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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Feb 20. 2018

슬픔이여 이제 안녕


정갈하게 쓰인 가사를 좋아한다. 


꼭 음악과 함께 하지 않더라도 텍스트만으로도 정갈하게 쓰인 가사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 기분이 좋다는 것은 긍정적인 것만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우울한 느낌을 갖게 하더라도 그게 좋을 때가 있다. 


음력 정월 초하루 전날 꺼내 들은 앨범은 자우림의 9집 앨범이었다. 음력 정월 초하루 전날 마지막으로 들은 곡이 자우림 9집의 마지막 트랙 <슬픔이여 이제 안녕>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기에 더없이 좋은 제목 아닌가? 몇 번을 돌려 들었다.


분명 프랑수아즈 사강(Francoise Sagan)의 소설 [슬픔이여 안녕]에서 모티브를 받은 곡이겠지. 사강의 소설 제목 안녕은 Bonjour다. 원제는 [Bonjour Tristesse], 영제로는 [Hello Sadness]다. 자우림은 헬로우가 아닌 굿바이를 썼다. 자우림 9집 타이틀이 [Goodbye, Grief.]다.


사강은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의 <Good Morning Heartache>를 들으며 글을 썼다던가. 나는 <슬픔이여 이제 안녕>을 들으며 글을 쓴다.


프랑수아즈 사강





설 전날 부모님을 뵈러 본가에 가는 길이었다. 차에서 <슬픔이여 이제 안녕>을 듣는데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사실 소리 내서 엉엉 울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다. 운전자의 숙명이다. 내 옆에는 큰아이가 앉아있고 뒷좌석엔 아내가 둘째를 안고 있다. 눈물이 시야를 가려선 안 된다. 


나만큼 음악을 사랑하던 선배 하나는 일부러 운전할 때 음악을 듣지 않는다고 했다. 음악에 취해 앞차에 박치기할까 봐 두렵다고 했다. 그 심정이 이해 갔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가장 큰 단점은 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한 거다. 음악 듣고 막 울고 싶을 때도 가족 눈치를 봐야 한다. 가족이라도 그게 참 부끄럽다. 나 좀 울고 싶은데.


<슬픔이여 이제 안녕>은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가 곡과 가사를 썼다. 김윤아의 몸 상태가 안 좋을 때 썼던 곡이라고 했다. 그녀는 안면 마비 증세를 겪었다. 한쪽 얼굴이 움직이지 않았고, 눈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귀 한쪽은 음이 증폭되어 들렸다고 한다. 뮤지션에겐 치명적일 터. 음악을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할 때 쓴 곡이란다. 


그래서 가사에 등장하는 '너'라는 대명사에 '슬픔'을 대입해도 좋겠지만 김윤아의 사연을 알고 들으니 '너' 대신 '음악'을 넣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를 떠나 살 수 있을까

나의 가장 오랜 벗이여

나는 네가 없이는 내가 아닐 것 같아.


삶에 음악이 없는 사람을 뮤지션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을 글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꿈을 잃은 사람을 꿈꾼다고 할 수 있을까. 나를 나로 만드는 일은 음악을 듣고 글을 쓰는 일이다. 눈이 멀고, 귀가 멀어 심장이 뛰지 않아 음악을 못 듣고 글을 쓸 수 없는 날이 온다면... 나를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이 가사가 너무 아렸다. 

아, 나 좀 울고 싶었는데.





한편으로 <슬픔이여 이제 안녕>을 들으며 새해에는 좋은 일이 많이 생겼으면 싶었다. 나에게도, 내 주변에도.


이팔청춘 젊음이 아름다운 것은 꿈꿀 수 있는 게 많아서만은 아닐 거다. 젊음이 아름다운 것은 건강한 신체도 한 몫 한다. 서른이 넘어 매일 아침 알약 두 개를 삼키며 하루를 시작한다. 하나는 혈압약이고 하나는 통풍약이다. 술도 안 마시는 내가 왜 이런 걸 먹어야 하는지 억울하다. 


청춘의 시절엔 상상 못 하던 아침이다. 지금은 알약의 개수가 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현대 의약으로는 끊을 수 없는 약이다. 살아가려면 꾸준히 먹어야 한다. 음악만큼이나 오랜 벗이 되겠지. 떠나서 살 수 없겠지. 좀 떠나 줬으면 좋겠는데. 


슬픔이라는 건 사람이 살아가는 한 사라지지 않고 삶 주변을 둥둥 떠다니며 찾아온다.  헤어지고 싶지만 그럴 순 없다. 자우림은, 김윤아는 그런 점을 곡에서 노래했다. 슬픔과 영원한 이별을 고할 순 없어도 갑작스럽게만 찾아오지 않는다면 좋겠다. 슬픔을 관장하는 신이 있다면 발모가지 부여잡고 얘기하고 싶다.


"좀! 마음의 준비가 될 때 와달라고!" 


정갈한 가사가 좋다. <슬픔이여 이제 안녕>은 슬픔을 노래하고 슬픈 기운을 가슴 한편에 꾹꾹 눌러 담아주지만 그래도 좋아. 정갈해서. 가사가 너무 정갈해서. 눈물이 날만큼 정갈해서. 새해 전 날 몇 번을 돌려 들었다. 


슬픔이여 이제 안녕.





자우림 9집 [Goodbye, Grief.] 


자우림 - <슬픔이여 이제 안녕>

    

슬픔이여, 이젠 안녕.
다신 나를 찾지 말아 줘.
어떤 추운 밤에도, 어떤 궂은날에도.
저녁 어스름이 진 내 작은 창가에
어느새 별들이 내린다.

너를 떠나 살 수 있을까
나의 가장 오랜 벗이여
나는 네가 없이는 내가 아닐 것 같아.
차가운 너의 품 안에서 눈 감으면           
어느새 꿈속을 걷는다.

저기 먼 숲에서 짙은 어둠이
끝없이 속삭이는 너의 이름.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아
다시 너에게로 간다면.

슬픔이여, 그러니 안녕.
이젠 나를 그만 놓아줘.
어떤 추운 밤에도, 어떤 궂은날에도
너에게 건네려는 마지막 인사에
어느새 눈물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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