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라 - 바람이 분다
2011년 한글날을 맞아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의 곡을 뽑은 적이 있다. 대상은 2000년 1월부터 2011년 9월까지 발표된 곡들이었다. 우선 대중음악 전문가 10명이 34곡을 선정하였고, 그 후 문인(시인과 소설가) 9명이 투표를 하였단다.
1위는 이소라가 부른 <바람이 분다>였다.
2011년이면 나도 음악 웹진에 글을 쓰고 있을 때였다. 당시의 선정 리스트를 보면서 나라면 누구에게 표를 던졌을까, 나 역시 이소라의 곡에 표를 던졌을까 하는 자문을 해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바람이 분다>보다 아름다운 노랫말의 곡들이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바람이 분다>가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의 곡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와 관련된 곡 중에서는 분명 그러하다는 생각이다.
<바람이 분다>의 화자는 헤어짐을 겪고는 머리를 잘랐다. 마음은 서럽고 눈물이 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갑게 떨어지던 빗방울도 그쳤다. 세상은 어제와 다름이 없고, 시간은 흐르는 것이다. 화자가 그때 잘라버린 것은 단순히 머리칼이 아니었다. 그 머리에는 그와 함께 했던 천금 같았던 추억들이 있었다. 그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는 분명 두 사람이 함께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였더라도 감내해야 할 아픔의 크기는 제각각임을 노래한다. 너는 내가 아니며, 서로가 생각하는 추억 또한 다르다. 시적이고 서정적인 이별의 가사와 이소라의 감정이 더해져 시대의 명곡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심경에 큰 변화가 생기거나, 커다란 아픔을 겪게 되면 머리를 자르곤 한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영국의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선수 시절 베컴이 긴 머리칼을 잘라버리고 삭발을 하고 나타난 적이 있는데 동료들은 베컴의 주변인 누군가가 죽었는가 싶어 저들끼리 수근거리기도 했단다. 다행히 베컴에게 그런 일은 없었고, 그저 약간의 반항심이 불러온 삭발이었다.
삭발에 대한 내 개인의 기억도 있다. 초등학생 6학년이 되었던 첫날, 전학을 했다. 모든 게 이전과 달랐지만, 무엇보다 새로이 친구를 사귀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그때 살갑게 말을 걸어준 친구가 Y였다. 동글동글한 얼굴로 귀엽게 생긴 녀석이었다. 전학생에게 Y는 바로 베스트프렌드가 되었다. Y가 학교를 나오지 않은 날, 선생님으로부터 Y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린 나이에 누군가의 죽음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나 가장 친한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에는 어떤 말을 전해야 하는 것인지.
그때는 휴대전화도 삐삐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문자를 보낼 수도 없었다. 다행히 음성 사서함은 존재했다. 친구의 집으로 전화를 했을 때, 아무도 받지 않는 음성 사서함에 대고서는 어설픈 어른 흉내를 내며, 힘을 내라고, 어머니의 명복을 빈다고 말해두었다. 적응에 힘들어하는 전학생에게 살갑게 대해준 친구에게 무슨 말로든 위로를 전해주고 싶었으니까.
며칠이 지나 친구가 학교로 돌아왔을 때 동글동글했던 귀여운 얼굴은 조금 말라 보였다. 무엇보다 친구의 머리는 파르라니 삭발한 상태였다. 나는 친구에게 왜 머리를 잘랐느냐고 묻지 않았다. 친구가 머리를 자른 이유를 왠지 알 것만 같기도 했으니까. 그건 지금껏 내가 본 가장 서글픈 모습의 머리였다.
나는 어떤 이별이나 아픔을 겪었을 때 머리를 잘랐던 기억이 있었는가. 모르겠다. 다만 이십 대 초반 누군가와 헤어졌을 때 미장원을 찾기는 했다. 그때 나는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르는 대신 귀를 뚫었다. 몸의 어딘가에 구멍 하나를 내면 마음에 뚫린 구멍 하나를 메울 수 있을까 싶었으므로.
<바람이 분다>는 이소라의 6집 앨범 [눈썹달]에 실렸으며 이소라가 노랫말을 쓰고, 이승환이 작곡했다. <천일동안> 등을 부른 뮤지션 이승환과는 동명이인 뮤지션이다. 명곡답게 많은 이들이 커버하였는데, 이소라의 버전 외에는 소프라노 조수미가 부른 버전과 배우 배해선이 부른 버전을 가끔씩 듣는다.
2014년 한글날을 맞아 14명의 시인에게 2000년 이후 발표된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을 뽑은 적도 있다. 그때도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가 1위를 하였다. <바람이 분다>의 화자는 머리를 잘라내었지만, 이 노랫말의 아름다움은 좀처럼 잘려나가지 않는다.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 것 같아
이미 그친 것 같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 간다
바람이 분다 시린 한기 속에
지난 시간을 되돌린다
여름 끝에 선 너의 뒷모습이
차가웠던 것 같아 다 알 것 같아
내게는 소중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내게는 천금 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눈물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