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동에 살고 있습니다. 집 앞에 큰 횡단보도가 있고, 그 길을 건너면 신길동입니다. 길 하나로 동네 이름이 바뀌는 그런 곳에 살고 있습니다. 이십여 년 전 부모님과 이 동네에 잠깐 살았던 적이 있는데 결혼하고 새로운 가족으로 다시 이곳으로 왔어요.
예나 지금이나 길 건너 신길동엔 [이정희 레코드]라는 간판이 있는데 지나갈 때마다 그저 간판만 있고, 영업은 안 하겠거니 생각했어요. 이미 오래전에 동네 레코드숍들은 모두 문을 닫고 상아, 향, 퍼플 같은 유명한 숍도 문을 닫은 상황에서 동네 레코드숍이 살아있을 리가 없을 거로 생각했거든요.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아들과 단둘이 동네 산책을 하다 보니 [이정희 레코드] 간판에 불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마저도 간판 속 형광등이 나가서 일부분은 불이 꺼져 있었지만요.
음. 설마?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가게 앞에 가보니 놀랍게도 아직 영업을 하네요. 아들 동요 음반이라도 한 장 살까 하고 가게에 들어가려 하니 주인아주머니가 컵과 칫솔을 들고 나오시며 문을 잠그십니다.
아들에게, "아들! 우리 조금만 기다렸다가 문 열리면 CD 사서 갈까?" 했더니 아들은 흔쾌히 좋다고 합니다. 십여 분이 지났을까? 양치를 마치신 아주머니가 돌아오셨고, 아들 손을 잡고 그야말로 오랜만에 동네 레코드숍으로 들어갔습니다.
가게는 정말 작았고 CD뿐만 아니라 카세트테이프도 조금 있었습니다. 가게 정문에는 '테프 선물'이라는 글씨가 붙어 있었는데, 붙여 놓은 지 이십 년은 더 된 거 같아요. CD 장에는 관리를 잘 안 하시는지 CD 비닐에 먼지가 조금씩 쌓여 있고, 색이 바랜 음반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음반 장식장 아래쪽에는 솔방울 같은 것들이 놓여 있었어요.
아들은 그걸 보고, "솔방울 귀엽다" 하니 주인아주머니는 "귀엽니? 솔방울은 아니고 솔방울 동생 같은 거야. 나도 귀여워서 갖다 놨어. 꼭 너처럼 귀엽네. 몇 살이니? 유치원 다니니?" 하시면서 젤리 한 봉지도 건네줍니다.
"몇 시까지 하시나요?"
"보통 10시까지 하는데 요새는 몸도 아프고 병원 다닌다고 좀 늦게 열고, 일찍 닫고 그래요."
"아. 주말에도 하시나요?"
"주말에는 안 해요. 그냥 평일에만..."
"아. 네. 저 구경 좀 할게요."
"네. 네. 구경하세요."
그렇게 동네 레코드숍의 음반들을 한참 구경하다가 아들 들려줄 동요 앨범과 송창식, 이소라의 앨범을 들고 왔습니다. 온라인 최저가를 찾아보면 훨씬 더 싸게 살 수 있는 음반들이었지만, 동네 레코드숍에서 음반을 구경하고 사는 일을 아들이랑 해보고 싶었나 봅니다. 평소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대형 서점에 들를 때도 아들과 함께 레코드를 보긴 하지만 동네의 조그마한 레코드숍을 구경하는 재미는 또 다른 거 같아요.
세월이 흘러 이제는 아들 손을 잡고 음반을 구경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저도 아들과 같은 때가 분명 있었습니다.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처음으로 음반을 샀던 곳이 동네 레코드숍이었어요. 여의도 사학연금회관 건물 지하에 있던 작은 숍이었지요.
서태지가 아이들과 함께 은퇴를 선언하고 수년이 지나 홀로 컴백 앨범을 발표했을 때도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달려간 곳은 동네의 조그마한 레코드숍이었습니다. 그때는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기가 수월하지 않을 때니 듣고 싶은 음반이 생기면 열심히 내달려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려 들린 곳도 동네 레코드숍이었어요. 레코드숍은 그렇게 가끔씩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노래를 고르고, 앨범을 고르면서 음악 선물을 받을 상대방의 미소 띤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던 마법 같은 장소가 되어주었습니다.
어릴 때는 동네에 걸어서 갈 수 있는 레코드숍이 세 곳 이상은 있었던 거 같아요. 동네 레코드숍에서 음반을 사던 저도 시간이 지나면서 수입 음반 매장, 대형 서점, 온라인 숍에서 음반을 사고, 최근에는 클릭 몇 번이면 바다 건너서도 음반을 살 수 있는 편한 시대에 살고 있기는 합니다만 동네 레코드숍이 이렇게 다들 사라질 줄은 몰랐는데요...
집 앞에 큰 횡단보도가 있고
그 길을 건너면
동네 레코드숍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