말에 기쁜 마음과 복잡한 마음이 교차합니다. 첫째 놈과 이제 좀 말이 통하는데 둘째가 덥석 생겼으니 지금까지 해온 걸 한 번 더 해야 합니다. 


아내는 첫째 아이 때부터 임신성 당뇨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임신중독증까지 찾아 왔습니다. 불청객도 이런 불청객이 없습니다. 아내는 매일 아침 스스로 꿀벅지에 인슐린을 투여하고 혈압 약을 복용했습니다. 


둘째 출산 예정일을 이십 여 일 앞두고 아내는 배가 아프다며 병원에 입원 했습니다. 모두가 잠든 새벽녘이었습니다. 의사는 몇 가지 검사 끝에 아이가 나오려하니 당장 다음날 아침 수술로 아이를 꺼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둘째 아이의 예정일은 1월이었는데 해를 넘기지 않은 12월에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인큐베이터에 들어갔습니다. 의사 말로는 엄마 뱃속에서 나오면서 양수를 좀 먹었고 폐에 물이 찬 거 같다고 합니다. 그 결과 산소포화도 수치가 좀 떨어진다고 합니다. 문돌이가 뭘 알겠나요. 그저 산소라는 단어가 이렇게 무섭게 느껴지긴 처음입니다. 


인큐베이터 속 둘째 아이의 코에 산소 호흡기를 달아 놓으니 참 애처롭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맛있는 엄마 젖 먹을 수 있는데 커서 식욕이 얼마나 풍성해지려고 양수를 먹고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크면 물어봐야겠어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아이를 면회 했을 때 간호사는 양손의 손가락이 다섯 개씩, 양발의 발가락이 다섯 개씩 있음을 확인 시켜주고 기저귀를 벗겨 고추를 보여주면서 아들인 것도 확인해 주었습니다. 애처로운 모습은 애처로운 대로 사랑스럽습니다. 


주변에선 아이가 생기지 않아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아이를 시도하는 부부를 종종 봅니다. 아이가 생기더라도 원치 않았을 장애가 있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남의 불행을 이용해서 나에게 위로 삼을 생각은 없습니다. 신생아 중환자실엔 우리 아이 말고도 몇몇 아이가 있습니다. 누구의 아이든 아프지 않고 잘 자라면 좋겠습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우는 모습을 보고 울 엄마가 저에게 얘기합니다.


"얼라들이 나오면서 왜 우는지 아나? 이 더러운 세상 우에 살아갈까 하고 운다 안 카나?" 


더러운 세상이라도 일단은 건강하고 봅시다. 모두들.

그리고 우리 둘째 아들도.


*글에 등장하는 비비 와이넌스의 <Love Thang>은 자신의 딸을 향해 노래하는 곡이다.

이전 01화 동네 레코드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