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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Apr 26. 2021

우리의 '가능성'을 발견한 아카이브

기록의 중요성

 회사 설립을 가능케 한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워낙 갑작스러운 퇴사였기 때문에 뚜렷한 사업 계획은커녕, 새로운 것을 도모할 여유도 자원도 없었습니다. 코로나19라는 경황없는 상황 탓에 모두들 새로운 의지를 만들기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어쩌다 스타트업에 도전하게 되었을까요. 주변에서도 어떻게 팀워크를 지속하며 법인까지 함께 설립할 수 있었는지를 가장 많이 물어봅니다. 물론 지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팀원들 모두 우리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렇다면 그 ‘가능성'은 대체 어디에서 찾았을까요. 바로 ‘회의록'에서 발견했습니다. 그동안의 프로젝트와 그것들을 준비하는 과정을 노션(www.notion.so)을 활용해 정리하고 있습니다. 퇴사한 이후부터 우리가 모여 이야기를 했다고 하면 그것을 모두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저희 집 거실에서 모였던 회의에서부터 사무실에서 회의를 진행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노션에 잔뜩 쌓은 회의의 기록들은 우리가 얼마나 가장 기본적인 것에 집중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기록한 팀원들의 수고가 아까워서라도 회의록들을 틈틈이 살펴보는 편입니다. 남기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그것을 확인하고 활용하는 것은 더 큰 노력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적어둔 기록에서부터 바쁜 일정 속에 대략적인 단어만으로 급하게 정리한 기록까지 쭈욱 보고 있노라면, 멀리뛰기 선수의 도약 발판 전까지의 달리기 장면이 떠오릅니다. 저희도 도약의 순간을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다보니 생각이 났나봅니다.


 멀리 뛰기 선수들은 힘찬 도약을 위해 도움닫기 구간에서 자신만의 정확하고 일정한 속도를 구사해야 한다고 합니다. 최고의 속도보다 스스로에게 가장 적합한 속도를 습득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죠. 최적 속도를 구하는 데에 시행착오와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것만큼 훌륭한 데이터는 없습니다. 회의록은 힘(자원)과 보폭(전략)을 계산하기 위한 훈련 일지일지도 모르겠네요. 회의록을 통해 퍼포먼스의 점검과 맨먼스 산출, 효율적인 업무 소통의 방식 등 결과를 만들어가는 우리만의 최적의 방법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높이뛰기에서는 수평 속도가 최종 결과에 미치는 영향력이 덜하다. 선수들의 목표는 도움닫기 시 최고 속도에 도달하는 것보다는 수직 속도로 전환하기 위한 최적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 적정 속도를 내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종목별기초트레이닝> 중 도약의 기초(78p), 대한육상연맹


 회의록을 남길  우리만의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날 있었던 특별한 에피소드를 담아 회의록의 제목을 짓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첫 회의는 지난해 노동절이었습니다. 그래서 회의록의 제목은 <노동의 참의미>였죠. 1년 전의 기록이지만 제목만 보아도 퇴사한 상황에서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대화들과 당시의 분위기가 기억납니다. 최근 선보인 501g이라는 새로운 서비스의 캐릭터를 만든 날, 114번째 회의록의 제목은 <오공일 씨의 탄생>입니다. 짧은 제목이지만 그간의 고민과 노력의 산물이 세상에 등장한 감격을 표현하기에는 충분합니다.재미로 시작했지만, 제목 덕분에 당시의 회의를 떠올리는데 도움이 되더군요. 또 쌓여가는 제목들을 보면 마치 책을 넘기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까 하는 기대 같은 설렘도 생기고, 지금의 어려움과 불편함도 소재로 볼 수 있는 여유도 만듭니다. 주인공의 고난은 서사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소재이니까요.


 또 회의록에는 회의 장소와 참석한 인원같은 기본 정보와 함께 당일에 함께 먹은 식단 메뉴도 적어둡니다. 그러면 그 날의 기억을 불러오는데 조금 더 도움이 됩니다. 기록은 다시 기억을 불러올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지못한 기록은 낙서일 뿐입니다. 어떻게든 다시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이러한 장치들은 소소하지만 아주 중요합니다.


 회의록, 주간업무보고, 수행 기획서, 결과 보고서 등의 기록을 함께 공유하는 것은 예전부터 팀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원칙이었습니다. 오늘을 불태워 개인의 퍼포먼스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일도 함께 만들 결과물에 기대를 갖는 팀워크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함께 있으면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공유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데, 팀워크는 어느 개인이 의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강제로 부여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저는 모두가 발견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함께 읽고 쓰는 아카이브야말로 팀워크를 발견하는 보고(寶庫)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보고서라 하는 것일까요?


 물론 건기운의 실속 없는 데이터 낭비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켜켜이 쌓여가는 기록을 보면 '정말 가능하겠다!'는 느낌표 꽉 채운 확신이 드는걸요. 흐릿한 기억과 왜곡된 감정이 아니라 생생한 글과 영상으로 마주하니 그 확신이 더욱 명확합니다. 저희는 유튜브에도 여러 편의 영상으로 기록들을 남겼는데요. 영상을 본 어느 지인이 알리바바 마윈의 ‘후판 화원(湖畔花园)'이 떠오른다고 하더군요. 마윈 역시 창업 멤버들과 자신의 아파트에서 창업을 선언했고, 시작의 기록들을 만드는 것에 꽤 노력했다고 하면서요. 누가 아나요. 정글을 호령할 사자가온다라는 우리의 선언이 현실이 될지 말이에요.

마윈의 아파트, 후판화원(湖畔花园)에서의 회의 모습(좌)과 뉴스 속 모자이크처리 된 우리 팀의 회의 모습(우)


 앞으로도 우리의 기록 아카이브에 계속해서 집중하려고 합니다. '좋은 과정의 결과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지만, 좋은 결과의 과정은 항상 좋다.'라는 말을 기억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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