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팔자에 없는 뮤지컬을 가끔 보러 다닌다. 다만 뮤지컬을 볼 때면 시각적인 것에 집중도가 그리 좋지 못한 데다가, 가만히 앉아서 두세 시간을 버티는 것도 힘들어해서 온몸을 베베 꼬기도 한다. 아주 재미난 작품이 아니라면 높은 확률로 졸기도 하는 바람에 동행자에겐 혼이 나기도 하고. 뮤지컬 공연의 조명이란 게 어둑어둑하니 잠자기에는 얼마나 또 좋은지. 나 같은 놈이 소위 말하는 '관크'가 되는 거겠지.
여하튼 동행자에게 혼이 나지 않으려면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야 하는데, 대중적으로 익숙한 작품을 보거나 배우들의 노래 실력이 기가 막히게 뛰어나면 이런 졸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전자로는 <미세스 다웃파이어>, <스쿨 오브 락>, <라이온 킹>, <킹키부츠> 등이 그렇다. 후자로는 그날의 배우 캐스팅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어느 해 한 뮤지컬을 볼 때에는 노래를 너무 잘 부르는 한 배우 덕에 졸지 않고 끝까지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그 배우는 작품의 주인공도 아니었고, 조연의 역할이었는데도, 풍부한 성량과 매력적인 음색을 선보이며 공연 마지막까지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 시간에 주인공 못지않은 박수세례를 받는 것이 당연해 보일 정도로.
그 공연에서 나를 반하게 했던 배우는 박준면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름은 몰라도 얼굴을 보고 나면, 아, 이 사람, 할 수 있을 정도로 영화와 TV드라마 등 많은 작품에 출연을 했던 인물. 그의 노래 솜씨가 이렇게나 대단하다는 걸, 그날의 뮤지컬을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박준면의 팬이 되었다.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아마도 가장 먼저 떠오를 수 있을 정도로.
박준면은 그야말로 재능이 대단한 사람이다.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심지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랩을 선보이기도 했다. 2010년에는 뮤지션 하림이 음악감독을 맡은 음악극 [천변살롱] OST에서 노래를 도맡기도 했는데, 앨범에는 몇 곡의 오리지널 트랙과 함께,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 <오빠는 풍각쟁이>, <개고기 주사>, <모던기생 점고> 같은 옛 곡들이 실렸다. 앨범에서 박준면은 능글맞으면서도 뛰어난 가창을 선보인다.
스스로 이런 음악적인 재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2014년에는 전곡을 작사, 작곡한 첫 솔로 앨범 [아무도 없는 방]을 내기도 한다. 이 앨범을 계기로 박준면은 평단으로부터 배우에서 뮤지션으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앨범에서 <우산은 하나>, <오던지 말던지> 같은 트랙에서는 '비'를 소재로 삼기도 하였으니,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리고 박준면은 2016년 자신의 얼굴을 전면으로 내세운 싱글 <집으로>를 발표한다. 작사, 작곡은 역시 박준면이었다.
음악에서 등장하는 '집'이라고 하면 보통 단순히 거주 목적의 'House'가 아닌, 평화와 안정을 뜻하는 'Home'의 의미로 쓰이곤 한다. 온갖 루머와 억측에 시달렸던 에픽하이 타블로(Tablo)의 솔로 앨범 첫 곡이 <집>이었으며, 밴드 자우림의 김윤아가 노래한 <Going Home>에 등장하는 '집' 역시 세상의 짐을 벗어둘 수 있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박준면이 노래한 <집으로>는 어떨까. 앞서 언급한 곡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박준면이 노래한 집 역시, 힘든 세상에서 잠시 두 다리를 뻗고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니까. 다만 음악 안에서 그 집으로 향하는 걸음걸이가 몹시도 힘겹게 그려져서 듣고 있으면 마음속에서 서글픔이 하나둘 생겨난다. 깜빡이는 가로등 불빛과 어느 집에서 풍겨오는 밥냄새, 주머니에 있던 알사탕과, 새로 산 구두에서 느껴지는 고단함이 그렇다.
집은 이런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준다. 자려고 누운 천장에서는 어쩐지 너의 얼굴이 아른 거리고. 곡에서 화자는 힘겨웠던 하루를 쉬어가며 몇 가지를 소망하기도 한다. 꿈에서 너를 만났으면. 그리고 내일은 비가 내렸으면.
비가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어쩌면 화자에게는, 아니 노랫말을 쓴 박준면에게 '비'는 '집'과 마찬가지로 내 하루의 고단함을 모두 씻어내려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바로 그 '단비'라는 존재.
정갈하게 쓰인 노랫말을 좋아한다. 박준면이 쓴 <집으로>의 가사를 보고 있으면 그 정갈한 모양새에 감탄하기도 한다. 박준면은 한 가지만 잘하기도 어려운 세상에서 연기와 노래, 작곡. 그리고 노랫말을 쓰는 능력까지도 갖추었으니, 한동안은 계속 그의 팬으로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부창부수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 박준면과 부부의 연을 맺은 이는 기자 출신의 소설가이다. 둘은 결혼식 없이 구청에서 혼인신고로 부부가 되었다.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있는 분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나는 이런 모습조차도 너무나도 예술적으로 느껴진다.
슬플 때 종종 부러 슬픈 음악을 찾아 듣는 편이다. 삶이 고달픈 어느 날의 퇴근길엔 부러 박준면의 <집으로>를 듣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는 참 많은 위로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