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비와 음악 14화

비와 양가감정

신승훈 - 오늘같이 이런 창밖이 좋아

by 이경




신승훈의 데뷔 앨범에서는 <미소 속에 비친 그대>도 좋아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오늘같이 이런 창밖이 좋아>도 좋아한다. 어쩐지 추적추적 내리는 비의 분위기가 잘 그려지는 곡이다. 지금처럼 프랜차이즈 카페가 온 거리를 뒤덮기 전에 발표된 곡이어서 그런지(1990년 발매) 카페나 커피숍이 아닌, '찻집'이란 가사가 등장하는 것도 예스러워서 좋고.


이 곡의 화자는 박정현의 <비가>와 딱 반대 상황에 놓인 것 같기도 하다. <비가>의 화자가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는 상대를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는 역할이라면, <오늘같이 이런 창밖이 좋아>의 화자는 찻집 유리창에 팔을 기대고는 상대방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대는 우산도 없이 뛰어올 거라고. 오면 젖은 얼굴을 닦아주겠다고. 그런데 어쩌면 그 사람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곡 속의 화자는 정확히 어떤 상황에 놓인 걸까. 비가 와서 좋다고 노래한 화자는 오지 않는 그를 생각하며 비가 그치길 바라기도 한다. 비가 그치고 나면 그 사람이 올지도 모르니까.


'비'처럼 양가감정을 드러내기 좋은 메타포도 없는 듯하다. 짧은 시간 안에 비가 왔으면 하는 마음과 비가 그쳤으면 하는 마음이 수시로 오가는 것. 이런 상반되는 모습을 접하면 말 그대로 '착란'이 느껴진다.

<오늘같이 이런 창밖이 좋아>의 화자 역시 비를 통해 이런 양가의 감정을 드러낸다. 비가 내리는 창밖이 좋지만, 한편으로 이것은 좀 쓸쓸한 일이다. 나는 그를 기다리지만, 그는 오지 않는다.


비에 대해 이런 양가감정을 드러내는 곡으로 어떤 게 있을까. 박준면이 부른 <오던지 말던지>에서는 '비가 와 비가 와 너의 너의 너의 비 오던지 말던지 오려면 더 오지' 하고서 조금은 애매한 자세의 츤데레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베이시스트 이남이가 부른 <하늘아>에서는 '비야 오지 마 비야 내려라'를 반복하기도 한다.


비가 내렸으면 하는 마음과 그러지 않길 바라는 마음.

사람의 감정이란 이렇게나 복잡하고 가늠하기 어렵다.



이십 대 초반 늘 붙어 다녔던 친구 H가 있었다. 나보다 한 살이 어렸던 H의 날 향한 호칭은 형이었지만, 우리는 정말 친구 같은 사이였다. 젊디 젊은 그 시절 함께 같은 꿈을 꾸고, 같은 길을 길어가기로 했던 사이였다. 우리는 서로를 소울메이트라고 여기며 영원한 우정을 다짐하기도 했다.


어느 해 겨울 H와 나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바다를 보러 가기도 했다. 목적지는 강원도의 망상해수욕장이었다. H에겐 차가 있었고, 나에겐 약간의 돈이 있었으므로.


늦은 밤 출발한 차는 동이 트기 전 우리를 망상해수욕장 앞으로 데리고 갔다. 서울에서 강원도로 달리는 차 안에서는 건스앤로지스(Guns N' Roses) 버전의 <Knockin' On Heavens' Door>를 수차례 들으며 따라 부르기도 했다. 그때 무작정 겨울바다를 찾아 서울을 떠났던 우리는 마치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의 두 주인공처럼 느껴졌으니까.


"형, 헌팅 해봤어?"

"해봤을 리가 없잖아."

"우리 여기서 헌팅 한번 해보자. 형은 가만히 있어, 내가 할게. 여자애들 꼬셔서 낮술 진탕 마시고 취해보는 거야."


그럴싸한 계획이 늘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H의 헌팅 계획은 철저하게 실패하였다. 나는 H가 시킨 대로 정말 가만히 있었는데. 헌팅이 실패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새벽을 달려 바라본 겨울바다는 어쩐지 조금 삭막해 보였고, 허무했다. 우리는 숙소도 잡지 않고, 그저 H의 차 안에서 새우잠을 조금 잤을 뿐이었다. 머리도 못 감고, 세수도 하지 않은 피곤한 몰골로 시도한 대낮의 헌팅이 성공할리가.


H와 나는 서로 말을 아꼈지만, 그때 우리는 조금 쓸쓸함을 느꼈던 것 같다. 분명 청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알 수 없는 허무함에 잠식되던 시절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에서는 건스앤로지스가 아닌 라디오를 틀었다. 그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던 이런저런 곡들 중 하나가 바로 신승훈의 <오늘같이 이런 창밖이 좋아>였다. 강원도를 향해 들떠있던 마음이 누그러지는 기분이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H와는 연을 끊게 되었다. 한때는 소울메이트라 노래했던 사이가 한순간에 틀어질 수가 있는가. 우리가 이렇게 된 데에는 H의 잘못이었을까, 혹은 나의 잘못이었을까. H를 생각하면 아쉽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하다. 조금은 미운 감정이 들기도 하고. H 또한 가끔 나를 생각한다면 그러려나.


신승훈의 <오늘같이 이런 창밖이 좋아>를 듣고 있으면 H에 대한 양가감정과 함께, 강원도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그날의 일이 떠오른다. 그런 떠올림이 꼭 당연하다는 듯이.


비야, 내려라. 비야, 오지 마.







오늘 같이 이런 창밖이 좋아
비가 오니까
찻집 유리창에 팔을 기대고
기다리네 그대를

우산도 없이 뛰어올 거야(그대)
젖은 얼굴 닦아줘야지
아니야 그대는 안 올지도 몰라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오늘 같이 이런 창밖이 좋아
슬프기는 하지만
창밖을 보며 편지를 써야지
비가 내린다고

찻잔에 눈물이 떨어지는데
그대는 오지를 않네
이 비가 그치면 그대 와줄까
비야 내려오지 마

오늘 같이 이런 창밖이 좋아
슬프기는 하지만
창밖을 보며 편지를 써야지
비가 내린다고
창밖을 보며 편지를 써야지
비가 내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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