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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Apr 19. 2024

구병모 파과



구병모 작가의 그 유명한 <파과>를 읽었다. 전부터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미루어 두었는데, 최근에 누군가 쓴 <파과> 뮤지컬 후기를 보기도 했고, 영상화가 된다는 이야기와 여러 국가에 수출이 되었다는 이야기, 무엇보다 서점에 들렀을 때 리커버판이 나온 것을 보고서 더는 미루기 어렵겠다 싶어 들고 오게 된 것.


나는 책을 읽기 전에는 여성 킬러가 등장하는 액션 활극이려나 했었는데, 오히려 나이 듦에 대한 소설이었다.


만연체로 쓰였다는 정보만 가지고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술술 읽히는 만연체가 아니라 숨이 턱턱 막히는 만연체라 몇 번이고 문장 앞으로 돌아가기도 했지만, 하루이틀 지나서는 나름 문체에 적응이 되어 책 읽는 속도가 조금 붙기도 했고, 이야기에 흥미가 일면서 몰입하여 읽게 되었다.

그러니까 구병모 작가의 문체라 함은(오직 '파과'에만 한정했을 때) 만연함도 그렇지만 이제 일상생활에서는 그다지 쓰이지 않는 단어까지 툭툭 튀어나와 도저히 그 뜻을 유추할 수 없을 때에는 사전에서 뜻을 살펴봐야 하는 수고로움까지 더해졌음에도 어쨌든 앞으로 읽고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었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65세의 방역업자(살인청부업자) '조각'. 또 조각만큼이나 늙어버린 댕댕이 '무용'. 조각을 방역업자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던 '류'. 무슨 일인지 자꾸만 나이 든 조각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젊은 방역업자 '투우'. 그리고 조각의 몸을 살펴주는 의사 장박사와 장박사의 부재 때 조각을 치료하게 된 투우 또래의 '강박사'.


이야기는 조각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진행되는데 이 조각의 삶이라는 게 하나하나 알아갈수록 어느 순간 몹시 처연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 처연함의 절정은 조각이 오래된 냉장고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 이제는 메인으로 쓰기에는 글렀고, 서브로나 사용할 정도로 크기가 작은 오래된 냉장고 안에서, 물러터져 버린 숭아를 손으로 떼어버리는 장면. 시종일관 긴 문장과 문단으로 호흡을 이끌어가던 소설은 이 장면에서만큼은 극단적으로 짧은 문장들을 사용하는데, 냉장고와 복숭아, 조각의 몸, 심지어 작가의 문체까지 모두 그 기능이 이제는 예전 같지 않음을 메타포로 그려내는 것 같다. 이제는 바꾸든지 버려야 할, 살아가다 사라져야 할 그때가 왔다는 것. 소설에서 제일 서글프던 장면.


<파과>는 이렇게 제 기능을 상실하고 늙어가는 것을 이야기하지만, 그 과정에서 조각과 강박사, 조각과 무용, 조각과 류, 조각과 투우 사이의 감정을 알 듯 모를 듯 그려내는 점이 백미였다.


읽으면서, 이야 이 부분은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었을까, 하고 감탄해마지 않았던 장면도 있었는데, 그 장면이 어느 장면인지는 안알랴줌.


워낙에 베셀스셀 소설이라 이미 나보다 앞서 많은 분들이 읽어보신 소설이겠지만, 추천추천.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조각과 투우의 캐스팅은 어떻게 되려나, 하는 궁금증도 생기게 되고.


<파과>를 읽고 느낀 점이라면, 나이 드신 어르신에게 '어머니'라고 부르지 말아야겠다는, 뭐 그런 감상을 남기며,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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